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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리스트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금전으로나마 위자할 의무

    “내 옆에서 늙어 죽어!” 외도의 끝,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향해 아내가 절규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오래전 방영된 것이라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아내의 한마디는 가끔 떠올리게 된다. 현실의 세계에도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상처 입은 많은 남편들과 아내들이 있다. 주저 없이 배우자와의 결별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혼인 생활을 이어가는 부부가 어쩌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들이 결별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여전히 배우자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문제였을 수도 있고, 오기나 보복적 감정이었을 수도 있다. 그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꼭 집어 말할 수 있을까. 더는 함께할 수 없다 생각하며 이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다가가는 인기척

    다가가는 인기척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목포 신항만에서 마주하고는, 작가 김훈의 순직 소방관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숨진 대원이 암흑 속에서 고립되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중략) 고립된 대원들이 그 암흑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중에서)  재판을 하게 된 후 언젠가부터 ‘사회적 죽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슬픈 소식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희생과 욕심 사이

    희생과 욕심 사이

    # 이혼법정 “국제중학교, 생각하고 있어요.” 피고석에 앉은 그녀의 얼굴에 묘한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과도한 교육열이 다툼의 불씨가 된 사건이었다. 남편은 아이의 교육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는 사립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이가 졸업해서 중학교에 가면 좀 낫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아이가 공부를 곧잘 해서 국제중학교에 보낼 것이라고. 최고로 키울 것이라고. 부모가 되어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라고. 동의하지 않는 남편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결국 부부는 이혼에 합의했다. 과연 그 아이는 행복할까. 자라서 자신의 교육 문제가 빚어낸 갈등으로 부모가 이혼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소년법정 폭력 사건으로 경찰 조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독립에 걸맞는 책임

    독립에 걸맞는 책임

    지달달 25일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공동개최한 학술대회(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법관독립 강화의 관점에서)에서 참석자들은 독립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우리 법관인사제도의 문제를 검토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그 자리에서는 “법관의 독립성과 책임성은 판결의 정당성을 이끌어내고 확보하기 위하여 상호 작용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 사법부 독립은 맹목의 것”이라며 독립에 걸맞는 법관의 책임도 누차 강조되었다.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인권 보호를 위해 보장되는 것이다. 국민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법에 의해 재판을 받기도 하는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였다면(헌법 제103조) 오판을 하더라도 개인적 책임을 지지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아버지의 성(姓)

    아버지의 성(姓)

    잔뜩 긴장한 표정의 앳된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소년법정에 들어섰다. 소년의 환경 조사서에는,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하였고, 소년은 어머니와 계부, 계부의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함께 온 아버지는 소년과 성이 달랐다. 눈매가 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계부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애 엄마가 애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친구 관계도 정리시킬 겸, 한 달 전쯤에 제가 데려왔습니다. 전학도 했고요. 아이 데리고 재혼한다고 해서, 잘 살라고 아들 성 바꾸는데도 동의해 줬는데, 이제 제가 데려왔으니 다시 성을 바꾸려고요.” 그는 소년의 친아버지였다. 성과 본이 다른, 눈매가 닮은 친아버지. 아마도 소년은 곧 친아버지를 따라 원래의 성과 본으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

    현재 삼권분립의 국가틀에서 핵심적인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장의 자리가 비어 있고, 현 대법원장의 임기도 9월 말 만료된다. 국민들은 5월 9일까지 후보들을 면밀히 따져 새 대통령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새 헌법재판소장과 후임 대법원장의 선정에 국민들은 물론 헌법재판소나 사법부 구성원들이 참여하지 못한다. 헌법상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만으로 임명하기 때문이다. 5월 선출되는 대통령이 새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의 후임을 정하는 데 사전에 거쳐야 하는 공식 절차가 없다. 오직 ‘제왕적 대통령’ 1인의 의중에 달려 있어, 특정 정치세력이나 비선을 통해 내정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이후 거치는 국회의 동의도, 국민의 투표 지지와 의석 수의 비례성에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그녀의 진심

