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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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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과 바꾼 한 턱

    목숨과 바꾼 한 턱

    한 턱을 내겠다고 했을 때 한 턱은 과연 얼마일까? 1997년 서울남부지법 박해식 판사님은 한 턱은 맨 처음 주문한 것의 금액만을 의미하고, 그 이후에 추가 주문된 것은 참석자들이 나누어서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을 하였고, 그 이후 한 턱을 내겠다고 한 사람은 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만 먼저 주문을 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필자에게도 한 턱과 관련해서 지금도 기억나는 가슴 아픈 조정 사건이 1건 있다. 시골에 살던 친구 A가 그해 배추 값이 엄청 좋아서 대박이 났다며 배추 판 돈을 들고 상경하여 친구 B에게 한 턱을 내겠다고 제안을 하였고, 그 후 실제 A와 B가 서울 어느 좋은 음식점에서 상봉하여 맛난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었다. 그런데 A가 화장실을 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가격을 물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ㄴㄴ'의 추억

    'ㄴㄴ'의 추억

    “친구한테는 만졌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아니라는 건가요?” 강제추행 사건 피고인에게 묻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단다. 빤한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채팅 기록을 스크린에 띄우고 다그쳤다. 언성도 높아졌다. “여기, 친구가 물으니까 본인이 ‘ㄴㄴ’썼네요. ‘네네’란 거잖아요!” 순간 법정이 조용해졌다. 피고인은 이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판사님, 그거 ‘노노’인데요.” 민망함, 미안함, 다행스러움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려 주셔야 알죠.’ 판사가 모르는 건 초성체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용어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담당하는 행정사건 기록 곳곳에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가득하다. 사건에서 판사가 자주 접하는 것은 법령이지 그 사건 속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재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나의 건배사, 우문현답

    나의 건배사, 우문현답

    법관은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채 당사자나 증인의 간접적인 증언만을 토대로 재판을 하기 때문에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오판이라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관들은 현장검증을 하거나, 최소한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해주는 위성사진이나 로드 뷰, 지적 편집도, 교통 CCTV 영상 등을 통하여 현장 상황을 간접적으로라도 파악하여 최대한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간혹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오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상급심으로 처리한 사건 가운데 피고인이 좌회전 대기 차량 줄에 서 있다 유턴을 시도하다가 직진해 오던 피해 오토바이를 충돌한 사건에서, 다른 차량들은 피고인 차량이 유턴할 당시에도 계속 좌회전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피고인 차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눈물

    판사의 눈물

    “판사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법정에서 표정 변화도 별로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서 그렇단다. 무엇보다, 최고의 공감 표현은 함께 울어주는 것이라는데 법대에 앉은 판사들은 여간해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눈물 섞인 슬픈 사정을 듣고 나서도 그저 간단한 위로의 말을 건넬 뿐 눈시울을 붉히는 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라는 말로 애써 선을 긋기 일쑤다. 어린 시절부터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못 받는 ‘우는 아이’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태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돌아가셨거나 나라가 망했을 때만 울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가르침 탓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판사가 눈물을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쓸개 빠진 여자

    쓸개 빠진 여자

    일반인이 생각하는 상식과 전문가의 결론이 다른 경우가 꽤나 많다. 환자의 신체 부위에 손상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부위의 특성상 인체 기능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 환자에게 아무런 노동능력상실이 없다는 이유로 재산상 손해배상을 못해주는 경우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런 경우에 통상의 당사자들은 욕설 및 고성으로 판사와 상대방 및 그 변호사를 괴롭히게 마련인데, 필자가 담당하던 사건 중에 당사자 본인의 위트 넘친 기지로 피고 측이 제법 고액의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자진해서 주겠다고 하여 원만하게 조정된 사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사건에서 환자는 담낭에 담석이 있다고 해서 담낭을 일부 절제하였음에도 담석이 나오지 않자 소송을 제기한 후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 위해 대학병원에 신체감정을 촉탁하였다. 그런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얼짱 각도

    얼짱 각도

    얼짱 각도란 말이 있다. 45도 오른쪽 위에 렌즈를 놓고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눈을 살짝 올려 뜨면 실물보다 멋지게, 예쁘게 나온다고 한다. 형사 법정에도 얼짱 각도가 있다. 법대보다 낮은 곳에, 법대와 직각으로 놓여 있는 피고인석 이야기이다. 판사의 눈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고인의 얼굴은 어지간하면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선한 인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재판 내내 그런 줄 알다가 선고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정면에 선 피고인의 얼굴을 바로 보고 아차 싶을 때도 있다. 그대로 선고하기 머뭇거려질 정도여서 선고기일을 연기한 적도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법대 정면에 피고인석이 있었다. 변호인석은 지금처럼 법대와 직각인 채로 검사석과 마주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이 재판 중에 변호인의 도움을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미투 운동의 진원지가 대법관이라니!

