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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측은지심

    측은지심

    2019년 2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1556조 원에 이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채무자는 어떠한 이유에서건 빚을 갚지 못한다.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하는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오래 전에는 노예가 되기도 했고 감옥에 보내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법원을 통하여 합법적이고 신속하게 빚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이다.   개인파산은 개인이 소비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채무를 본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때 법원이 채무자가 가진 총재산을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갚아주고 나머지 채무를 모두 면책시켜주는 절차다. 반면 개인회생은 정기적으로 생계비 이상의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급여소득자나 영업소득자가 원칙적으로 3년 간 일정 금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팀, 팀워크

    팀, 팀워크

    법관 생활의 첫 단추는 합의부 소속 배석 판사에서 시작한다. 같은 부 구성원들, 특히 재판장인 부장판사와 함께 근무하면서 재판 진행과 사건 관리 등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때가 이 기간이다. 운이 좋아 7년 동안 훌륭한 선배 및 동료 법관들과 일할 수 있었다. 햇병아리 판사 시절 함께 근무한 부장님은 그 중에서도 가장 모범이 되는 분이셨다. 재판장의 역할과 자세, 법정에서의 언행 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여러 번 감탄을 했다. 규모가 큰 형사 사건이 종결되어 판결문을 쓰느라 애를 먹고 있을 때 부장님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시면서 했던 말씀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한 팀이기 때문에 나와 남의 일의 구분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 진행은 재판장의 몫이고, 배석 판사인 나는 판결문만 잘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중국의 파산법 굴기

    중국의 파산법 굴기

    2019년 10월 16일. 중국 심천시 중급인민법원(우리나라의 지방법원으로 보면 된다) 초청으로 심천에서 개최된 국제도산세미나에 다녀왔다. 중국 칭화대학에서 1년 유학을 하던 시절 대부분의 중국은 가보았지만, 심천은 공교롭게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오랜만에 중국행이라 기대도 되고 설렘도 있었다. 이전에 갈 때보다 비자며 입국절차 등이 많이 까다로워졌음을 느꼈다. 물어보니 사드사태 이후에 절차가 번거롭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이 이번 국제도산세미나를 개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도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고, 둘은 홍콩 등과의 관계에서 국제도산사건이 증가함에 따라 그에 대한 제도를 갖추기 위함이었다. 중국은 법인도산제도만 있을 뿐 개인도산제도는 없다. 현재 중국은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치유의 법정

    치유의 법정

    사회가 어려워지면서 법정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과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거듭된 실패와 갈등 속에서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판사에게 화를 내고, 눈물로 하소연을 한다. 절차대로 진행하고 판결을 선고하는 것이 사건 진행 면에서는 빠를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들이 판결에 진심으로 승복할 리 만무하다. 여러 차례 조정 기일을 진행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판결문을 쓰는 것보다 품이 훨씬 많이 들고, 조정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법정에서 미처 몰랐던 사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경험과 지혜가 쌓인 조정위원이나 상임 전문심리위원들의 한 마디가 판사의 법률전문지식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형사 법정에서도 형을 선고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할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미국에서는 내년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메사추세츠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인 엘리자베스 워런이 1위에 올랐다. 워런이 2020년 트럼프 대항마로 입지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미국 강남좌파(limousine liberal)의 아이콘 워런은 “무너진 중산층을 재건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부자과세, 페이스북·구글 등 IT공룡의 해체 등 강한 진보성향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주립대 등록금 면제 및 학자금 대출 탕감, 전 국민 건강보험 등 좌파 포퓰리즘 정책도 쏟아냈다.    워런은 휴스턴대에서 언어병리학을 공부하였고,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가 되었다.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교수로 도산법을 강의한 경험이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판사의 무게

    판사의 무게

    아이가 잠들 때마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 어느날은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기의 진짜 엄마를 가리는 명판결을 내린 솔로몬 왕이 지금의 판사와 비슷하다는, 자랑섞인 설명도 덧붙였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에게 읽어주는 성경동화에 솔로몬 왕이 등장하였다.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여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는 순간 ‘아니, 판사가 어떻게?’ 라는 배신감(?)이 들었다. 솔로몬이 직업법관이 아니라 재판관 역할을 한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 것은 그로부터 몇 초 후였다. 솔로몬을 판사로 착각한 내 자신에 실소가 나왔지만, 한편 ‘판사’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nbs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청춘파산

