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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지와 진실

    편지와 진실

    초보 검사 시절 진실을 찾고자 하는 소망은 대단하다. 경험도 없고 수사기술도 없어 좌충우돌하고 넘어지면서 하나씩 배워나간다. 약 3년간 그런 과정을 거치면 누구 말이 진실인지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5년차가 되면 자신감이 생긴다. 검사 5년차가 가장 무섭다는 말도 있다. 경험이 쌓이고 혈기가 넘치는 때여서 무섭게 매진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그 시절 바다가 보이는 청사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날 경찰에서 고급승용차를 훔친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보내겠다고 지휘건의가 왔다.   경찰은 고소인과 목격자가 있고, 특히 피의자의 편지가 피의자가 범인임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했다. 피의자는 이미 다른 사건으로 구속 중이었고, 구치소에서 고소인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중략) 경

    최두천 과장 (법무부 인권조사과)
    변론권의 한계

    변론권의 한계

    형사변호인의 기본적인 임무가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보호하고 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익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당한 이익으로 제한되고, 변호인이 의뢰인의 요청에 따른 변론행위라는 명목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허위의 진술을 하거나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 하여금 허위진술을 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2도6027 판결).   형사부 구성원 판사였던 몇 년 중 어느 한 해였다. 우리 재판부에 국선변호인으로 종종 들어왔던 X 변호사님.   이 분은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변론을 하였다. 단어 하나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하는 것 같았고, 진지한 표정과 과장되지 않은 몸짓으로 언어를 뒷받침하였다.

    정성민 판사 (사법정책연구원)
    공짜는 없다

    공짜는 없다

    몇 년 전, 법조인인 어떤 기관장이 참석하신 오찬에서였다. 그 분은 “법률가의 사명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봉사”라고 강조하시며, 소속 직원들을 통해 중소상공인 무료 법률상담을 벌이고 있다고 자랑하셨다.    필자가 속물이라서인지 찬탄에 앞서 정부기관이 직접 법률서비스 제공에 나섬으로 인하여 줄어든 법률시장의 규모와 늘어난 직원들의 야근시간이 떠올랐다. 봉사의 주체와 자랑의 주체가 불일치하는 것 같다는 불손한 생각도 함께. 나중에 그 분께서 변호사 개업 후 한두 해 만에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유를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언행이 모순된다기보다는 일관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법 제1조에 명시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공익적 사명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그렇게 변호사가 된다(2)

    그렇게 변호사가 된다(2)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소설가 김연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연(深淵)’이 있다는 말로 그 막막함을 표현하였다. 노력해도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강이 사람 사이에 놓여 있다. 그 막막함은 때로는 애정이나 친밀도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더 큰 좌절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50년을 함께 산 부부도 여전한 무심함에 상대방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는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의 그 속을 도통 알 수 없어 속을 썩인다. 하물며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 사업 상 교류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내 경험’에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을 맞닥뜨리며, 우리는 혼란을 겪고 상처를 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직업

    장품 변호사 (법무법인(유) 지평)
    기운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기운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검사님은 때리지 않네요"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십여 년 전 두 번째 근무지인 밀양지청에서의 일이다. 승려가 신도에게 아무런 자격 없이 침을 놓아주고 시주(헌금)를 받아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것이었다. 그는 오래 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 맞았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수사기관에서 때린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하루가 다르게 문화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육체폭력이 중심 화제였다면 요즘은 언어폭력이 중심 화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고, 말이 주는 상처는 육체의 상처보다 오래 남는다고 한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던 때다. 공대생인 나는 불확실한 미래 도전에 대한 불안과 열정이 공존했다. 애초 금강석 같던 자신감은

    최두천 과장 (법무부 인권조사과)
    언덕 위의 워라밸

    언덕 위의 워라밸

    소설 '료마가 간다'로 유명한 시바 료타로의 다른 작품으로 러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언덕 위의 구름'이 있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러일전쟁에서 육상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는 여순 요새 공방전을 들 수 있다. 일본군으로서는 전략적으로 요동반도의 끝에 있는 여순 요새를 반드시 장악할 필요가 있었으나, 콘크리트를 두르고 대포와 기관총까지 갖춘 요새는 쉽게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격은 매번 대포와 기관총에 막혀 실패했고, 일본군 사망자만 만 명이 넘었다. '언덕 위의 구름'을 보면, 참다못한 일본군 사령부가 결국 전투 현장에 와서 장교들의 무능을 질책한다. 이에 현장 장교는 "포탄이 없어 애써 점령한 203고지를 빼앗겼다. 사령부는 언제 신청한 포탄만큼 지