    미투 운동의 진원지가 대법관이라니!

    미국에서는 1991년 클라렌스 토마스가 흑인으로는 두 번째로 대법관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런데 고용평등위원회(EEOC)에서 같이 근무했던 애니타 힐 오클라호마대 교수가 토마스의 성희롱 사실을 폭로하면서 그는 심각한 자격논란에 휩싸였다. 힐 교수를 지지하는 여성단체와 피해자들의 증언을 TV로 시청한 여론의 반발로 그의 인준청문회는 3개월이나 소요되었고, 52:48이라는 역대 가장 근소한 표차로 인준을 받을 수 있었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이 보수 성향인 그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고, 진보 성향의 민주당 소속 백인 ‘남성’ 의원들 11명이 그의 성희롱 혐의를 눈감아 주는 한편, 법사위원장 조 바이던이 결정적 증인인 안젤라 라이트의 청문회 증언을 불채택한 결과였다. 그런데 작년에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거세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진짜 난민 알아보기

    진짜 난민 알아보기

    오래전 방영된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 ‘쉽볼렛(shibboleth)’이란 제목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쉽볼렛은 ‘시험해 보는 말’을 뜻하는데, 한 장수가 [sh] 발음이 되는지 시험하여 히브리 사람이 맞는지 확인했다는 구약성서 속 이야기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드라마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며 난민 신청을 하였는데 정부로부터 진짜 신자가 맞는지 의심받는 상황이 나온다. 주인공(대통령)은 지도자를 직접 만나 몇 가지 시험 질문을 던지는데 그 답변의 내용과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믿어주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진짜 난민인지 판단하는 일은 어려운 모양이다. 연간 수천 건이 접수되는 난민 사건은 서울행정법원의 전문성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이다. 법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보물찾기

    보물찾기

    어린 시절 소풍을 가면 은근히 기다려졌던 것이 바로 보물찾기 행사였다. 평상시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소가 선생님이 쓱 보물찾기 쪽지 하나를 던져 놓았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우리들에게는 어릴 적 국어 시간에 배웠던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처럼 엄청난 의미를 가진 중요한 장소가 되었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그냥 돌멩이 하나 조차도 보물찾기 쪽지를 품고 있는 보석돌이라도 되는 양 큰 관심을 쏟게 만들어 주었다. 4년차 법관이 되어 처음으로 단독재판장으로서 소액사건 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원고 측은 자신이 작물에 영양제를 살포하기 위해서 국산농약을 구입하였는데 피고가 제초제를 잘못 판매하여 작물이 모두 말라 죽었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피고인 농약상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여기는 행정법원입니다

    여기는 행정법원입니다

    재판을 하다 보면 탄원서를 접할 일이 많다. 탄원서의 첫머리는 대개 ‘존경하는 ○○○ 판사님’으로 시작하는데, 종종 ‘재판장님’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고 드물게는 ‘주심 판사님’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행정법원에 근무하면서는 ‘행정심판위원장님’을 찾는 탄원서를 자주 보게 된다. 대개 행정심판 단계에서 작성한 것을 한 번 더 사용하느라 생기는 일이니 그 자체로 크게 마음 쓸 일은 아니다. 문제는 본인이 행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의미를 정말로 잘 모른다는 데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법원과 행정청을, 재판과 심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의신청과 행정심판, 그리고 행정재판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칫 제소기간을 놓쳐 버리기도 한다. 다투어야 할

    한지형 판사 (서울행정법원)
    떨리는 지남철

    떨리는 지남철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민영규 교수가 예루살렘 입성기에서 쓴 글을 고 신영복 교수가 여러 책에서 인용하여 유명해 진 글임). 강형주 전 중앙지방법원장님께서 얼마 전 퇴임하시면서 남기신 마지막 퇴임사에서 이 글을 인용하면서 "떨리는 지남철처럼 사건을, 당사자를, 국민을, 민원인을 대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하셨다. 법관의 역할이 날로 증대하여 오늘날에는 법관들이 재판을

    박영호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무겁지만 그래도

    무겁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한 날이었다. 일요일 당직 판사 순서가 돌아와 늦잠과 여유를 반납하고 출근했다. 그 날 내가 구속 여부를 결정한 피의자는 10명이 훨씬 넘었는데 그 중 상당수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따뜻한 방에 앉아 있다가 문득 오늘 내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그 피의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긴장이 몰려왔고 더 이상 편안하게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가족 곁에서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사람을 구속시켜 구치소 찬 바닥에 가두어 둔 것은 바로 나였으니까. 그 밤 내가 누리던 따뜻한 공기와 앉아있던 푹신한 소파가 무척이나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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