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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악인(惡人)

    악인(惡人)

    김지운 감독의 2010년작 '악마를 보았다'는 정확히 불교 영화입니다. 석가는 불법을 전하겠다는 제자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너의 말을 듣지 않고, 모욕하고, 죽이려 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제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더라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곧 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석가는 제자의 청을 허락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약혼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살인범보다 더 잔혹한 악마가 되어갑니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도 복수를 멈추지 못한 주인공은 끝내 오열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자와 주인공 모두 내 마음도 언제든지 악(惡)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악(惡)이 어딘가에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거짓말의 기술

    거짓말의 기술

    재판을 하다 보면, 완전히 반대의 사실을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모두 한없이 진실되어 당혹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누구의 표정이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믿기 어려워, 자연스러운 거짓말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리해본다. 거짓말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 수많은 말들이 있었겠지만, 다른 증거로 인해 나중에 거짓임이 판명되어 미수에 그친 거짓말들이 있다. 그 거짓말의 순간들을 되짚어보며 이런 기술이 사용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먼저 사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중요한 한 두 가지만을 바꾸는 방법이다. 예컨대 자기 전 막내에게 "양치했니?"라고 물어보면, 막내는 자신 있게 "구석구석 깨끗이 했지!"하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하지만 구석구석 깨끗이 한 양치는 아침의 일이고(물론 '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공간

    공간

    관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채무를 조정하고 회사를 살리는 절차를 '회생'이라고 하는데, 이때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을 관리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대표이사가 관리인이 됩니다. 법원에 있으면서 많은 관리인을 봤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 본 관리인들 대부분은 쭈뼛쭈뼛하고, 조리있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질문을 이해 못 해 답답한 적도 많았습니다. 사업계획은 경영에 무지한 제가 보기에도 판타지 소설 같았던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지금은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한 회사의 대표이고,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직원을 책임지는 사람인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회사 현장에서 관리인을 만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사람의 눈빛부터 다릅니다. 눈빛은 반짝거리고 목소리에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인공지능 스피커

    인공지능 스피커

    인공지능 스피커 하나를 들여왔다. 말로 지시를 내리면 스스로 인터넷에 연결해 원하는 답을 준다고 했다. 동봉된 설명서에는 스피커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잘 할 거라는 질문의 목록이 있지만, 아이들이 거기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이 묻고 싶은 걸 물어보니, 스피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날씨를 묻는데 노래를 재생하고, 낱말을 물어보는데 배달주문 메뉴를 읊어대자, 아이들은 "알아듣지도 못한다"는 판정을 내리고는 이내 다른 장난감을 찾아 자리를 떴다.   스피커와 씨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나누는 대화를 떠올린다. 직접 소송을 하는 당사자들 중에는 '법이 없어도 사는 내가 악독한 상대방 때문에 얼마나 고초를 겪어왔는지' 호소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그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 , "(쉼표, 休止符)

    " , "(쉼표, 休止符)

    판결문을 작성하다보면 가끔씩 어떤 부분에 쉼표를 찍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한글맞춤법 사전에서 쉼표의 용례를 찾아보니 10여 가지 정도 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쉼표는 그 중 '끊어 읽는 부분을 나타낼 때'에 대한 것이다. 이 쉼표는 문법의 문제라기보다는 글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른 문장 흐름의 구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법관마다 글 쓰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 보니 모두가 느끼는 고민은 아닐 수도 있으나, 쉼표가 있고 없음에 따라 글의 호흡이 달라지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종종 쉼표의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런데 쉼표를 어느 부분에 찍을 것인가는 삶에 있어서, 특히 일을 할 때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늘 해오던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작법자폐

    작법자폐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는 법가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가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고 결국은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이 진나라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자가 바로 상앙이다. 그러나 상앙은 그를 중용하였던 왕이 죽자 실각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상앙은 도망하는 과정에서 그가 만든 '성문은 아침이 되기 전까지는 열 수 없다'거나 '증명서가 없는 자를 재워주어서는 안 된다'는 법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여기서 자신이 만든 법에 자신이 해를 입는다는 뜻의 작법자폐(作法自斃)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상앙은 결국 잡혀 죽임을 당하였고, 그가 만든 연좌제에 따라 삼족이 멸해졌다.   현대에 이르러 법치주의는 국가 운용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증거에 대한 斷想

