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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야! 문제는 스피드야

    바보야! 문제는 스피드야

    회생·파산 업무를 담당한 지도 7년째다. 언젠가 어느 기자가 회생·파산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스피드라고 했다. 회생·파산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채무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효율적인 회생, 공정하고 공평한 배당(변제)과 절차보장도 그 중 하나로 드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스피드라고 생각한다.   2014년 창원지법에서 파산부장을 맡고 있던 시절이다. 당시 창원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파산사건이었다. 3000건이 넘는 개인파산사건이 쌓여 있었고 매달 접수되는 사건도 만만치 않았다. 신건의 심문기일을 지정하려고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전하지 못한 마음

    전하지 못한 마음

    재판을 하다보면, 당사자들이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할 때가 있다. 가능하면 진술할 기회를 충분히 주려고 하지만 진행상 여의치 못할 때가 있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는 것이 오히려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어 제지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   법정을 나오면서 가끔 생각한다. 판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쉽게 입을 떼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을까.   임관한 첫 해에 형사 합의부 배석판사로서 법대에 앉았을 때에는 표정 관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기도 했고, 죄는 지었으나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개구리를 먹어라(Eat That Frog)

    개구리를 먹어라(Eat That Frog)

    도시에 살다보니 개구리를 보기 어렵다. 갑자기 웬 개구리냐고! 개구리를 먹으라고!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뒤로 미룰 것이 확실한 일, 그러나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일’을 개구리라 정의하고 이를 당장 먹으라고 강조한다. 어렵지만 중요한 일을 즉시 실행하라는 것이다.   파산·회생은 이제 일상적인 법률현상이다. 이로 인해 법률전문가로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을 모르면 법률상담은 물론 적절한 사건처리를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법원 외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법원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도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회생법원이 맡고 있는 업무 중 하나가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2026년의 법정

    2026년의 법정

    옛날에 어른들이 “받아 놓은 시간은 참 빨리도 온다”라고 하셨다. 그 땐 뜻을 잘 몰랐지만 요새는 그 말씀이 절로 느껴진다.    2026년이면 우리 법정에 제법 작지 않은 변화가 오도록 날이 받아져 있다. 지금은 경과규정이 시행중이지만 2026년부터는 법조경력이 10년을 채운 법조인만 법관으로 임용되어 재판을 할 수 있도록 한 법원조직법이 완전히 시행되기 때문이다. 그 전에 2023년부터는 법관의 재판을 보조할 수 있는 재판연구원의 정원에 대한 법률상 제한이 없어진다. 지금의 추세라면 그 즈음 전자소송은 모든 재판의 영역에서 국민 속에서 완전히 뿌리내릴 것이다.    이렇게 원숙한 경험을 가진 법관이 최신의 전자소송과 재판연구원의 조력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초심으로

    초심으로

    생업을 얻기 위하여 굳이 법조인을 꿈꾸지는 않지만, 막상 법조인이 된 후에는 오히려 생활인의 모습이나 판단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 가끔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99년 세기말의 겨울, 동료 연수생들과 진로에 대해 한참 고민할 때였다. 한 선배가 반 우스개로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잠시 만나던 분에게 판·검사, 변호사 중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자신이 상담해 주겠다고 하였단다. “그 중에 어디 일이 제일 어려워?” “여기는 이래서 어렵고, 저기는 저래서 어렵고… 비슷하게 다 어렵다고 봐야지.” “그럼 퇴근은 어디가 제일 늦어?” “검사는 처음부터 일이 많다 하고, 판사는 계속 일이 많다 하고, 변호사는 소나기처럼 일이 많다 하니,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다른 곳에서 바라보기

    다른 곳에서 바라보기

    얼마 전 아이들과 축구를 하다 과도한 몸놀림 끝에 그만 정형외과 신세를 지게 되었다. 혈기 왕성하던 젊은 판사가 이젠 어느새 중년을 향해 달려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탓이다. 그래서 결국 잠시나마 휠체어도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한참 달랐다. 무엇보다 휠체어에 의지해 나선 도로는 너무도 무서웠고, 목발을 짚고 나선 길은 정말로 멀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재판부간 자유로운 조언을 위해 법정방청을 할 기회가 생겨 법대가 아닌 방청석에서 법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매번 찾는 법대이고 또 법정방청이 처음은 아니건만, 역시나 법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재판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멀고 어렵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른 곳에서 일상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공정함에 관하여

