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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모순어법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모순어법

    3년 전 쯤 한 세미나 뒷풀이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변호사님께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사망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어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라온 아이들을 보호대상아동이라고 하는데, 아동복지법상으로는 만 18세가 되면 아동이 아닌 성년으로 분류되어 보호조치를 종료하거나 입소시설에서 퇴소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그래서 아직 민법상으로는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주거와 생계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고.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집을 구하고, 일을 구해야 할 아이들을 위해 같이 법률교육 봉사를 하지 않겠냐고. '아동'에게 '보호종료'라니 그 자체로 모순어법이 아닌가. 마음 한 곳이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결혼 직전에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 나는 30대였고, 변호사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엘리자베스 홈즈의 교훈

    엘리자베스 홈즈의 교훈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배심원단은 바이오 벤처 '테라노스'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엘리자베스 홈즈에게 4건의 사기 관련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라 불리며 인기를 끌던 홈즈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하여 형량을 다퉈야 할 판이다. 테라노스는 손가락에서 채취한 피 몇 방울로 200가지 이상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를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단숨에 실리콘밸리의 총아로 떠올랐다. 한때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90억 달러에 이르렀고, 홈즈는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로 언론의 열광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 테라노스의 기술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매우 기초적인 몇 가지에 불과하였고, 테라노스와 홈즈는 그 얄팍한 실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가 바뀐다는 것이 마냥 들뜨고 설레었는데. 지금은 새롭게 잘 시작해 보자는 마음 반, 어딘지 씁쓸한 마음 반이다. 내로라할 성과 없이 한 살 더 쌓이는 나이의 무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연말연시에는 자연스럽게 작년의 삶을,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가롭고 여유 있게 보낸 것도 아니건만. 제 딴에는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건만.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어?'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지?' '노력한 것 치곤, 뭔가 가시적인 성과라는 것이 없지 않나?' 이런 내면의 목소리에 자책감이 들곤 한다. 바쁜 일상 속에 눌러두었던 강박관념,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과 만나게 된다.하지만 생각을 찬찬히 따라가 보면 내면의 목소리에도 반박할 구석은 많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해파리 명상

    해파리 명상

    소위 '해파리 수면법'이라 불리는 수면법이 있다. 미 해군의 스트레스 완화를 위하여 개발된 방법이라는데, 근육을 이완시키고 심호흡을 하면서 마치 해파리처럼 온몸의 힘을 빼다 보면 옆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2분 내에 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까닭 없이 찾아오는 불면의 밤마다 나는 바닷속을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를 상상하며 그 수면법을 성공시켜 보려고 애썼다. 이미 상상 속에서 친근해졌기 때문일까. 550종 이상의 바다생물이 전시되어 있는 몬터레이 베이 수족관(Monterey Bay Aquarium)에서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귀여운 바다 수달도, 초대형 수조에서 군무를 펼치던 정어리 떼도 아닌 해파리였다. 반투명한 몸으로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물속을 둥실둥실 유영하는 모습은 너무도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마감이 글을 쓴다

    마감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소장이나 답변서, 준비서면 같은 법률서면도, 일기나 짧은 에세이도, 그리고 이렇게 칼럼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이나 정서를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매번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어렵다. 좀 더 미리 써두면 좋을 텐데, 매번 마감에 임박해서야 키보드를 잡게 된다. 글을 쓸 때마다 매번 깨닫는다. 더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서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초고를 쓰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초고를 쓰는 시간, 그리고 한 두 번 퇴고를 할 시간을 가지면 족하다. 작업 자체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마음을 다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 뿐이다. 이렇게 글쓰기에 착수하기까지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Strength in Numbers

    Strength in Numbers

    농구에 대한 첫 기억은 학창 시절 체육 수업에서였다. 농구공을 높이 던지는 것조차 버거웠던 나는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연습보다는 주술(?)에 의존하였는데, 방과 후 만화방에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를 꼬박꼬박 읽어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기복 행위에도 멘탈 트레이닝의 효과는 있었는지 시험 날에는 연습 때보다 공이 더 잘 들어갔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슬램덩크 속 명장면 명대사는 늘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침 농구의 본고장 미국에서 지내게 된 김에 NBA 경기를 챙겨 보며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중이다. 특히 이번 시즌은 샌프란시스코 홈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활약하고 있어 더욱 흥미진진하다. 예전에 다른 팀을 응원할 때는 스테픈 커리의 신들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ARS 안내멘트 들을 때

