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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기쁨

    새로운 기쁨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을 나와 여의도 금융가를 걷다보면 한 쪽에 10층짜리 건물이 숨어 있는 듯 자리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려 나무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올라가니 아늑하고 평화로운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방 안에 소박한 꽃나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상이 있고 왼쪽으로 훤히 트인 창문으로 여의도가 내려다보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그 이름 그대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16년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때 이태영 박사의 혼이 담겨 있는 그곳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 법률상담을 시작했다. 이태영 박사는 1950년대 가난하고 암담한 한국 여성의 현실을 목도하고 자신의 길을 찾았다. 그러나 "지극히 소박한 소망으로 가정 법률상담사업을 시작했을 때 결코 그 누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KCL)
    지휘와 외압 사이

    지휘와 외압 사이

    새해다. 대부분 새해 결심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작년 결심은 잊어먹었다. 혹여 기억하는 사람은 실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 부장검사로서의 나의 결심은 “지휘와 감독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지휘(指揮)는 ‘어떤 일의 해야 할 방도를 지시하여 시킴’을, 감독(監督)은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않도록 살피어 단속함’을 뜻한다. 지휘는 한자에 ‘손가락(扌)’이 있어 ‘방향성 제시’, 감독은 한자에 ‘눈(目)’이 있어 ‘잘못을 고침’쪽에 방점이 있다.    형사부장검사들은 월 1500여건의 결재를 통하여 부원들을 지휘·감독한다. 연말에는 ‘화장실은 밥 먹으러 갈 때 가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결재에 매진한다. 결재행위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나누어 보

    김욱준 부장검사 (대전지검)
    가위눌림

    가위눌림

    종이에 만년필이 빠르게 긁히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무슨 시험장인 것 같다. 시간은 오후 3시 25분. 주위 사람들은 빠르게 답안을 적어가고 있다. 사시 2차, 민법 시험을 보는 중이다. 35분 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 나는 1번 문제도 풀지 못하고 있다. 식은 땀이 나고 현기증이 돈다. 어디선가 기도하고 있을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이게 아닌데, 이럴 수 없는데… 몸을 일으키려고 해보지만 일어날 수 없다. 꿈이었다. 거의 20년 전의 일인데도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요즘은 지방재판을 가는데 KTX를 놓친다거나 증인신문을 하려고 할 때 아무리 찾아도 신문사항이 없는 꿈들을 좀 더 빈번히 꾸지만 말이다. 일전에 대법관 한 분과 식사를 할 때 그 분도 아주 가끔 사법시험 보는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검사 선서문

    검사 선서문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고 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관통한 화두는 개혁이었다고 생각한다. ‘개혁’ 내지 ‘혁신’은 잘못된 제도, 관습, 사고를 바로 잡아 새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뜻한다.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 기업 중에 개혁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벽한 공동체나 조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가치이고 본연의 기능을 더 잘하도록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검찰도 개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검찰개혁 논의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어서 심지어 필자가 검사로 임관하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검찰은 늘 개혁의 대상이 되어온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평일 야근은

    김영기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사법신뢰로 가는 길

    사법신뢰로 가는 길

    판사를 포함한 법조인의 고질적인 직업병이 ‘의심병’이라고 하면 공감하실 분이 상당하리라. 판사는 당사자나 증인의 말에 의심부터 하고 진위 판별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명확한 물증이 있는 사건보다는 관련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사건이 많다보니 그 진위 판단이 곧 재판결과이기 때문이다.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일단 의심부터 하여 가족들에게조차 핀잔을 듣기 일쑤다.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불리한 판결을 받은 측은 혹시 판사가 부적절한 이유로 그런 판단을 했다는 의심부터 하곤 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같은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그런 시선을 감추지 않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오죽하랴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공평과 정의

    공평과 정의

    세상은 참 불공평해. 흔히 듣는 말이다. 소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유력자의 딸 모씨가 친구들에게 “돈도 실력이야”라 말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일만 보아도 한국인들은 불공평하다 느끼면 가만히 못 있는 것 같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게 한국인이라는데 이런 한국인들이 자본주의를, 황금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공산주의를 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80%가 동의한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역시 한국인들의 이런 평등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절대군주 루이16세를 하루아침에 단두대에 이슬로 보내버린 프랑스 대혁명도 베르사이유 궁전의 휘황찬란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삼부회의 제3신분 대표들, 부르주아와 도시노동자들의 마음속에서부터 싹텄다. 당시 마리 앙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국감의 추억

