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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法臺에서 리스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누구나 나이 든다.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종종 늙는 것을 잊곤 한다. 특히 젊고 건강하면 오늘 살기도 바쁘다보니 노년과 아플 때를 생각할 틈이 없다. 어느새 나이 들고 어쩌다 아프다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서글픔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쑤욱 밀려 올라온다. 나이 들어 몸 이곳저곳 불편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것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다, 정도와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이 듦과 장애를 다르다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순간 글자가 흐릿하게 보여 조금 거리를 띄우면 선명하게 보일 때, 속칭 노안이 그렇다. 중년이후에는 가스레인지 위에 음식을 올려놓곤 절대 불 앞을 떠나서는 안 된다. 순간 가스레인지 위 음식을 잊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좋은 법원 있으면 소개시켜줘

    좋은 법원 있으면 소개시켜줘

    법원은 사람과 건물로 구성됩니다. 10여 년 전 해외연수 시절 클리닉 수업을 통해 현지 법원에 몇 주간 방문하였습니다. 법조명문가 자제인 판사님과 양국 재판제도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재판도 법대에서 같이 볼 수 있었는데, 판사님께서 굉장히 또박또박 천천히 말씀해 주셨던 게 굉장히 감사했었습니다. 또한 판사님의 집무실과 전용법정이 바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법정에는 자신이 애장하는 그림들을, 복도에는 주한미군 시절 사진을 걸어 놓았던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당시 대구에서 5명이 한 방을 사용하다 유학 간 저는 그 환경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저는 신청사에서 2년간 북향 씨티뷰 방에서 건설전담으로 건물신축 소음을 직접 경험하다 현재는 독방은 아니나 남향 레이크뷰를 즐길 수 있는 방으로 옮겼습니다. 청사 곳곳에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정확히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8년 전 부천지원에서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이 있었고, 그 재판업무 담당 법관께서 '처벌 뒤에 남는 것들'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형벌의 기능하면 응보, 일반예방과 특별예방을 떠올리게 된다. 회복이라고 하면 언뜻 피해회복이 연상되는데, 형사조정이나 배상명령제도가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형사재판 과정에서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형사사건에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이 높지 않다는 의견들도 많다. 그렇지만 피고인을 엄히 처벌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깊은 골을 남길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마음 깊이 서로에 대한 원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득안고 살아갈 현실을 마주해야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뜨거운 수사는 가고 남은 공판은 볼품 없지만

    뜨거운 수사는 가고 남은 공판은 볼품 없지만

    우리 회사는 다 탔지만 옆 회사인 검찰과 법무부, 공수처의 공방을 강 건너 불구경처럼 안타깝게 보고 있네요. 명배우 로완 앳킨슨처럼 선한 인상의 검사는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 후 열정만으로 고검장까지 오르면서 피고인 지위도 득하셨고, 뎅기열 사진을 오마주한 검사도 영전 후 피고인 지위를 득하셨네요.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게 이거구나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또한 역시 서울지검 출근 첫날 '평생 할 출세 다했다'고 다짐했으나 의도치 않게 승승장구한 분은 열혈검사의 소중한 신체, 단정한 머리칼에 대한 유형력 행사를 고소하여 피해자 겸 증인의 지위를 득하셨네요. 위 다짐은 북두신권 계승자 켄시로가 뇌까리던 "넌 이미 죽어 있다"는 말만큼 제 영혼에 큰 울림을 주었고, 통영보다 더한 좌천을 계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죽음을 생각하다

    죽음을 생각하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리라 마음먹고 이 세상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죽고 싶지 않다고 하여 죽음을 피할 수도 없다. 생명 있는 모든 육체는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 한다. 심지어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살다보면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당장 다음날 준비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모든 삶은 늘 죽음과 짝이 된다. 그렇게 분명한 죽음이지만,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삶을 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법정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건들 대부분이 죽음과 무관하게 아니 죽음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벌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단한 삶,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삶은 때로는 죽음보다 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고,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중2의 시간

    중2의 시간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그 이유는 가족들을 위한 경제적 이유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던 당시 심정이 어떠셨을지 철없던 저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어느 선택이나 후회가 남겠지만 여전히 건강히 일하시고 부모님 모두 백신도 무사히 맞으신 것만으로 감사하네요. 그런데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제 딸이 그때 저처럼 중2가 되었고, 저도 이런저런 고민에 딸에게 아빠 회사 그만두면 어떨까 물으면 싫다고 자기는 변호사 아빠보다 판사 아빠가 더 좋다고 이야기 해 주니 고마울 뿐입니다. 가끔 중년의 중2병으로 돌연 새벽에 르상티망에 빠져 잠에서 깰 때 잠든 아이 얼굴만 봐도 큰 위로가 됩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부모님의 그 마음을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잊어버린, 잃어버린 마을공동체!