    ARS 안내멘트 들을 때

    언젠가부터 ARS 전화연결을 시도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고객응대근로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사오니 상담사에게 욕설, 폭언, 성희롱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멘트다. 그 뒤에 "상담사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등의 멘트가 덧붙여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멘트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씁쓸하다.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에게 욕설, 폭언, 성희롱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을 전화를 거는 모든 사람에게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되었다는 것이. 그만큼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2018년 1월 초판이 나온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블랙 프라이데이 단상

    블랙 프라이데이 단상

    살던 집을 정리하고 해외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많은 짐을 비웠다. 틈나는 대로 중고거래 앱에 글을 올렸고 여러 단체에 물건을 기증했다. 특별히 아끼던 물건들은 지인들을 물색하여 나눠주거나 맡겼다. 그래도 십수 년을 이고 지고 지내온 물건들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결국 이삿날 대형 쓰레기봉투 몇 개를 가득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한 번 진절머리 나게 비우고 나니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 새로운 물건을 사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 또 그 난리 법석을 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숟가락으로 맥주병을 하도 따서 손등이 붓고 나서야 병따개를 샀고, 가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부족한 의자 대신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소로우의 오두막처럼 의자가 세 개만 있었던 것은 아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한 해를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

    한 해를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

    11월 중순은 내년 목표를 세우기 좋은 때다. 12월로 넘어가면 소중한 사람들과 연말모임을 한 두번 가지다 보면 훌쩍 지나가 버리기 쉽다. 1월이 되면 신년 계획을 세우기에 이미 늦은 시점이 되어버린다. 올해 겨울은 특별히 코로나 확산을 위한 거리 두기로 인해 미뤄두었던 모임까지 잡히고 있어 한층 분주하게 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비교적 여유가 있는 11월에 시간을 조금 떼어, 올해는 어떻게 살았는지 내년은 어떻게 살 것인지 돌아보고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매년 신년 목표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업무와 관련된 목표다. '맡은 업무에서 좋은 평가를 받겠다', '새로운 분야의 업무에 도전해 보겠다', '연봉 상승'과 같은 목표는 매년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꼭 빼놓지 않고 넣는 것이 운동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낯선 이국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수업 중 토론 시간에는 미묘한 중도적 입장을 표현하기 어려워 극단을 자처하게 되고, 나처럼 유학 온 친구에게 어설픈 농담을 건넸다가 의도와 달리 분위기가 싸해진 적도 수차례다. 한국에선 내로라하는 수다쟁이였던 나는 이곳에선 어느새 '고개 끄덕이기'와 '박수치기'를 가장 잘하는 경청의 아이콘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여행을 하다가 서툰 언어 탓에 우스운 일을 겪었다. 남편이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 동안 내가 커피를 사두기로 했는데, 메뉴판에 써있는 커피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카페 직원은 캘리포니아 사람답게 여행은 어떠냐며 친근한 인사를 곁들였지만, 대화가 길어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대충 제일 아래 써있는 메뉴를 가리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무료 법률상담은 하지 않는 이유

    무료 법률상담은 하지 않는 이유

    변호사가 되자 친척이나 지인들이 조언을 구하려고 연락을 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 중에 의사와 변호사 한 명씩은 있어야 한다던데, 그 말이 꼭 맞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진짜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이들 사용하고 있는 표현임은 분명한 듯하다. 그 속뜻을 짐작해 보자면, 변호사를 알아두면 좋다는 건 분쟁에 휘말렸거나 휘말릴 우려가 있을 때 마음 편하게 조언을 구할 수 있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예상하지 못한 송사에 휘말려 당황해서 연락을 주신 경우가 가장 많았다. 간혹 '지인 찬스'로 무료 법률상담을 받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시기는 했지만. 연락이 오면 나는, 일단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이야기가 정리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판단되면 말한다. "변호사의 의견이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내게 와인은 조금 어려운 술이었다. 마시고 취하면 그만인 여느 술과 달리, 괜히 그 한 모금에서 지구의 온갖 아로마를 찾아내야 할 것 같고, 바디감이니 타닌감이니 하는 생경한 단어들로 어설픈 평가를 곁들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 와인을 골라야 할 때면 진땀을 흘리며 다짐했다. 언젠가는 제대로 와인 공부를 하고야 말리라고. 그리고 요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실컷 와인을 마시며 생각한다. 모르고 마셔도 참 좋은 게 와인이라고. 유학 온 직후에는 마셔 본 와인부터 찾았다. 캘리포니아산 와인만큼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마실 수 있으니, 역시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경제적 판단 하에 마트에 갈 때마다 쟁여 두었다. 기억하는 와인이 바닥난 이후로는 그냥 레이블만 보고 맘에

    최윤아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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