    국감의 추억

    “동그라미 말고 검정 네모로 해야지, 아니 다이아몬드가 좋은가? 그건 아래 당구장 표시하고 적고. 참모총장은 줄이 바뀌면서 끊어지면 안돼. 자간 줄여서 한 줄로 정리해….” 평소보다 검토가 빡빡하다. 총장님이 국정감사에서 답변할 자료라서 그런가보다. 2001년 가을이었다. 공군법무관으로 일할 때 국정감사 대응 업무를 맡았다. 국회에서 보낸 질의 중 법무와 관련된 답변 초안을 작성하고 국감장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돌발 질의가 나오면 즉석에서 답변자료를 만드는 게 주된 일이었다. 국방위 국감 당일, 국감장 옆 복도에서 노트북을 들고 대기했다. 수많은 별들이 지나가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기하라며 잔뜩 기합을 불어넣었다. 국감이 시작되었다. 얼마되지 않아 육군과 관련된 이슈가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프랑스 구속제도의 시사점

    프랑스 구속제도의 시사점

    프랑스에서는 구속에 앞서 피의자에게 사법통제를 가할 수 있음은 지난 달 목요일언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구속제도는 ‘구속사유, 구속결정에 대한 불복, 구속기간’ 등에서 우리 제도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형사소송법은 구속사유로 ‘① 진실을 규명하는데 필요한 물적 증거나 정황 보전 ② 증인,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위해 방지 ③ 피의자와 공범간 부정한 통모 방지 ④ 피의자 보호 ⑤ 형벌집행을 위한 피의자의 신병 확보 ⑥ 범죄의 종료나 재범 방지 ⑦ 피해의 중요성, 범행상황, 범죄의 중대성으로 야기된 공공질서에 대한 예외적이고 지속적인 혼란 종식(다만 중죄의 경우에 한한다)을 규정하고 있다(제144조). 우리 형사소송법이 구속사유로 ‘주거부정과 증거인멸, 도망

    김영기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손해를 보아야 산다

    손해를 보아야 산다

    최근 들어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 정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표출하는 성격장애로 정의되거나 충동으로 인한 분노를 없애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이라고도 한다. 병리학적으로 분노가 심해지면 뇌의 교감신경이 잘 조절되지 않아 신체가 과하게 흥분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단순히 성격 문제인지 아니면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인지를 떠나 최근 법정에서도 "왜 이렇게 후회할 범죄를 저질렀냐"고 물으면 피고인들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서…"라거나 "술만 마시면 욱하는 성질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까지는 이르지 않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화를 참지 못해서 관계를 그

    김종복 부장판사 (목포지원)
    권력자와 성

    권력자와 성

    서일본의 최대 도시 오사카 도심에는 오사카성이 있다. 우리나라 사적지 중에 흔한 것이 성이지만 대개 산성이나 토성, 읍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 오사카성처럼 잘 보존되어 성의 형태를 제대로 갖춘 성은 드물다. 중국이 자금성, 독일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자랑하고 있고 일본만 해도 오사카성 외에 히메지성이나 구마모토성 같은 자랑할 만한 성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겐 이런 성이 없다. 오사카 도심 고층빌딩들 속에 섬처럼 떠 있는 8층의 천수각과 이를 둘러싼 숲과 성벽, 성문과 해자(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못), 해자 위에 걸쳐진 다리들은 고도의 방어체계를 갖춘 대단했던 권력자의 존재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의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 말이다. 오사카성은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축

    김진욱 선임연구관 (헌법재판소)
    조작의 비용

    조작의 비용

    군에 있을 때 사망사고 조사를 담당했었다. 유족들이 사인을 수긍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재조사했는데 첫 사건이 군의관 사망사건이었다. 그는 가족의 희망이었다. 아들만 믿고 살아온 홀어머니와 똑똑한 동생을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한 누나는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기록검토 후 유족들을 면담한 다음 유족들이 의문을 제기한 사항을 다시 조사했다. 하지만 기존 결론을 뒤집기는 힘들었다. 여관에 혼자 들어갔고 다음 날에도 나오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목을 매어 죽어있었다는 여관주인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재조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국가가 지난 세월 동안 사인을 조작하고 은폐했던 과거를 계속 말하고 있었다.    현재가 과거에 발목

    정원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프랑스식 ‘사법통제제도’의 도입을 기대하며

    프랑스식 ‘사법통제제도’의 도입을 기대하며

    프랑스의 구속제도는 특이하다. 사법통제(controle judiciaire)와 본래 의미의 구속(detention provisoire)으로 나뉘고 구속은 ‘증거보전, 피의자의 신병확보’ 등 수사의 목적달성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면서 사법통제로는 그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가능하다(프랑스 형사소송법 제144조). 수사 단계에서는 ‘범죄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자를 특정하며, 범죄로 인해 유발된 피해를 구조하는 등의 행위’가 진행되는데 이는 곧 수사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며 사법통제는 구속에 앞서 이러한 수사목적을 이루기위해 피의자에게 일정한 의무(obligations)를 부과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사법통제는 검사의 청구에 따라 예심수사판사나 석방구금판사가 부과한다. 형

    김영기 부장검사 (서울서부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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