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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택시 안에서 생긴 일

    택시 안에서 생긴 일

    몇 년 전 일이다. 아침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출근 시간에 택시를 타면 평소 목적지로 맞은 편 00아파트를 이야기하는데, 그날따라 그만 법원으로 가 달라는 말이 바로 나와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님이 잠시의 침묵 뒤 “판사님이시죠?” 하신다. 아차 싶었지만 유독 피곤하였던 탓인지, 거짓말에 서툰 안타까운 주변머리 탓인지, 그만 "아~ 예" 하고 웃고 말았다. 판사임이 알려지고 편안한 소리 듣기가 쉽지는 않을 터라 약간 긴장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마디 감탄사 후 바로 물어보신다. “혹시 000 판사님이라고 아세요?” 알아도 모르고, 마땅히 몰라야 할 일이다. “예, 모르는 분이네요.” 그래도 아랑곳없이 말씀을 이어 가신다. “제가 그분한테 재판이 있었거든요.”  말씀인즉슨, 재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를

    한국 법정에서 웬 영어를

    외국에서 차를 운전하다 교통경찰 사이렌 소리라도 듣게 되었을 때 잔뜩 긴장하였던 기억은 많이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판사라고 예외는 없다. 만일 작은 실수로 소송절차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 어색한 외국의 법정에서 언어마저 외국 말로 임해야 한다면 나와 내 가족의 권리를 충실히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을 넘어 공포가 밀려온다.  작년에 OECD의 초청으로 카자흐스탄에 방문하여 흥미로운 국제 법원을 소개받았다. 카자흐스탄은 최근 영국의 은퇴한 법관들을 판사로 임명하여 법원을 구성하고 상사 관련 투자분쟁의 경우 당사자들이 원하는 경우 그 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게 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카자흐스탄은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지도 않고 보통법 국가도 아니며 사법제도도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국제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이게 언제적 일인데

    이게 언제적 일인데

    “이게 언제적 일인데 아직 안 보셨다뇨. 너무한 거 아니에요?” 공공기관에서 폭언을 하고 소란을 피워 업무방해로 기소된 분이다. “형사재판을 시작합니다. 불리한 진술은 거부할 수 있으시고…” 하는데 바로 호통이시다. 상대방이 괜찮다고 했는데 왜 재판은 시작하며, 판사는 그걸 왜 아직 모르냐는 취지시다. "음… 일단 법원으로는 뭐 들어온 게 없어서 못 봤고요, 증거기록에 있는 걸 판사가 보려면 일단 증거조사 단계까지는 진행해야 하는데요." 그러나 이럴 때 공소장 일본주의가 다 무슨 소용 있으랴. 실무관에게도 벌써 전화하여 내가 왜 법원에 가야 하느냐 호통을 치셨다는데, 일단 뵙고 판단해야겠다 싶어 기일을 열었더니 이렇다.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에요. 나쁘게 하면 안돼요. 힘들게 하지 마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의 숙제검사

    판사의 숙제검사

    판사보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훨씬 어렵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무언가 작성된 것에 대해 의견을 더하고 보다 설득력 있고 옳다고 여겨지는 주장을 선택하기는 쉽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란 그에 몇 곱절 힘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 한 변호사님이 농담처럼 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변호사는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법정에 갈 때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고 특히 판결선고 날에는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라는 말씀이었다. 오늘도 변호사들이 주장을 빼곡이 담아 준비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한다. 이에 질세라 상대방 변호사는 곧이어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고 관련 증거를 찾아 제출한다. 심지어 오전 11시 재판 사건인데 같은 날 10시 30분에 장문의 준비서면을 제출하는 당혹스런 경우도 보았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세상?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세상?

    세기의 대결로 불렸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간의 바둑 대결도 벌써 몇 해 전 일이 되었다. 당시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던 제4국은 인공지능에 거둔 바둑에서의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이미 전자계산기가 나왔을 때부터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지만, 계산과 논리적 사고의 측면에서 인간은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음이 다시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 빅 이벤트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따로 있었다. 아마도 1국 또는 2국의 패배 후였을 것이다. 바둑에는 복기라는 것이 있다. 대국이 끝난 후 순서대로 다시 두어보는 일인데, 전문기사들의 대국에서는 승부 후 함께 복기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오랜 관례라고 한다. 서로에게 승부보다 더 큰 깨달음과 성장의 기회가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알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책가방 멘 판사

    책가방 멘 판사

    판사로서 10여 년 경력을 쌓게 되면 주어지는 가장 향긋한 보상 중 하나는 바로 1년 내외의 해외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하며 재충전의 시기가 되기도 하고 사건 해결에만 매달려온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같은 시간이 된다.    몇 해 전 해외연수 기회에 외국 대학에서 LL.M.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새내기 로스쿨 학생들과 나란히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판사로 재직하였다는 자긍심이 앞선 나머지, 학생으로 돌아간 것이 못내 어색하고 왠지 지위가 강등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때의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는 사법연수원 입소생이 단 한 명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농아인 70대 후처가 평생 함께 살아 온 80대 본처를 둔기로 살해한 데 대하여, 집행유예가 아니라 상당한 기간의 실형을 선고한 사건이 최근 있었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살인이고 실형은 마땅하다는 견해와, 할머니의 답답하고 기구했을 인생과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판결이라는 비판이 팽팽하게 공존한다. 같은 것을 같다고, 다른 것을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판사의 일이라고 배웠는데, 어째 이 일은 연차가 쌓일수록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경제적으로 궁하여 십만 원을 훔친 것과, 재산이 넉넉한데도 순간적인 장난기로 십만 원을 훔친 것은 똑같은 십만 원 절도인가.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면 누가 더 나쁜가. 영원히 너만 바라보겠다는 혼인의 맹세가 채 시들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의 절값

