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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술 증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진술 증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며칠째 한 건의 사건에 물음표를 띄워 놓은 채 고민 중이다. 죄명은 단출하게 '폭행', 지인들끼리 사소한 다툼 끝에 쌍방 고소한 사안인데, 서로 "나는 당하기만 했다"는 주장만 높고 CCTV도 목격자도 없다.   사회가 급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수사환경도 많은 것이 변했다. 곳곳에 CCTV와 블랙박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한 기술의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 오늘날의 수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오늘날 수사의 시작은 일단 CCTV를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되곤 한다.   그런데, 그 조밀한 흔적의 빈틈에서만 발생하는 일들이 있다. 어느 저녁,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A가 먼저 멱살을 잡았는지,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며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며

    최근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가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국가조차도 미국, 러시아, 중국 밖에 없다고 하니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머스크는 그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하나둘씩 증명해 가고 있다. 스페이스X 본사 건물에 걸려 있다는 화성 정착지 사진도 이제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경이적인 발전과 인공지능이나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정보독점의 완화, 평균수명 연장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이처럼 조직을 재편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많은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노수의 저편

    노수의 저편

    삼국지연의에 노수대제(瀘水大祭)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나온다. 제갈공명이 맹획을 칠종칠금(七縱七擒)하여 남만을 평정하고 촉으로 돌아가는 길에 노수를 만났다. 노수는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람이 죽었던 곳. 제갈공명 일행은 강물 속에 가득한 원귀들이 풍랑을 일으켜 노수를 건널 수 없었다. 한 노인이 사람머리 49개를 바쳐 제사를 지내면 원귀들을 달랠 수 있다고 한다. 제갈공명은 이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하고는, 밀가루 반죽 속에 소와 양의 고기를 채워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제갈공명은 친히 노숫가에서 자신이 만든 사람머리를 바치며 제사를 올렸다. 이에 원귀들이 사라지고 제갈공명 일행은 무사히 노수를 건넜다. 사람들은 제갈공명이 만든 것을 만두(蠻頭)라고 하였는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코로나와 이커머스의 민낯

    코로나와 이커머스의 민낯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전자상거래, 즉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5년 메르스의 확산이 모바일 쇼핑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올해의 코로나는 쇼핑의 대세가 온라인으로 완전히 넘어오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촉매가 되었다. 쇼핑이란 원래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하는 것 아니었던가? 마트에서 물건을 담던 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생활속 거리두기로 전환한 후 연일 터지는 물류센터와 콜센터의 확진자 발생 상황을 보며, 필자가 이커머스 회사에서 처음 일하면서 알게 되었던 이커머스의 속살이 기억 속에 다시 떠올랐다. 산뜻한 IT기술로 무장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고고한 이커머스는, 사실 물 밑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백조의 물갈퀴 발처럼 거대한 인력의 힘으로 움직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보자기 예찬

    보자기 예찬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냐?" 이것은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의 지난 세기 개그다. 잊혀진 개그처럼 보자기도 요즘엔 잘 보이지 않는 과거의 물건이 되었다. 그런 보자기가 상시적으로 빈번히 사용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 공판검사실이다. 매일 아침 공판검사들은 공판부 입구에 마련된 보자기함에서 보자기를 꺼내 그날의 공판 기록을 보자기에 싼다. 재판을 마친 기록들은 다시 보자기에 싸여 돌아오고, 그렇게 보자기는 쉼 없이 순환되는 공판실의 필수품이다.   보자기의 색깔은 빨강, 파랑, 골드, 핑크까지 다양한데, 언젠가 공판검사들끼리 모여 이야기 해 본 결과 각자 선호하는 보자기가 달랐다. 다양한 취향 중에도 유독 선고가 있는 날은 빨강색을 고집하는 검사가 있어 그 이유를 물으니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K열풍을 바라보며

    K열풍을 바라보며

    1974년 7월 13자 신문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귀국해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정명훈 씨 사진이 크게 실렸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입상한 것은 국제적으로도 뉴스거리였다. 지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국제 대회에서 수상한 음악가들이 다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서양음악의 수준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갑자기 음악 천재들이 쏟아져서가 아니라 국가와 기업,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와 관련하여 한국식 감염병 방역체계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K-방역모델'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고, 각국이 이를 배우고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선진국과 후진국

    선진국과 후진국

    초임 판사 시절인 1992년께 일이다. 아마도 주식일임매매 관련 손해배상사건 같은데, 다른 재판부에 알아보았더니, 한 선배 판사님이 자신이 쓴 판결문을 보여주시면서, 자신이 20~30년 전의 일본 판례들을 참조하셨는데, 일본 판례들은 그보다 몇십년 전의 독일 판례를 참조하였다고 귀띔해 주셨다.    사회가 발전해 나가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이 만들어지는데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면서 같은 문제를 겪고 법도 베끼게 되는 것 같다. 후진국에서는 법은 있는데 문제는 없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개인파산절차에서 면책이 최초로 허가된 것은 1997년의 일인데, 관련 법 규정은 1962년에 제정된 파산법에도 있었다.    최선진국에서 새로운

    박재완 교수 (한양대 로스쿨)
    스타트업처럼 일하라?