    증거에 대한 斷想

    재판을 하는 입장에서, 보다 명쾌하고 생생한 증거가 제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다.   민사재판을 하다보면 일부 내용이 불명확한 계약서가 증거로 제출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당사자들은 "계약체결 당시 구두로 논의한 내용을 고려하면 위 계약서 문구의 해석은 어찌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계약내용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계약서 작성 당시 참여한 제3자를 증인으로 불러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 증인의 진술도 속 시원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제3자마저 존재하지 않는 경우 차선책으로 당사자신문을 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명쾌한 해결책은 아니다.   한편으로 형사재판을 하다보면, 요즘은 방범용 CCTV 카메라 및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가 늘어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휴정기

    휴정기

    통상 7월 마지막 주, 8월 첫째 주는 법원의 휴정기로, 긴박하게 사건을 진행해야 하는 등의 사정이 없는 한 재판을 진행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서 민원인 등 방문자도 눈에 띄게 적어지는데다가 근무자들의 여름휴가기간과 겹치는 탓에 법원은 매우 한적하다. 특히나 평소에도 절간이라고 불리는 판사실은 더욱더 시간이 느리게 가는 느낌이다.    통상 재판기일이 1주일에 1회 진행되는 관계로 법관의 업무는 1주일 단위로 돌아간다. 때문에 요일별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정해놓고 그 루틴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수개월이 순식간에 지나 휴정기를 맞는다. 그 때쯤에야 루틴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면서 놓쳤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 처리하기 어려워 미뤄두었던 업무를 챙겨볼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판결문

    판결문

    판결문을 쓰기 시작한 지도 십여년이 지났지만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은 여전히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다.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다소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문체, 통상 쓰이지 않는 단어와 문구, 각종 접속사로 계속 이어져서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문장 등이 참 생경하다고 느껴졌더랬다. 이제는 판결문을 작성하면서 각종 접속사를 동원하여 인용하고 문장이 길어지지 않게 끊어 맺는 것이 어렵지 않은 걸 보니 그 새 물들어 익숙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비법조인의 시각에서 보면 판결문은 부자연스러운 생경한 글일 수 있겠구나 싶다.    사실 판결문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판결문이 단순한 논설이 아니라 기술적인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재판의 조력자

    재판의 조력자

    재판은 법관 혼자서 하는 작업은 아니다. 사건관리 및 재판절차 진행에 있어서는 참여관, 실무관 등 재판부 구성원 전체가 협업하여 처리해 나간다. 그러나 실체적 판단 부분, 즉 판결의 영역은 법관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고, 단독재판부의 경우 단독판사 혼자의 몫으로 남게 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영역에도 조력자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재판업무의 보조적 역할을 수행하는 재판연구원이라는 존재가 있지만(법원조직법 제53조의2), 아직 1심 단독재판부까지 재판연구원이 배치되는 실정은 아니다. 따라서 단독판사들은 혼자서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단독판사도 때로는 사건에 대해 상의하고 토론할 대상이 절실히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언행

    언행

    판결을 선고했는데 전부 승소판결을 선고받은 당사자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손을 든다. "판사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심심치 않게 맞닥뜨리는 상황이지만 그 때마다 늘 망설인다. 이미 선고하였으니 무용한 일임을 설명하고 그냥 돌아갈 것을 권유할까. 아니면 일단 얘기를 듣고 무용한 일임을 설명할까.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진행하여야 할 사건의 당사자들도 눈에 들어온다. 늘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선택을 했더라도 결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상황에 놓이면 또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재판을 진행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드는 생각 중의 하나는, 그 결과가 꼭 그 때 내가 했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선택 후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일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어느 과학자의 인터뷰

    어느 과학자의 인터뷰

    얼마전 우연히 리처드 파인만(1918~1988. 이론물리학자. 1965년 노벨물리학상)의 짧은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왜 자석은 서로 밀어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의 답변이 흥미로웠다. 그는 "어떤 일이 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어떤 노부인이 병원에 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녀가 빙판에서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으로 보통의 경우는 충분한 답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른 행성의 사람에게도 이것이 적절한 답변이 될까. 넘어지면 골절이 생길 수 있는 것, 골절이 생기면 병원에 가는 것, 얼음은 미끄러운 것과 같은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왜 뼈가 부러지는가", "얼음은 물이나 기름과 달리 고체임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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