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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승소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승소의 가벼움

    “변호사님, 무죄 받으셨다면서요? 승소 축하해요.”   얼마 전 후배로부터 들은 말이다. 구속된 피고인이었는데, 길고 긴 재판 끝에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라 관여한 변호사들 모두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가끔 무죄를 받으면 마치 싸움에서 이긴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승소 사례’라고 하며 SNS에 그 내용을 게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승소는 슬픈 일이다. 공익법무관으로 지방에 근무할 당시 주로 농민들의 민사소송을 대리하였다(소송구조). 그 시절에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지식을 처음으로 실무에 적용해 보는 설렘과 동시에 어쩌다가 승소 판결을 받게 되면 나름대로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뿌듯함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내 의뢰인보다 더 약자일 수도 있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떼샷과 쪽수의 법칙

    떼샷과 쪽수의 법칙

    “나쁜 놈은 백 중에 하나 나오는 쭉정이지만 착한 놈들은 끝이 없이 백업디야.”   “우리는 떼 샷이여. 니들이 암만 까불어봐야 쪽수는 못 이겨. 그게 바로 쪽수의 법칙이고, 니들은 영원한 쭉정이. 주류는 우리라고.”   최근 종영한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인생 드라마로 등극해 버릴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쫓던 파출소 순경 황용식은 검거된 까불이가 “까불이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고 또 계속 나올 것”이라며 악의 귀환을 예고하자 ‘떼샷과 쪽수의 법칙’을 설파하며 사이다 멘트를 날렸다.   최근 몇 해 동안 예술·출판·체육·학교·기업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 사건을 진행하며 현실의 까불이들과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이유

    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이유

    반 O마나이O. 필리핀에 있는 내 아이의 이름이다. 올해 10살인데,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고, 장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한다. 코피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2013년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하여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는데, 그 무렵부터 한 국제구호개발 기구를 통해 후원하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이다.   보통 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기부를 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나라까지 신경 쓰냐”는 반응을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한 편에서는 5세 이하 어린이들의 3분의 1가량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2018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인구의 10%인 8억 2160만 명이 기아에 시달렸는데(UN식량농업기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不惑, 그 ‘앓음다움’에 대하여

    不惑, 그 ‘앓음다움’에 대하여

    “귀하는 아쉽게도 신입사원 전형에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20대는 말 그대로 백전백패였다. 남들보다 늦은 졸업을 하고도 입사시험에 백번 넘게 떨어졌다.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원자가 대리급보다 나이가 많은데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요?”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을 빙자한 탈락통지에도 굴하지 않고,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변모해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러나 경력 없이 나이만 먹은 여성구직자는 미운데다가 누구도 키우고 싶지 않은 미운오리새끼 같았다.   20대의 나는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지배하는 ‘파레토 법칙’이 적용되는 경쟁사회에서 상위 20%에 들면 성공한 인생, 나머지 80%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강박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고 상위 20%에 끼기 위해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나이가 들어감에 대하여

    나이가 들어감에 대하여

    “넌 지금 네 나이를 몇 살로 느끼니?” 러시아에 사는 서른 다섯 동갑 친구인 이고르가 나에게 물었다. “글쎄… 스물 일곱 정도?” 옆에 있던 한 살 어린 알렉산더는 아직 스물 두 살 정도로 느낀다고 했다.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간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는 세월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청춘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김광석, ‘서른 즈음에’ 中). 어느 노 교수는 젊은 시절 “하아나-두우울-세에엣-네에엣-다서엇-여서엇-일고옵-여더얼-아호옵-여어얼” 가던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는 “핫-둘-셋-넷-닷-열” 간다고 했다. 천천히 걸어오던 세월은 어느새 전속력으로 달려 오고 있다. 연수원 때 수저를 돌리던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그런 1억원'의 존재 이유

    '그런 1억원'의 존재 이유

    지난 1년 간 위자료 1억원을 인용 받은 판결을 두 차례 받았다. 한 달 전 무변론승소판결을 선고한 손해배상사건에서 일명 '그런 1억원은 필요없다'는 소송고군분투기를 다룬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법률신문 '그런, 1억원은 필요 없습니다' 참고). 이 사건 쟁점은 원고가 아동기 피고로부터 성학대를 당하고 약 14년 후인 2016년 피고와의 대면으로 정신적 고통이 증폭되어 정신과치료를 받던 중 처음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진단 받은 사안에서 민법 제766조 2항에 의한 '불법행위를 한 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였다.   솔직히 처음 사건의뢰가 왔을 때 망설였다. 이른바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피해자들도 소멸시효가 도과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소송에서 패소한 판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쉽게 쓰여진 서면