    정성민 판사(사법정책연구원)
    열정에 관하여

    열정에 관하여

    작은 로펌을 운영하는 선배가 신입변호사를 뽑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우선 학내에 게시할 글을 보내왔는데, 곳곳에서 열정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열정! 열정 있는 인재를 원합니다!” 위험하다. 전화를 걸었다. “요즘 학생들은 열정이란 말에 거부감이 커요. 열정보다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성적이나 스펙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열정을 요구했을 뿐인데?” “차라리 성적이나 스펙을 요구하는 편이 거부감이 덜할걸요.” 선배는 열정이란 단어를 포기하지 못했다. 내 예상대로 학생들은 쑥덕댔고 지원자는 없었다고 한다. 아아, 아름답던 단어 ‘열정’은 어찌하여 이리도 천덕꾸러기가 되었는가? 20년 전 군법무관 시절, 로펌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그렇게 변호사가 된다(1)

    그렇게 변호사가 된다(1)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았다. 주인공은 도쿄 중심가 고급주택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성공한 건축가이다. 승승장구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은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를 받고 충격에 빠진다. 6년을 키워온 아이가 친자(親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다른 집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은 친절하게도 그 가족과의 만남도 주선해준다. 부족할 것 없던 주인공의 일상에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먹은 대로 살고, 원하는 대로 얻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눈 앞에 닥쳐진 상황을 맞이하고, 제한된 여건 내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학생은 ‘일

    장품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탄 새끼줄과 동전꾸러미

    탄 새끼줄과 동전꾸러미

    거상 임상옥을 다룬 드라마 상도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중 한 장면인데, 내 기억은 이렇다. 어느 날 부잣집 주인에게 남루한 행색의 사내가 독대를 요청했다. 주인이 그 청년을 만나자, 살기가 찬 그는 품속에서 시커멓게 탄 새끼줄을 조용히 꺼내어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전대에서 동전꾸러미를 꺼내어 건넸고, 그 사내는 조용히 그 방을 나갔다. 이를 지켜보던 주인의 어린 딸이 물었다. “아버지, 왜 돈을 준 것입니까?” 아버지는 “사내가 내민 탄 새끼줄은 돈을 주지 않으면 이 집을 불사르겠다는 뜻이다. 그는 멍석말이로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온 것이야. 사람을 대할 때 부딪혀야 할 때도 있으나 물러서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검사가 되던

    최두천 과장 (법무부 인권조사과)
    독일군과 소련군

    독일군과 소련군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1941년 6월 22일 소련도 기습 공격하였다. 전격전으로 단기간에 소련을 붕괴시킬 계획이었던 독일은 300만 명의 병력으로 전체 전선에서 소련을 공격하였고, 이들 병력을 3300대의 전차와 2000대의 항공기가 지원하였다. 소련 전선에서도 독일군의 전격전은 성공을 거두었다. 독일 공군은 침공 첫날 소련의 항공기 1200대를 파괴하였고, 기갑사단은 신속히 진격하여 소련군을 고립시킨 후 포위하였다. 뒤따른 보병은 포위된 소련군을 손쉽게 격파하였다. 독일군은 1941년 9월 26일까지 약 300만 명의 소련군을 포로로 잡았다. 이에 대하여 소련은 지구전으로 대응하였다. 독일군의 빠른 진격 속도에도 불구하고 생산 시설

    정성민 판사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변두리 변호사를 지향하며

    변두리 변호사를 지향하며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 주는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이 동시에 일어났던 '혁명의 시대(홉스봄)' 이상으로 현기증 나는, 또 다른 혁명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우리는 늘 트렌드에 민감하다. 얼리 어댑터가 부러움을 사고 있고, 어느 분야든 최신 트렌드를 전하는 포스팅은 인기가 높다. 변화에 함께 하지 않으면 곧 낙오될 것같은 불안감이 우리 안에 있다. 잠잘 시간 없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수시로 챙기는 이유기도 하다. 사회체제는 어떠한가?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고, 계층 간의 이동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번 비주류로 밀려나면 주류에 다시 편입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사교육 열풍이나

    조원희 변호사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시험, 평생 볼 수는 없나요?"

    "변호사시험, 평생 볼 수는 없나요?"

    변호사시험과 관련하여 다양한 민원이 있어 왔다. 외국인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느냐, 시험용 법전을 한글로 만들 수 없느냐 등 다양한 궁금증과 의견이 접수된다. 최근에는 응시제한 제도에 관한 민원이 많다.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후 5년간 5회 응시할 수 있는 응시제한 규정을 폐지하여 계속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1996년 사법시험령 하에서도 1차 시험 4회 응시 후 4년의 휴지기를 두는 방식으로 응시제한 제도를 잠시 도입한 적이 있었다. 이 제도는 합격률이 극도로 낮은 사법시험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고, 2001년 사법시험법을 제정하면서 폐지되었다. 그 후, 일정 수준의 합격률이 유지되는 변호사시험 제도가 도입되면서 응시제한 제도는 국가 인력 낭비를 막는 균형추 역할을 하게

    이영남 과장 (법무부 법조인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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