    청춘파산

    “면책을 받은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내 행동에 큰 변화가 있었다. 나는 등을 곧게 펴고 걸었고 안경 밑으로 주변을 둘러보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쓰지 않아도 되었다. 미행하는 자가 없는지 살피기 위해 외출 시 주머니에 늘 소지하던 작은 손거울을 빠뜨렸을 때, 다시 집으로 뛰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10년 만에 출옥한 죄수처럼 낯선 편안함을 만끽했다.”   소설가 김의경은 한 젊은 여성의 파산과 그 극복과정을 그린 소설 '청춘파산'에서 면책에 대한 감회를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서전적 소설에서 작가는 빚으로 인해 사회생활이나 심지어 연애에 있어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일상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하루살이 아르바이트다. 그녀에게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피해자다움

    피해자다움

    두 사건 모두 택시기사인 피고인이 택시 뒷자리에 탄 여성 승객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한 사건의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아무런 거부 의사나 표현을 하지 않은 채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 피고인을 신고하였고, 다른 사건의 피해자는 택시 안에 부착된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사진으로 찍어 지인에게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두 사건 모두 피고인들이 혐의를 부인하여 피해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변호인은 이렇게 물었다. “제가 피해자라면 피고인에게 항의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핸드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 같은데 왜 가만히 있었나요? 정말 피해를 당한 게 맞나요?”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변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44일

    44일

    기업이 회생신청을 망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가 회생절차를 시작하여 언제 끝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지금은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법원의 감독을 받기 때문에 경영자 입장에서는 진행 과정에 대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안함을 해소해야 법원의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다.   수원지법 파산부장 시절 회생신청부터 종결까지 44일 만에 끝낸 사건이 있었다. 회생신청 전에 대리인(변호사)으로부터 면담신청이 있었다. 대리인은 회사의 사정과 신속하게 회생절차를 진행하여 줄 수 있는지 문의 하였다. 이른바 신청 전에 사전상담을 한 것이다.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일산 풍경

    일산 풍경

    9월의 사법연수원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와 비슷하다. 15년차 이상의 법관을 대상으로 하는 경력별 연수를 시작으로 인문학 교양 연수, 특정 주제에 관한 법률적 쟁점을 다루는 어드밴스 과정 등이 예정되어 있다. 10월부터 4개월간 연수를 받을 신임 법관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도 한창이다. 전국 법원의 법관들과 사법연수원 교수들로 구성된 신임법관 교수단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한 기록 검토, 판결문 작성 등의 실무 교육 외에도 인문학과 윤리 등 다양한 분야의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사법연수원을 찾는 이들은 법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재판연구원, 사법보좌관, 군법무관, 조정위원, 가사상담위원 등 법조 각 직역별 전문가 연수도 연중 진행된다.   법조 전문가들에 대한 교육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바보야! 문제는 스피드야

    바보야! 문제는 스피드야

    회생·파산 업무를 담당한 지도 7년째다. 언젠가 어느 기자가 회생·파산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스피드라고 했다. 회생·파산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채무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효율적인 회생, 공정하고 공평한 배당(변제)과 절차보장도 그 중 하나로 드는 것이다. 하지만 재정적 어려움에 처한 채무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스피드라고 생각한다.   2014년 창원지법에서 파산부장을 맡고 있던 시절이다. 당시 창원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파산사건이었다. 3000건이 넘는 개인파산사건이 쌓여 있었고 매달 접수되는 사건도 만만치 않았다. 신건의 심문기일을 지정하려고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전하지 못한 마음

    전하지 못한 마음

    재판을 하다보면, 당사자들이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할 때가 있다. 가능하면 진술할 기회를 충분히 주려고 하지만 진행상 여의치 못할 때가 있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는 것이 오히려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어 제지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   법정을 나오면서 가끔 생각한다. 판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쉽게 입을 떼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것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을까.   임관한 첫 해에 형사 합의부 배석판사로서 법대에 앉았을 때에는 표정 관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을 참기도 했고, 죄는 지었으나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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