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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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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안에 대한 위안

    노안에 대한 위안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있다. 작년에 시력검사를 하러 갔을 때 다초점렌즈 안경 착용을 권유받았지만, 당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거절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싶다. 어느 날은 기록에 있는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까이, 다시 멀리 가져가다가 착용 중인 근시 안경을 벗었더니 신기하게도 글자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법관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사무실에서 기록검토 및 판결문 작성에 할애하고 있는데, 판례·연구문헌 등 법률정보가 누적되고, 그 정보에 대한 검색과 접근이 보다 수월해졌으며, 이들을 활용한 주장서면, 참고서면 등 소송자료의 생성이 간편화되어 감에 따라 각 사건별로 읽어야 할 소송자료의 분량도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재판의 한계

    재판의 한계

    실제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하게 되는 말이 "판사는 신이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재판을 진행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재판이 실현하여야 할 궁극적인 목적임은, 그에 대해 판사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제3자에 불과한 판사가 사건의 실체 내지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사실적 한계가 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미리 실험 내용을 알리지 않고 다수의 사람들이 일련의 행위를 연기하는 것을 보게 한 후 당일 실험대상자들에게 그대로 진술하게 하였는데, 의외로 그 순서 및 내용을 실제와 동일하게 정확히 진술한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곤란한 질문

    곤란한 질문

    매년 1회 정도 중·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가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법대에서 벗어나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도 정규수업에서 늘 뵙는 선생님 대신 색다른 강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특강에서는 정의, 법치주의 같은 거창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간단한 법률용어나 법정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면 매번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나 나는 답변에 곤란함을 느끼곤 한다.   어느 해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보고자 기억에 남는 재판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당사자가 되어 수조 원의 지급채무를 다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대중의 심판

    대중의 심판

    소위 n번방의 주범으로 수사 중인 조주빈의 얼굴과 신상정보가 공개되었다. 성폭력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사례로는 최초라고 한다. 그와 함께 n번방에 입장 내지 가입한 회원들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까지 진행되었다.   2010년 처음으로 피의자의 신상정보공개 제도를 규율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그 공개대상자를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자들에 한정하였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이익을 위한 필요성을 요건으로 규정하여 이를 신상공개의 근거로 삼고 있지만, 특정강력범죄의 특성상 구속수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재판이 확정되기 이전의 신상정보공개가 그 이후의 신상정보공개보다 범죄예방에 있어서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출제자와 응시자

    출제자와 응시자

    법관은 소송사건을 심리, 판단하는 자로서 재판의 '주재자', '판단자'라고 하거나, 운동경기의 '심판'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법관의 위치, 입장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큰아이, 작은아이 둘 다 문제를 읽는 둥 마는 둥하면서 답 구하는 것을 서두르고 그러다보니 틀리고 실수하는 것이 많다. 그러고서는 "문제가 어렵다", "문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출제자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렇게 잔소리하다보니 문득 재판도 학생의 문제 풀이와 다르지 않겠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최선

    최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든지 어디선가 한 번씩은 들어봤음 직한, 초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배울 때에 제일 처음 배우는 글귀이다. 인간은 타인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명언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존재 가치 내지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한 말이라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타인의 이익과, 또는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하는 상황도 초래한다. 아파트에 사는 누군가가 쾌적하게 살 이익을 누리기 위하여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그에 이웃하여 사는 누군가는 고스란히 그로 인한 소음을 감당하여 쾌적하게 살 이익을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이익의 충돌 간에 자율적인 타협이 이루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2040 미래의 법정

    2040 미래의 법정

    서기 2020년 3월이다. 인생의 절반이상을 1900년대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2020년’이라는 숫자가 여전히 낯설고 미래의 어느 시점 같기도 하다.   예전에 본 여러 영화에서 서기 2020년은 미래의 세상으로 표현되곤 하였다. 한 예로,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82년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2020년을 배경으로 인간과 복제인간과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개봉 당시 미래세계를 리얼하게 표현하였다고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2020년의 세상은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인공지능 로봇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점에서 2020년은 상상속의 미래를 상징하는 연도였지만, 그 2020년이 이제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현실의 연도가 되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마스크에 관한 단상

    마스크에 관한 단상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러모로 어수선하다. 한 달 새에 마스크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개당 700~800원이던 마스크의 가격이 5000~6000원까지 올랐다. 급기야 정부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자유로운 경쟁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명제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이 같은 법률의 개입은 원칙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 즉 마스크를 ‘정상’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구매하여야 할 처지에 놓인 소비자들은 폭리를 취하는 마스크 판매자들에게 분노하면서 법률 개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사실 시장경제 체제에 있어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자연적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유성펜과 상아도장

    유성펜과 상아도장

    형사재판 전날 법대 뒤 사무실 모습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형사판결을 선고하기 전날은 퇴근 무렵까지 추가적인 변경 사항이 있는지를 기다려서 최종적으로 완성한 판결문에 서명, 날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친다. 형사판결문에 재판장으로서 서명, 날인을 하는 이 절차가 늘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신성한 과정이라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재판서 관련 규정들을 보면, 판결문은 영구보존문서로 지정되어 있고(법원재판사무처리규칙 제29조), 기타의 결정문들과는 달리 법관이 서명, 날인하여야 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서명’은 본인의 이름을 직접 쓰는 것으로서 인쇄 등 방법으로 이름을 기재하는 ‘기명’과 구분되고, 본인만의 방법으로 이름 또는 그 일부만을 적는 ‘사인’과도 구분된다.   형사판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일상을 재판처럼

    일상을 재판처럼

    처음 재판장으로서 법대에 올랐을 때의 긴장감은 다소 덜해졌지만 여전히 법정에 들어서는 때에는 매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미리 기록을 파악하고 관련 판례를 공부하여 나름의 준비를 하지만 언제든지 돌발 상황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메모지를 정리하며 법정에서 했던 말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법정녹음내용을 들어보기도 한다.   법정 운영과 재판 진행에 대한 고민은 법관 개개인의 노력을 넘어 법관 사회 전체의 사례 공유와 연구로 이어진다. 각급 법원에서는 연구회를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각자 연구한 내용을 발표한다. 연구회 차원에서 소속 법관들의 재판 영상을 촬영하거나 서로의 재판을 방청하며 개선점을 모색하고 모범 사례를 공유하기도 한다. 법관의 재판을 참관한 전문가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힘은 보유가 아닌 공유에서 온다

    힘은 보유가 아닌 공유에서 온다

    현대는 정보사회라고 할 만큼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성 사회에서 살고 있기도 하다. 처해진 환경이나 개인적 입장에 따라 가지고 있는 정보의 격차는 크다. 법률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률가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으로 특정 영역에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정보를 공유한다고 하여도 인적 네트워크가 잘 된 사람들끼리이다. 채무자회생법 분야도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초임 판사 시절에는 지금처럼 판례나 문헌 등이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아 자료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때 어떤 부장님은 아낌없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나누어 주셨다. 구하기 힘든 재판연구관 자료도 가끔 주셨다. 이후에도 인연이 되었던

    전대규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말 한 마디

    아이의 방학에 맞추어 예약해둔 여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수수료를 내고 취소하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자제하다 보니 자연스레 생활 반경이 집과 직장만으로 좁아졌다. 단순히 생활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다. 3월부터 시작되는 법관연수도 전국 법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시행 여부 및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과연 바이러스뿐일까. 법정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평생 처음으로 소송 당사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믿었던 지인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거라는 추측만으로 명확한 서류를 남기지 않고 거래를 하다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나기도 한다. 생활이 어려워 돈을 구할 목적으로 범죄행위인지도 모르

    최다은 판사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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