    공정함에 관하여

    보통 공정하다고 하면, 누구에게나 노력과 기여에 비례하여 상응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이 원칙을 비례 원칙이라 부른다. 반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평등한 권리와 대우를 보장받는 것이 진정한 공정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구조적 불평등이나 차별에 노출된 집단이 있다면 혜택을 주어 이를 보정하는 것이 옳고, 그러지 못할 때 오히려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직관이다. 이를 보편 원칙이라고 한다.        두 원칙은 공정성을 이루는 두 축으로 모두 옳지만, 서로 충돌한다. 법정에서도 그렇다. 판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법정이 그 어느 곳보다 공정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개개 사건에서 실질적으로 공정함을 지키는 것은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

    판사가 재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술회의에 참가해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하고, 외부 위원회에 참석해 중요한 의사결정에 함께하기도 한다. 올곧은 재판에 헌신하라는 소명을 받은 법관으로서 오롯이 재판에만 집중하고 싶다가도 가끔은 그러한 외출이 상쾌한 기분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법원을 방문한 어린 학생들과 대화하는 일이었다. 이 사회에서 법이 왜 있어야 하고, 법원은 어떠한 역할을 하며, 그 과정에서 판사는 실제 어떠한 일을 하는지 맑은 눈망울의 어린 아이들에게 쉬운 말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모의법정에서 원·피고석과 법대를 오가며 잠시 심취하여 일인삼역을 하면서, “이 법정에선 대통령도, 누구도 오로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재판을 받게 된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대화의 방법

    대화의 방법

    재판은 일방적인 절차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상은 검사, 피고인과 재판부, 또는 양 당사자와 재판부 사이의 대화에 가깝지 않나 생각된다. 물흐르듯 서로의 맥을 짚으며 마땅한 결론으로 수렴되어 가는 재판도 있고, 힘은 엄청 드는데 제자리에서 맴맴 돌며 참가한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 모두가 갑갑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 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글을 접하였다. 대화의 방법을 설명한 글인데, 좋은 재판으로 바꿔 보아도 어색함이 없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보면, 대개 서로가 자신의 견고한 틀을 세우고 고집하는 경우라고 한다. 부모와 자녀 간에 벌어지는 설전이 보통 그런데, 부모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마땅히 공부를 함이 옳다는 결론을 정해 놓았고, 자녀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의 가치

    판사의 가치

    판사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적어도 성실성은 검증받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수험시절의 각종 유혹을 이기고 국가고시를 거쳐 임용되고, 그 이후에도 아무런 추가 보수나 지시 없이도 내면화된 책임감과 자기 절제로 임무를 감내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사는 종종 다른 직역의 인사 리쿠르팅 대상이 된다. 대형 로펌, 기업 법무팀, 로스쿨, 심지어 행정부 비서실까지….   그렇다면, 그런 판사를 스카우트할 수 있는 자릿값은 얼마나 될까? 어떤 조건이면 판사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던 사람이 그 자리를 툴툴 털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까? 정답은 간명하게도, 판사마다 다르다! 해당 판사가 가지고 있는 판사라는 직분에 대한 소명감과 직업적 만족도, 그리고 이직의 필요성, 나아가 새로운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당신도 보이스피싱범 될 수 있습니다

    당신도 보이스피싱범 될 수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갈수록 기승이다. 형사단독 법정은 세상의 거울이라는데, 요즈음 절도 사건보다 보이스피싱 관련 사건이 더 많으니 말이다. 범행에 사용된 통장과 카드를 대여하였다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분들이 있고, 돈을 인출하거나 카드를 운반하다가 사기 공범으로 기소된 분들이 있으며,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루되어 사기뿐 아니라 범죄단체 가입, 활동으로까지 기소된 분들도 있다. 심지어 최근 한 구속 피고인의 반성문에는 같은 방에 수용된 분들의 70%가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더라는 내용도 있었다.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분들을 일부러 함께 수용한 것이 아니라면, 정말 우려스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보이스피싱범이 되는 것은 그 피해를 당하는 것만큼이나 쉽다. 우선 통장이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약속

    약속

    4남매를 기르신 아버지는 내가 어린 시절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무척 진중하게 말씀하셨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되는 말씀의 요지는 이랬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씀은 나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내가 세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전달하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작은 약속을 하기 전에도 우선 지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지키지 못할 요청인 경우에는 아무리 애교를 부리며 애원해도 단호하게 거절을 하곤 했다.    하지만 매번 약속을 틀림없이 지킨다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한 번은 물놀이에 맛을 들이기 시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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