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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치구조 2.0

    통치구조 2.0

    2016년 상반기 동안 독일에 안식년을 갔었다. 그 때 독일 교수들, 정확히는 연구환경을 보고, '대학교수란 이런 것이었군!' 하고 느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연구환경은 건물로 치면 기둥도 벽도 없이 지붕만 만든 정도라고나 할까. 대학만 그런 것은 아니고, 아직은 우리나라 곳곳이 미완성 건물 같은 느낌을 준다. 통치구조도 그 하나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일까요?" 법관 장기해외연수로 미국에 있던 2000년 초 헌법과목 첫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바로 통치구조입니다"라고 자답하였다.   미국연방헌법의 기초자들이 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를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개발자와 변호사, 원래 같은 민족이었어?

    개발자와 변호사, 원래 같은 민족이었어?

    잠시 개발자가 되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코딩해 본 적이 있다. 어떤 기능에 대한 경우의 수를 빠뜨리지 않고 정리해서 논리적 구조에 따라 목차를 만들고, 문서와 첨부 문서를 작성하고, 형식을 다듬고 문서끼리 잘 연결되어 있는지 상호참조는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한다. 그런데 왠지 익숙한 일이다. 생각해 보니 변호사가 계약서를 작성할 때와 너무도 닮아 있다.   개발자가 변수를 정의하고 함수로 결과를 리턴한다면, 변호사도 계약서를 쓸 때 먼저 용어를 정의하고 요건과 효과를 이어 놓은 조항을 이어서 작성한다. 변수와 정의는 중요하다. 만약 계약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기능을 넣은 조항에 이용할 '천재지변'이라는 변수를 정의하면서 '홍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면 '홍수'라는 이벤트가 발생해도 효과는 그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사과의 계절

    사과의 계절

    주말 내내 사과 밭에 있었다. "사과가 다 익었는데 딸 일손이 없다"는 부모님의 요청이 있기도 했지만, 시끄럽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낼 공간이 필요하기도 한 터였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부모님의 사과밭에는 그야말로 빨갛게 익은 사과가 한창이었다.    이곳의 사과는 유난히 맛이 달고 과질이 단단하다. 한 입 베어 물면 온통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이 우주를 다 채울 기세다. 이 한 알의 과일을 만들어 낸 것은 고랭지의 찬 아침이다. 높은 산자락에서 태어난 바람은 한여름에도 작은 과일의 이마를 차게 식혔다. '여긴 왜 늘 이렇게 추워' 힘겹게 어깨를 펴는 아침들이 어린 것의 과육을 단단하게 뭉쳤다. 그 위로 맹렬히 쏟아지던 한낮의 햇볕이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으로 차올랐다. 저마다 붉게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법관 임용예정자 명단 공개를 보며

    법관 임용예정자 명단 공개를 보며

    미국 출장 갔을 때 뉴욕 주에 있는 정신보건법원(Brooklyn Mental Health Court)을 방문하여 담당 판사(Matthew J. D′Emic)와 정신보건국장(Clinical Director)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해당 법원은 정신병증이 있지만 유죄를 인정할 의사가 있는 중범죄자에 대하여 수감 대신 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보석조건을 통하여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위 미국 법원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생각된다.   법원에 몰려드는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려다 보면 관성적으로 예전 방식대로 업무를 처리하기 쉽고, 해당 사건에 맞는 특유의 절차를 발굴하여 적용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보듯이 보다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요통에 대하여

    요통에 대하여

    중학교 2학년 때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친 후 40년 정도 요통과 함께 살아왔다. 오래 시달리는 동안 많은 약을 먹고,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아니지만 나누고 싶은 개인적 경험을 소개한다.    나름 요통의 정도를 고양이, 여우, 표범 그리고 호랑이가 무는 것으로 나누고 있다. 40~50줄 들어 친구들이 처음 고양이나 여우에 물렸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오면 부러울 따름이다. 표범에 물리면 서는 건 물론 앉는 것도 힘들다. 호랑이가 물면 누워서 몸을 뒤척이는 것도 어렵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호랑이에게 물려도 2~3주 정도 잘 버티면 회복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하면 엄청난 고통에 압도된 나머지 덜컥 수술을 해버리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플랫폼의 '내돈내산' 주장이 틀린 이유

    플랫폼의 '내돈내산' 주장이 틀린 이유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한편, 카카오의 매물 확보를 방해한 네이버 부동산에 대한 10억 원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플랫폼 업체를 둘러싼 불공정거래 사건이 연일 기사에 오르고 있다. 네이버 쇼핑의 불공정행위 여부에 대한 공정위의 결정도 임박해 있다고 한다.   이러한 플랫폼에 대한 공정거래 관점에서의 규제에 대해 플랫폼에서 흔하게 내세우는 논리 중 하나는 "사기업이 거액을 들여 구축한 시스템인데 왜 마음대로 못 하게 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인데 정부가 어떤 근거로 규제하는 것이냐는 반론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반박 논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할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플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인사, 인사

