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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마당, 수필, 기타

    독자마당, 수필, 기타 리스트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7-1)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7-1)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 마지막 국무회의 소묘 법제처장 -Ⅰ (1996. 12. 20. - 1998. 3. 3.)   내가 법제처장에 임명된 경위를 간략히 적어 둔다.임명 2일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 양촌면사무소 직원이 밤나무 산으로 황급히 나를 찾아와 청와대에서 급히 연락해 달라는 전화가 있어서 검사님이 계실 것 같은 양촌리 영농조합법인으로 갔다가 이 산에 계실 것이라 해서 찾아왔으니 속히 청와대로 전화하시라고 말하며 그 전화번호를 일러주었다. 이 직원이 얼마나 다급했던지 산꼭대기 부근에까지 달려와서 숨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전한 말이 그랬다.    그길로 면사무소에 도착하여 직원이 적어 준 전화

    4부 낙관(落款) ⑰ 장관이란 호칭을 남겨준 마지막 공직
    [모두를 위한 법] 지역 비영리 공익전업 7년간의 실험

    지역 비영리 공익전업 7년간의 실험

        '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은 2015년 광주에서 설립된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단체이다. 장애인, 성매매 피해자, 이주노동자, 난민, 아동 및 그 곁의 활동가들과 함께하며, '지역에서, 존엄과 권리를 상실한 이들의 곁에서, 그 목소리를 법의 언어로 전달한다'는 지향으로 일한다.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처음 동행을 시작할 때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비영리? 지역에서 후원은 안 될걸? 힘들고. 그냥 개인사무실 하면서 해." "공익 변호사? 그게 뭔데요? 그냥 변호사랑 어떻게 다른 거죠?" 처음 5년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보여드리는데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비영리 후원 개발을 위해 풀뿌리 후원 모집부터 여러 재단들의 사업 프로젝트 공

    이소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
    [송종의 회고록 전문 (16)]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대검찰청 차장검사 (1993. 9. 21. ~ 1995. 9. 14.)   내가 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지니고 있었던 책과 자료는 사실 만만한 분량이 아니었다. 비좁은 생활공간에 이를 보관하며 지내는 불편이 오죽하였겠는가? 공직을 그만둔 이후 몇 번의 폐기 작업을 거쳐야 했다. 제일 먼저 폐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법률책이다. 나 스스로가 이미 법조인이 아니라고 다짐했던 터이므로 법률에 관련된 책이 폐기대상물 제1호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귀중한 책의 경우가 이러하였으므로 정리되지 못한 너저분한 자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규격도 일정치 않아 크기가 제각각인 각종 자료가

    3부 채색 (彩色) ⑯ 분주했으나 실적 없는 검찰의 제2인자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6)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6)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대검찰청 차장검사 (1993. 9. 21. ~ 1995. 9. 14.)   내가 서울지검장 말기에 당시 대검찰청 차장검사였던 김도언 씨가 임기 2년의 검찰총장에 임명된 후 곧이어 단행된 고검장과 검사장급 인사 발령으로 나는 1993년 9월 21일 그의 후임으로 제26대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임명되었다.이 직책은 중앙행정부처와는 다른 특색이 있는 자리이다. 외형상으로만 본다면 법무부 산하기관인 대검찰청의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부책임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부조직법의 서열상으로는 법무부 차관보다도 앞설 수 없는 직책이다. 그런데 업무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검찰에서는 법무부 차관의 상 서열자가 대개

    3부 채색 (彩色) ⑯ 분주했으나 실적 없는 검찰의 제2인자
    [송종의 회고록 전문 (15)]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전국 검찰의 1/3 규모였던 공룡 같은 지방검찰청 지검을 떠났으나 대검에 못 간 검사장의 사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1993. 3. 17. ~ 1993. 9. 20.)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내건 대한민국의 국정지표는 4개였다.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건강한 사회, 통일된 조국, 이것이다. ‘깨끗한 정부’ 이 다섯 글자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단행되었다. 곧이어 공직자 재산등록제의 내용이 공표되었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조치였다. 검사장급 이상의 검찰 간부를 포함한 정

    3부 채색(彩色) ⑮ 짧고도 길었던 6개월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5-2)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5-2)

          지검을 떠났으나 대검에 못 간 검사장의 사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 Ⅱ (1993. 3. 17. ~ 1993. 9. 20.)   사건 보고를 받는 것만이 검사장의 직무가 아니다. 청의 운영 전반에 걸친 지휘와 감독이 검사장 본연의 임무였으나 검사장은 거의 사건 보고의 청취에 매달려야만 할 형편이었다. 이 시점에서 내린 검사장의 직무 명령은 다음과 같다.송치된 구속 사건의 피의자를 구속 취소하여 석방하는 것은 소관 차장검사의 전권 사항으로 한다. 검사장에게는 보고할 필요가 없다. 검사가 직접 사건을 인지하여 수사하는 때의 수사 착수 사실과 검사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작성하여 직접 구속하는 경우에만 검사장의 결재를 받는다. 그