    판사의 절값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자주 받지 못하던 시절, 설날이 너무 좋았다. 아침 일찍 세배를 하면 할머니는 꼬깃꼬깃 아껴두었던 용돈이나 사탕을 흔쾌히 내어 주셨다. 그 절값을 받을 마음에 들떠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세수를 하고 공손히 절을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법대에 앉아 하루에도 수십 건씩 진행되는 사건을 지켜보자면 법정에 들어오고 나가는 당사자나 대리인들의 모습에도 눈길이 간다. 흥미로운 것은 재판장이 아닌 합의부 구성원이다 보니 그러한 모습이 보다 자세히 보인다는 것이다. 그 중에 유난히 재판정에 들어오고 나갈 때 법대를 향해 정중히 예를 표하는 분은 눈에 뜨이기 마련이다. 사실 법정 출입에 있어 예의를 갖추도록 하는 것은 여러 나라에 있는 일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높이 보장된다는 미국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진정한 친구

    진정한 친구

    전래동화 중 ‘진정한 친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옛날 큰 부잣집 외아들이 있었는데, 친구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깊은 밤, 아버지가 조용히 불러 죽은 돼지를 거적에 똘똘 말아 지게에 척 얹어 주더니 "그걸 메고 친구들을 찾아가 '내가 어쩌다 사람을 죽였는데 어쩔 줄 몰라 그만 메고 와 버렸다'고 해 보라" 하였다. 아들이 자신 있게 제일 친한 친구를 찾아갔는데, 이야기 듣고 지게 위에 얹힌 것을 흘긋 보더니만 그만 새파래져서 한참 있다 보자 피해 버리고, 다음 친구도, 그 다음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찾아간 친구 하나만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얼른 맞아들여 숨기고 함께 으슥한 곳을 찾아 거적에 말린 것을 묻어 주었고, 이에 아들은 그 많은 친구 중에 진정한 친구는 그 하나뿐임을 깨달았다…. 대략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합의부, 마음의 벽 허물기

    합의부, 마음의 벽 허물기

    요즈음 법원에서는 수년간 단독판사나 심지어 지방·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일해온 판사가 다시 합의부의 주심판사 역할을 맡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일정 연수 이상의 법조 경력을 갖춘 사람만이 판사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한 법조일원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배석판사를 거쳐 단독판사, 부장판사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던 소위 도제식 시스템에 일대의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법조일원화 측면에서만 바라볼 것은 아니다. 법원 내부에서는 그간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는 그 역할은 물론 위상이 다르다는 암묵적 인식이 있어 왔고, 그러한 구분은 점차 두 그룹 사이의 벽이 되고 심지어 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한편에서는 주심판사가 재판의 절차 진행이나 재판부 기일 운영에 관심이 없다고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법관의 책임

    법관의 책임

    힘든 판결을 선고하고 지쳐 퇴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원고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순간의 판단 실수를 하였을 뿐인데, 그에 비해 행정청의 처분이 너무 가혹하고, 그로 인해 원고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변론 기일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원고의 어머니는 기일을 거듭할수록 수척해졌고 선고 날에도 어김없이 나와 결국 깊은 울음을 터뜨렸다. 원고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호감이 갔고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법의 취지는 명확하였고, 원고의 여러 사정은 그와 같은 처분을 받은 다른 이들과 그의 사건을 달리 보도록 하기에 부족하였다. 이래저래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던 중 전방에 정지신호가 들어왔다. 차를 천천히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판사들의 이사 몸살

    판사들의 이사 몸살

    바야흐로 꽃이 피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이다. 그리고 봄은 이사철이다. 이사를 앞두고는 마음이 심란해지기 마련이다. 살던 집을 단장하는 데 고심하기보다는 마음은 벌써 새롭게 살 곳에 대한 고민이 앞선다.  봄이 시작되는 2월 말경 인사철이 되면 법원에도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전체 판사의 3분의 1이 넘는 판사들이 참고서적이며 업무용품 등을 바리바리 챙겨 전국으로 떠났고, 법원 내부 이동까지 포함하면 인사일을 기준으로 업무가 바뀌는 판사의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이사는 종종 몸살을 앓게 한다. 그리고 판사들의 이사 몸살은 국민들에게까지 옮아간다. 인사이동이 다가오면 변론을 종결하기에 무르익지 않은 사건이나 중요한 증거조사가 예정된 사건 등은 부득이 인사이동 이후

    김영기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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