    인사, 인사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인사가 났거든요. 찾아보니 안녕을 고하는 인사와 관리나 직원의 해임, 임용 등과 관련된 일인 인사는 같은 한자를 쓰더군요. '人事', 둘 다 사람의 일이라는 뜻인가 봅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 사이에서 안녕을 고하는 일도 마땅히 사람의 일이라 해야겠네요.   검사가 된 이래로 매년 인사를 맞이하고 목격했습니다. 알고 보니 검사는 늘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자리였습니다. 인사를 들어 어떤 이는 '조직을 입맛대로 장악하려는 길들이기'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조직내 자신의 위치에 대한 적나라한 통지서'라고 합니다. 검사의 인사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어리석은 저는 답을 대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것은 본디 여러 사람을 각각의 쓰임이 있는 자리에 적절

    정명원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법정에티켓

    법정에티켓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공공장소에서는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에티켓의 본질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당사자나 소송대리인으로 직접 참여하는 경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거나 예의에 어긋나는 태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재판을 진행하다 보면 당사자 사이에 의견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실체진실 발견과 신속한 권리구제라는 다소 상반되는 이념에 기초하여 각자 주장을 펴는 경우 중재가 쉽지 않다. 진행경과에 비추어 한 쪽이 상당히 유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상대방의 증거 신청에 대하여 불필요하고 소송지연책이라며 빨리 사건을 종결해 달라고 반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정치적 해결과 사법적 해결

    정치적 해결과 사법적 해결

    법관 장기해외연수로 미국에 있던 2000년의 일이다. TV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한 연방대법관(케네디 대법관인지 스티븐스 대법관인지 명확하지 않다)이 전국의 학생대표들을 상대로 강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질의응답 때 한 학생이 "학교 내 라커룸에 대한 압수수색에 관하여 왜 연방대법원이 빨리 판결을 해주지 않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 대법관은 "우리는 신중하게 결론을 내리고 싶다(We don’t want to jump into conclusion)"고 답하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인 만큼 하급심 판결들의 동향과 그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응을 좀 더 지켜보고 연방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사회 내의 분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DB에게 자리를 찾아주자

    DB에게 자리를 찾아주자

    'DB'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답변에 따라 세대와 생활 패턴을 대충 알 수 있다. 최근 그룹 이름을 변경하고 광고를 많이 한 모 대기업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면 TV를 많이 보는 사람일 것이다. MT에서 자주 하던 '디비디비딥' 게임이 떠올랐다면 '옛날 사람'일 것 같다. '데이터베이스'의 약자로 생각되었다면 IT업계에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DB'는 원래 database의 약자가 맞다.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모음이라는 뜻이다. IT 용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IT업계 밖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구글에서 '디비 판매'라고 검색을 해 보면, '보험디비 팝니다', '주식디비 팝니다' 등 각종 디비를 판다는 광고가 넘쳐난다. 이럴 때 '디비'는 사실 특정 집단 또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말의 이면

    말의 이면

    말의 이면을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대부분 입증되지 않기 때문이다. 입증되지 않은 채 의심으로만 존재하는 세계는 위험하다. 그 의심을 진실이라고 믿어버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곳에서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어떤 말을 할 때, 되도록 그 말이 담고 있는 문언적 의미를 그의 진심이라고 믿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면을 담지 않은 언어로 대답하고자 노력한다.   검찰 개혁이라는 말과 함께 '형사부·공판부 강화'라는 말이 떠오른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검사생활을 오롯이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보내온 검사로서 가슴이 뛰는 말이었다. 형사부·공판부의 업무가 검찰의 중심으로서 자리매김 하고, 강화된 형사부·공판부를 가진 검찰은 국민의 평화롭고 안정된 삶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밀려드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밀려드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역대급 장맛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법원은 요즘 하계 휴정기라서 이용자들의 불편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보통의 판사들은 휴정기를 제외하고는 밀려드는 사건의 홍수 속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미제건수를 보면서 언제까지 이런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들 때가 있다.    혹자는 사건수가 많으면 판사를 더 뽑으면 될 일이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3천명이 안 되는 전체 판사 중에 1~2백명 늘린다고 사건 적체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기 어렵고, 갑자기 판사수를 2~3배로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판사를 선발한다고 저절로 재판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개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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