    3부 채색 (彩色) ⑮ 짧고도 길었던 6개월
    [특별기고] 론스타 중재판정 ‘요지’ 읽기

    론스타 중재판정 ‘요지’ 읽기

      한국이 론스타에 2억1650만 달러를 물어주고, 더하여 2011년 12월 3일부터 모두 갚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 연평균에 따른 복리 이자를 지급하라는 중재판정이 떨어졌다. 청구금액의 4.6%만 인용됐다면서 95.4%를 이겼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중재판정부의 속내는 어떠했을까? 한국 정부가 95.4%를 이긴 거라 판단하였더라면,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부담한 중재비용 전부를 100등분 하여 그 95.4는 론스타가, 그 4.6은 한국 정부가 부담하도록 명하였을 것이다. 정부가 공개한 '요지'를 보면,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대로 론스타는 론스타대로 "각자가 지출한 비용 부담"하고 "중재비용 동등 부담"하도록 명하였다. 이걸 보면 승패를 반반으로 본 게 분명하다. 청구금액의

    곽경직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KNC)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5-1)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5-1)

      전국 검찰의 1/3 규모였던 공룡 같은 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Ⅰ (1993. 3. 17. - 1993. 9. 20.)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김 대통령의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내건 대한민국의 국정지표는 4개였다. 깨끗한 정부, 튼튼한 경제, 건강한 사회, 통일된 조국, 이것이다. '깨끗한 정부' 이 다섯 글자는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가 단행됐다. 곧이어 공직자 재산등록제의 내용이 공표됐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조치였다. 검사장급 이상의 검찰 간부를 포

    3부 채색(彩色) ⑮ 짧고도 길었던 6개월
    [송종의 회고록 전문 (14)]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날카로운 뿔과 송곳니를 함께 지닌 맹수의 화석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1992. 7. 29. ~ 1993. 3. 16.)   1993년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기 전해인 1992년 7월 29일자 검찰 고위직 인사 발령에 따라 나는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직에서 제9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전보되었다. 그때는 제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 정부의 말기였다.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어 다음 날인 12월 19일 김영삼 씨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의 취임식은 1993년 2월 25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때를 전후한 법무 검찰 수뇌부의 동정을 살펴보면, 허형구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히 요청하여 나를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에서 대검찰청 형사 제2부장으로 전보

    3부 채색(彩色) ⑭ 소용돌이 속에 거쳐 간 요직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4)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4)

      날카로운 뿔과 송곳니를 함께 지닌 맹수의 화석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1992. 7. 29. ~ 1993. 3. 16.)    1993년에 문민정부가 출범하기 전 1992년 7월 29일자 인사 발령에 따라 나는 제33대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직에서 제9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전보됐다. 그때는 노태우 정부 말기여서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돼 다음 날 김영삼 씨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다. 그의 취임식은 1993년 2월 25일로 예정돼 있었다. 나의 7개월 남짓한 중앙수사부장 재직 중에 내가 상사로 모신 법무부 장관은 4명, 검찰총장은 3명이나 된다. 19

    3부 채색 (彩色) ⑭ 소용돌이 속에 거쳐 간 요직
    [송종의 회고록 전문 (13)]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만대위명지지(萬代威名之地)’에 세운 대전 검찰청사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1991. 4. 18. - 1992. 7. 28.)   내가 공직 회고록을 쓰면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의 이야기는 따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써 두었던 「오대양 진혼곡」이란 글에 그 편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업무 일지를 살펴보다가 마음이 달라졌다. 우리 검찰사의 어떤 기록에도 없고, 오직 내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내용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이 글을 쓴다. 1991년 4월 18일자 인사 발령으로 나는 대검찰청 강력부장으로부터 제33대 대전지방검찰청 검사

    3부 채색(彩色) ⑬오대양의 파도를 넘어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3)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3)

      ‘만대위명지지(萬代威名之地)’에 세운 대전 검찰청사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1991. 4. 18. - 1992. 7. 28.)   1991년 4월 18일 오전 11시, 대전지방검찰청 대회의실에서 나의 취임식이 열렸다. 이 취임식장에서 내가 전 직원에게 말한 취임사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날짜 검찰 업무일지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보니, 일곱 줄의 메모로 적혀 있을 뿐이다. 전임 검사장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뜻, 내가 바라는 세 가지 꿈, 그리고 전 직원의 동참과 협조를 바라는 내용 등 세 가지 항목이다. 내가 바라는 꿈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충절과 예의의 고장'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항상 염두에 둔 검찰권의 행사. 2) 적극적이고

    3부 채색(彩色) ⑬오대양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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