    잊어버린, 잃어버린 마을공동체!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 골목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아니 사방이 캄캄해서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워도 노느라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 집에 몰려가서 있는 반찬 없는 반찬 가리지 않고 한 끼를 때우기도 했다. 무작스럽게 먹어치우던 아이들을 위해 수고스럽게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들에 대한 감사는 아무리 표현해도 부족하다. 친구 집에서 밤늦게까지 놀다 그냥 내처 잠을 자고는 아침밥까지 먹고 나오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투닥투닥 다투는 경우에는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어른들은 혼냈다. 소소한 문제들이 종종 발생하지만, 큰 일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동네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다 알고 소문도 금방나기 때문이었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드물었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과거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는데, 쌀쌀한 초봄에 합정역 아닌 서초역 5번 출구에서 가을에나 필 법한 국화를 보았네요. 그들은 허리가 끊긴 채 장례화환에 박혀 큰 법원의 흰 청사를 품고 있었고,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의 인물이 된 것인 양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리본에 적힌 운율 맞춰 기재된 골계미 충만한 글을 보니 헛웃음도 나고 부끄러웠네요. 어떤 글들은 그 표현에 비추어 적시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표현의 자유를 일탈한 것으로 보였고 이에 대하여 고위 공무원도 모욕죄 고소를 하던데 대리인 통한 고소는 없는지, 왜 저들이 방치되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편 이 모습이 사법부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물과 햇볕 그리고 바람을 잊지 말아야지

    물과 햇볕 그리고 바람을 잊지 말아야지

    창가에 화분 몇 개가 있다. 햇볕을 잘 쬐여주고, 적당한 간격으로 물도 준다. 그런데도 나무 상태는 시원치 않다.   "창문을 자주 열고 바람을 쐬어줘야 하는데…"라는 아내의 말을 듣는다. 이전보다 자주 창문을 열고 바람이 흘러들어오게 한다. 나뭇잎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노래를 한다. 진작 바람을 쐬어줄 걸 그랬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다. 흘러가는 바람의 숨결을 나뭇잎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모든 것이 신나한다. 베란다 창문과 주방 창문을 마주 열면 바람은 더욱 신나게 뛰어논다. 주방 쪽에 놓여 있는 음지식물들도 활기가 돋는다. 햇볕을 직접 쬐지 않더라도 바람은 쐬어주어야 한다. 신선한 바람이 온 집안을 몇 바퀴 휘젓고 다니면 마음속까지 상쾌해진다.   흘러야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판결초고와 제조물책임

    판결초고와 제조물책임

    절대 제 이야기 아닙니다. 예전 어떤 부장판사가 손을 털며 지나는데 이유가 연필로 판결문을 너무 많이 고쳐 손목이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부장은 컴퓨터로 수정하느라 눈이 아픈 경우 작성한 배석에게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리검토를 하는 분도 있었고, 다른 분은 '초고'라는 용어 때문인지 판결문에서 열의도 성의도 느낄 수 없다고 개탄하셨네요. 쟁점이 많고 기록이 방대한 사건은 심리도 어렵지만 종결 후 판결문 작성에도 판사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합니다. 그래서 배척될 것이 명백해 보이는 주장은 이유를 설명한 후 철회를 권유하였고, 대부분은 철회해 주셨네요. 이를 통해 재판부의 시간, 노력뿐 아니라 A4용지와 프린터토너도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론을 종결하면 합의부에서는 합의를 거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여백과 쉼이 있는 인생 시간표

    여백과 쉼이 있는 인생 시간표

    오늘도 달립니다. 잠시라도 멈칫하는 순간 뒷사람이 나를 제치고 앞서나갈까 두렵습니다. 쓰러질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갑니다. 쉰다는 것은 사치입니다. 저 멀리 앞서 가는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보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멈추기는 더 어렵습니다. 경쟁이 당연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앞서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낙오는 말아야지 하는 강박으로 경쟁의 대열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인의 삶입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지만 모두 내심으로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며 나도 그렇지 않은 척 합니다.   이렇게 달리고 달리면 그 끝은 어디일까요? 이런 질문조차 한가한 것인가요? 그럴 시간에 좀 더 달려야 하나요? 1분 1초를 아껴 빈틈없이 채워진 시간표를 분주하게

    류기인 지원장 (마산지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판사는 다른 이들의 과거를 삽니다. 재판장은 재판에서 원·피고 또는 피고인·검사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 과거 일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소액재판을 할 때 원고에게 "증거가 있냐?"고 묻자 "피고가 알고 하늘이 알며 땅도 안다"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는데, 하늘과 땅은 증인적격이 없고 판사는 해당 일을 경험한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증거계의 오승환, 즉 끝판왕인 처분문서나 최근 당사자 사이에 첨예하게 상반된 주장으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녹취파일이 없으면 증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억이 모두 다르듯이 세월이 가면 그 취약한 기억도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누군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가사를 쓰고 그리도 절절히 노래했나 보네요. 다만 법정에서

    김창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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