    그녀의 진심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니까요! 상담도, 교육도 필요 없어요.” 텅 빈 동공의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살다보면 뺨 한 대 때릴 수도 있지, 이제 다 잊고 잘 살고 있는데, 국가가 집안 문제에 개입해서 이혼시키려고 하느냐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은 너무 잘해준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법정 밖으로 내보내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이크까지 꺼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녀의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법정에 섰고, 상담위탁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그는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르고 뺨을 때렸다.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사는 만큼

    사는 만큼

    2월 큰 규모의 법관 인사이동이 있었다. 작년 봄부터 연잇던 법조비리에 대한 1심 재판이 일단락되고 국정농단과 탄핵심판 국면에서 법조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와중이라선지, 법정 안팎에서 내가 사는 실상을 살피는 계기가 된다. 신임 법관을 축하하면서 지금 판사의 일은 문병일지 모르니 사건으로 다가오는 마음을 더듬어 환대하기를 응원하고, 사직한 동료가 안타깝지만 헌법기관으로서 공적으로 형성된 존재이니 법정 밖에서도 먼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축복한다. 광장을 통하여 ‘모두에 의한-모두를 위한 나라’ 민주공화국을 대의제 틀에서 벗어나 ‘시민(Demos)의 힘(Cracy) 자체’로도 보게 되자, 우리 재판부의 법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지, 새 헌법재판소장과 9월 임기 만료인 대법원장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학대의 기준

    학대의 기준

    “막말로, 애가 죽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닌데, 학대라니요!” “고작 뺨 한 대를 가지고 학대라고 하면, 애를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라는 말입니까!” 학대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인지, 아동보호법정에 선 행위자들 대부분은 격한 불만을 토로한다. 아동복지시설에 피해아동을 보호 위탁이라도 한 경우엔, 국가가 아이를 납치했다며 소란을 피우기도 한다. 법률상 용어인 ‘행위자’라는 표현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훈육이 목적이었을 뿐, 절대 학대는 아니라 강조한다. 얼마 전 뉴스에, 어느 어린이집 교사가 먹던 음식을 뱉었다는 이유로 아이의 뺨을 때리는 CCTV 영상이 방영되었다. 모두가 분개했다. 어느 누구도 학대가 아니라 말하지 않았다. ‘고작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작별

    작별

    너무 많이 회자되어 다소 진부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격언이 있다. 모름지기 판사는 자기가 맡은 사건에 대해 자족적이고 설득력 있는 판결을 통하여 재판의 결론과 그에 이른 과정의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해 보일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그 외의 일체의 설명이나 부연은 대개 불필요한 군더더기일 뿐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때로는 이 말이 판사는 판결을 잘하면 그뿐이고 그 밖의 세상사에는 거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판사들이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대체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판결의 권위가 어느 정도 확보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전반적인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소수 전

    서동칠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추억

    추억

    기억은 잊혀지기도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그 여름, 동물원’에서 극 중 창기는 느닷없이 떠오르는 광석과의 추억이 불편하다 말한다. 아마도 친구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 친구의 선택을 막지 못한 자책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의 생각은 친구가 떠난 후 발표한 노래에도 배어 있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처음 동물원을 만난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꼈고 그 편안함은 그들이 가수라기보다 노래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모임, 아마추어라는 인상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난 음악과 함께 나이가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노래방 문화가 시작되던 시절 희귀음반을 찾듯 노래책을 뒤져 기어이 그들의 노래를 찾아냈다. 유명 가수를 동경한 기억은 없지만

    이광우 판사(서울가정법원)
    자백

    자백

    필자는 뇌물, 배임수재 등 형사 부패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부인(否認)하는 사건의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한 기일에 여러 명의 증인을 소환하여 늦게까지 신문을 진행하기 일쑤다. 구속기간의 제한 때문에 기일을 여유 있게 잡을 수도 없다. 얼마 전 사석에서 이러한 고충을 토로하였더니, 주위에 있던 법률가 몇 분이 "부인하는 사건은 개전의 정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형사절차가 간명하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피해자는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의 면전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합의나 피해변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고인의 자백에다가 보강증거까지 더해지면 사안의 진상이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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