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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묘수는 없을까

    묘수는 없을까

      판사는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한 후 법률관계를 둘러싼 이해관계인의 여러 이익과 고려 요소들이 미리 반영되어 녹아 있는 실체 법리와 판례를 적용하는 포섭과정을 거쳐 결론에 이르게 되고, 최종적으로 판결문을 작성하게 된다. 통상은 이로써 재판으로 오게 된 해당 사건에 대한 법적 해결이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건은 이 지점에 이르러서 또 다른 각도에서 판사의 고민이 시작되도록 만든다. ‘법리와 판례대로라면 원고의 청구가 기각될 것인데, 과연 이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것이 맞을까?’, ‘법리에 따른 답을 내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 해당 사건의 구체적인 타당성에 더 부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게 되

    정문경 고법판사(서울고법)
    사법행정 다이어트와 체질개선

    사법행정 다이어트와 체질개선

      2015년도 부산에서 개최된 전국 가사소년법관포럼에서의 일이다. 당시 사법지원심의관이던 나는 둘째 날 해운대 백사장을 산책하던 중 가정법원 모 부장님께 장래 가장 필요한 가정법원 정책 등에 관한 의견을 여쭈었다. 그 분께서는 “가정법원의 내·외부 행사가 너무 많아 본연의 재판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이니 ‘가정법원 행사 간소화를 위한 TF’가 가장 필요하다”는 의외의 의견을 주셨다. 가정법원 재판업무 중 상당부분이 법원외부 자원을 활용하다보니 외부연계를 위한 행사가 많았고, 거기다가 당시 대법원이 외부와의 소통을 강조하는 기조와 엮이면서 가정법원에는 지나치게 내·외부 행사가 많았고 이로 인한 피로감이 발생했다. 부장님의 위 의견은 신선했으나 기존의 정책방향과 달라 이를 정책으로 추진할 수 없었

    권순건 부장판사(창원지법)
    친절하고 온화하게

    친절하고 온화하게

      소년법정에 오는 아이들 중에는 우울, 불안, 결핍, 분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다양한 원인으로 자해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더운 여름날 가녀린 양쪽 팔목에 나 있던 여러 개의 길고 붉은 상흔은 아직까지도 마음을 아리게 한다. 시설 내 처분을 하였던 아이가 자해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신경이 곤두선다. 대개는 ‘비자살성 자해(Nonsuicidal Self-Injury)’라고 하지만, 어쨌든 아프고 위험한 일이다.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접한다. 시도에 그치지 않아 심리불개시 결정을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와 미숙한 판단력, 부족한 경험과 막연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이런 행동들은 많은 경우에 적절한 관리와 관심으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

    김현성 판사(대구가정법원)
    인연의 의미

    인연의 의미

      인연은 사전적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말한다. 사람들의 수로만 보자면 서울법원종합청사에 오가는 유동인구가 서울역 못지않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니, 그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나 숨어 있는 이야기, 그에 따른 인연들 역시 너무나 다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인연이라는 말은 불교에서의 인과법칙을 구성하는 ‘인(因: 결과에 이르도록 하는 직접적인 힘)’과 ‘연(緣: 결과에 이르도록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 합쳐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맺어지는 ‘관계’를 중시해서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그러한 관계 자체를 지칭하거나 여기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운명’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판사는 전보인사 제도를 통해 여러 법원에

    정문경 고법판사(서울고법)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같은 내 새끼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에 ‘자전거를 찾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초등학생의 절취 장면이 담긴 CCTV 사진이 올라왔다. 우연히 이를 보게 된 아이의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무도 우리 아이를 몰라보길 바라면서 모른 체하거나, 아이와 함께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고 했던가. 보호자는 피해자를 고소했다. ‘감히 우리 아이를 공개 망신 주느냐’며 명예훼손의 죄목으로 말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예상대로다. 자전거를 찾는 일이 목적이었을 피해자는 아이를 절도죄로 고소하고, 엄벌에 처해달라는 탄원서도 제출한다. 법정에 온 아이에게 물었다. 자전거 주인에게 사과는 했니? “죄송합니다.” 용서는 판사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구하는 것이란다. 보호자

    김현성 판사(대구가정법원)
     세상이 유독 내게만 친절할 수는 없다!!

    세상이 유독 내게만 친절할 수는 없다!!

      2009년경 1심판결에 대한 상소권회복재판을 할 때의 일이다. 약식명령이 공시송달로 발령되었고, 이를 알지 못하는(혹은 알고 싶지 않아 하던) 피고인이 검사의 벌금형 집행에 따라 유치장에 구금되자 정식재판청구권회복신청을 하였고 1심 재판부는 이를 허가하면서 1, 2회 공판기일을 2주 간격으로 연속으로 지정하여 고지했고, 피고인은 같은 날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되었다. 그 후 피고인은 1, 2회 공판기일에 모두 출석하지 않았고 1심은 2회 공판기일에 형사소송법 제458조, 제365조에 따라 피고인의 진술 없이 유죄판결을 했다. 그 후 피고인이 다시 형 집행으로 유치장에 구금되자 1심판결에 대해 상소권회복신청을 하였다. 정식재판청구권회복신청을 하는 많은 피고인들이 위와 같이 구금

    권순건 부장판사(창원지방법원)
     “최대한 쓰는 데까지 써보고”

    “최대한 쓰는 데까지 써보고”