    쉽게 쓰여진 서면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면을 쓰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 설명을 들은 후 나름대로 자료를 확인하고, 거기에 맞는 판례도 찾아야 하는데, 그 속에 한 사람의 삶과 인생까지 녹아 들어야 한다. 인고의 시간 끝에 서면이 완성되면 온 몸의 기가 빨려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한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파우스트 박사는 무한한 지식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이 순간 우리는 모두 파우스트가 된다.   변호사는 슬픈 천명이다. 그를 대신하여 고민하여야 하고, 그녀를 대신하여 분노도 해야 하며, 가끔은 그들 대신 혼도 나야 한다. 하루는 24시간인데, 회의하고 접견하고 재판에 출석하고 조사에 참여하다 보면 정작 서면 쓸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하나의 사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ME_Too에 With_U로 함께 응답하는 ‘法’

    #ME_Too에 With_U로 함께 응답하는 ‘法’

    지난주 생애 첫 해외 순방강연을 다녀왔다. 일주일 간 LA와 워싱턴 D.C에서 외교관 및 해외공관 임직원 대상 성폭력예방교육을 진행했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부업의 일환으로 폭력예방교육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하고 소소하게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미투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재판보다 강연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약 200회에 이르는 젠더폭력 관련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강연 대상도 공공기관 및 기업 임직원·교직원·NGO·검찰·경찰·밀레니얼 세대 등 매우 다양해졌으며, 서울·경기도·충청도를 넘어 미국까지 강연이 이어졌다.   작년 초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사회 미투물결은 다양한 영역으로 퍼져 나갔다. 미투 사건이 우리사회에 어떠한 파장을 미쳤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폭력예방교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

    초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입사 후 처음 맡은 사건에서 느꼈던 설렘과 긴장, 그리고 불안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초심은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도 중요한데, 우리는 매일 아내(애인)를 위해 사랑이 담긴 편지와 함께 아침밥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놓고도 이렇게 늦잠이나 자고 있다.   선배들은 초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후배들은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조금 식상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사람 마음이라고 해서 어찌 한결 같겠는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왔던, 70년이 넘도록 인연을 이어온 노부부에게 ‘첫사랑의 불 같음’이 사라졌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초심보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이제 ‘증오의 시간’을 멈춰야 할 때

    이제 ‘증오의 시간’을 멈춰야 할 때

    그녀는 잘 살아내고 있을까. 며칠 전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몇 해 전 의뢰인으로 만난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대학시절 연루되었던 사건으로 인해 지난 10여 년 간 끔찍한 증오의 시간을 견뎌왔다. 고작 20대 중반이었던 그녀의 얼굴과 실명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댓글들과 함께 혐오조장사이트와 각종 블로그에 도배됐다. 그녀는 개명까지 하며 그 증오의 대상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댔지만 유사사건(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면 유사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이 발생할 때마다 그녀와 관련된 글들은 다시 공유되며, 그녀의 인생은 사이버 공간 속 시간의 덫에 걸린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는 ‘증오의 시간’이라는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그들 눈에 비친 우리의 정의

    그들 눈에 비친 우리의 정의

    작년 이 맘 때 한 달가량 중국에 연수를 다녀왔다. 중국이 매년 한국이나 일본, 러시아, 몽골 등 주변 나라의 젊은 법조인들을 초청하는 것인데, 전형적인 '우물 안 개구리'형 변호사인 나로서는 무려 한 달 동안 외국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가게 되었다.   연수는 주로 중국의 법률제도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형사소송법 강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중국에서는 피의자에게 진실의무가 있어 진술거부권이 인정되지 않고(제120조), 무죄추정의 원칙은 물론 공안의 1회 조사 이전까지는 변호인 참여권이 제한된다(제34조)고 하였을 때에는 조금 놀랍기도 하였다. 악인(惡人)은 필벌(必罰)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 명의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열

    이종수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
    그런, 1억원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 1억원은 필요 없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 지난해 민사소송에서 위자료 1억원을 청구해 전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 원고와 소송대리인인 나는 일명 "그런 1억원은 필요 없다"는 항소심 소송을 하며 1심 판결을 다시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이 법조인이라면 "항소이익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야 마땅할 것이다. 원고는 아동기 시절 피고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학대를 당했다. 그로부터 약 15년 후 우연히 원고는 피고와 마주쳤고 정신적 장애가 증폭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아동기 성학대로 인하여 현재까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에 원고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상해로 하여 피고를 강간치상으로 형사고소하였고 10년형의 유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에 형사

    김재희 변호사 (김재희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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