    스타트업처럼 일하라?

    요즘 대기업에서도 "스타트업처럼 일하라"는 말이 많은 것 같다.   원래는 중소기업이었고, 21세기 들어서는 벤처라고 했다가, 요즘에는 스타트업 또는 어떤 사람들은 발음을 굴려 스따럽(startup)이라고 부르는, 막 생겨나서 커져가는 에너지 넘치는 젊은 기업들. 필자도 주로 그런 젊은 기업들과 일하기 시작한 지 이제 5년 정도 된 것 같다. 몇 년은 그 안에서, 또 잠시는 직접 시도도 해 보다가, 이제는 다시 변호사로 많은 창업가들의 성공 스토리를 돕는데 매일매일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스타트업처럼 일하는 것은 무엇일까? 수평적인 의사소통, 직급 없는 영어 이름, 캐주얼한 복장, 형식적인 보고서 없음, 자율근무나 재택근무, 칸막이 없는 공유오피스에서 금요일

    천준범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털 있는 것들의 비극

    털 있는 것들의 비극

    사법연수원 때의 일이다.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봉사시간 같은 것을 채우기 위해 파주에 있는 요양원에 연수생들이 단체로 몰려간 적이 있었다. “자, 여기 정원에 잔디의 생장을 방해하는 이런 풀이 있어요 이 풀을 뽑아 주세요, 그런데. 이 풀이랑 비슷한 요 풀은 나물로 키우는 거니까 뽑지 마세요” 과제는 명확했다. ‘나물로 쓰이는 요 풀을 남기고, 잔디의 생장을 방해하는 이 풀을 뽑을 것’ 그런데 문제는, ‘이 풀’과 ‘요 풀’이 매우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뜨거워지는 초여름 햇살아래 연수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 풀과 요 풀은 어떻게 다른가.

    정명원 검사 (서울북부지검)
    촌철살인(寸鐵殺人)

    촌철살인(寸鐵殺人)

    전에 즐겨 보던 외화 시리즈가 있다.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007 시리즈'다. 1962년 개봉 후 2012년 50주년을 맞아 23번째 작품을 발표한 영화 사상 최장 시리즈라고 한다. 비슷한 설정과 스토리, 뻔한 결말 등으로 무슨 매력이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임스 본드가 던지는 유머와 위트 넘치는 대사 때문이다. 적에게 쫓겨 생사의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도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무뚝뚝하게 짧게 내던지는 대사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대화나 연설도 그런 관점에서 필자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이다.    법조인은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어느 직역을 막론하고 늘 말과 글로써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

    최형표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코로나19와 일자리 위기

    코로나19와 일자리 위기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나아가 이제는 우리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1차 타격을 받은 여행업과 관광업 등이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되었으며 항공업계 등으로 계속 확대될 예정이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일부 언택트(Untact) 업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산업군에 그 여파를 미치거나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보도를 보면, 코로나19로 법률시장 역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그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급격한 경기침체에 대처하기 위하여 경제주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팬데믹(Pandemic, 감염병 세계적 유행)이 선언된 최악의 재난 상황에서는

    이재훈 변호사 (법무법인 인터렉스)
    진정한 자기 피알(PR)

    진정한 자기 피알(PR)

    최근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음란물 관련 사건을 보며 문득 십 수년 전 초임검사 시절 음란사이트 운영자가 구속되었던 사건이 떠올랐다. 구체적인 사건 내용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당시 변호인의 변론 중에 "피고인은 미성년자가 음란물에 접근해서는 아니 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사이트 보안을 철저히 하여 공익에 기여하였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 때 방청석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났던 것은 기억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고인이 '공익에 기여'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구속되어 다급한 마음에 무리하게 주장하다가 방청석에서까지 웃는구나 여겼다. 나중에 선배 검사로부터 "아마 수임료를 받은 변호인 입장에서는 피고인의 주장이 터무니없더라도 차마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변호

    이성식 부장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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