      "일단 결심(변론 종결)할 테니, 최대한 쓰는 데까지 써보고 도저히 안 되는 건 변론을 재개하는 걸로 하시죠.” 요즘은 이런 말을 하는 재판장이 거의 없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 연초가 되면 주심판사들이 흔히 들었던 이야기다. 인사이동과 사무분담 변경 시기(통상 2월 셋째 주)를 앞두고, 한 주간 적정 선고 건수로 재판부가 정한 ‘슬롯(기일별 선고사건수)’이 다 차버린 상태에서, 더 이상 심리할 것이 없을 정도로 무르익은 사건이나 당사자나 대리인이 빨리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호소하는 사건이 밀려들어 난감한 상황을 맞은 재판장이 ‘일단 결심해놓고’의 미봉책으로 대처하곤 했던 것이다. 주심판사들 사이에서는 재판장님의 저 ‘최대한 쓰는 데까지 써보고’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이

    차기현 판사 (광주고등법원)
    1인치만 더 파보기

    1인치만 더 파보기

      [사례 1] 2004년도 군법무관 시절의 사건이다. 소속 부대 장교가 민사소송을 변호사 없이 제기하였는데 1심에서 패소하였다면서 법률상담을 요청했다. 1심 판결문을 읽어보니 장교가 매매계약 해제를 주장하면서 지급하였던 계약금과 중도금의 반환을 구하였는데, 해제권 발생요건 등에 대한 심리에 앞서 매매계약 해제 통지를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는 적법한 해제권 행사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을 하였다. 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장교에게 판결문의 취지처럼 내용증명 우편 등으로 지금이라도 매매계약을 해제한다는 통지를 보내고 항소심에서 가서 다시 다퉈야 한다고 상담해주었다. 상담 후에 다른 동기 군법무관들에게 그 사례를 공유하면서 매매계약 해제 통보는 소장이든 준비서면이든 명시적으로 ‘계약을 해제한다

    변호사의 청룡언월도(3)
    축하받을 일이지만

    축하받을 일이지만

      판사로서 법원 생활을 계속하여 일정 시기가 되면 법원 구성원들로부터 축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단독판사가 되었을 때, 인사이동에서 희망하는 보직이나 근무지로 발령이 났을 때, 연수 법관으로 선정되었을 때, 연임되었을 때, 부장판사가 되었을 때 등이다. 이와 같은 법원 생활의 변곡점 무렵에 축하를 받게 되면 축하해 주는 법원 구성원들에게 소소하게나마 기분 좋게 한턱을 내기도 한다. ‘재판장’이라는 호칭을 처음 듣게 되는 단독판사가 되었을 때 책임감과 동시에 설렘이 느껴진다면, 합의부 재판장 자격이 주어지는 초임 부장판사가 되어 ‘부장님’으로 불리게 되었을 때는 장기근속 승진을 한 듯 뿌듯함도 느껴진다. 요즘은 부장판사라도 사무분담에서 단독판사 업무를 맡는 경우가 비일비

    정문경 고법판사(서울고법)
    법관의 심판역량 극대화 2부

    법관의 심판역량 극대화 2부

      서울고등법원 춘천재판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민사사건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법인이 민간업체와 공공성을 띤 내용의 계약을 맺었는바, 법인이 민간업체가 계약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계약을 해제하고 원상회복을 구하는 취지의 사건이었다. 1심은 민간업체가 계약을 위반한 것은 맞지만 여러 사정상 계약을 해제할 정도의 의무 위반은 아니라는 이유로 민간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새로이 항소심을 맡은 법인 측 대리인은 항소이유서부터 위 계약이 사법상 계약인지 공법상 계약인지에 관하여 상당 부분 할애하여 다투기 시작했고, 상대방 대리인 역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에 관해 다투기 시작했다. 오히려 1심에서 주된 공방의 대상이었던 계약 위반 여부, 계약 위반이라면 계약을 해제할 정도인지에 관하여는

    변호사의 청룡언월도(2)
    권역별 소년분류심사원 설치부터

    권역별 소년분류심사원 설치부터

      제1심 재판부 중 가장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곳은 어디일까? 대구와 경북을 관할하는 대구가정법원 소년부다. 상당한 규모의 지원이 있는 포항, 김천은 물론이고, 울진군, 영양군처럼 대중교통으로 왕복 8시간이 넘는 거리에서 소년과 보호자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출석한다. 한번은 출석하지 않아 알아보니 집 근처 지원에서 재판하는 줄 알고 그곳 법정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고, 보호자의 생업이나 버스 시간 때문에 재판일시를 조정해 달라는 요청도 드물지 않다.유독 소년보호사건만 지원에서 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소년을 수용하면서 비행 원인을 진단한 결과를 심리자료로 제공하는 소년분류심사원 때문이다. 비행성이 심화되는 단계에 있거나 중한 비행을 저질러 분류심사원에 위탁되는 소년의 대부분은 생전 처음으

    김현성 판사(대구가정법원)
    법관의 심판역량 극대화 1부

    법관의 심판역량 극대화 1부

      2011년도 고등법원 근무하던 시절의 형사사건이다. 피고인이 어린 외국인 아내에게 졸피뎀 등을 먹여 잠을 재운 뒤 집에 방화하여 살해하고 아내의 사망보험금을 청구하여 보험사를 기망하였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었다.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들은 직접적인 증거가 아닌 간접증거만 있었지만 그 증거들은 매우 자극적이고 유력하여 공소사실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었고 언론 등에서도 피고인이 범인인 것으로 단정하고 피고인을 비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고인과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극구 부인하였다. 주심이었던 나는 ‘혹시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피고인과 변호인의 변소처럼 집에 강도가 들어와 방화를 하였거나 방화가 아닌 누전 등으로 화재가 난 것일 수도 있지 않을

    변호사의 청룡언월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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