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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리스트

    [차병직 칼럼] 독단의 미덕과 기능

    독단의 미덕과 기능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견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지방법원의 판사는 문신 시술을 한 타투이스트에게 의료법위반이 아니라며 무죄 선고를 했다(법률신문 2022년 12월 12일자 <권석천의 시놉티콘> 참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오래됐지만, 억대 판돈의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선고도 있었다. 우연성이 아닌 기량이 승부를 지배한다는 이유로 도박죄를 부인한 도발적 해석은 판에 박힌 관점에 대한 도전이었으나, 판사의 다른 기행 등으로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2018년 초,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군 복무 당시 동성끼리의 성행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의된 동성의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순진한 노력과 무심한 능력

    순진한 노력과 무심한 능력

      “몇 만 년 걸리는 계산을 단 며칠 만에 해낼 수 있다”며 현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표현하는 예를 본다. 엄청난 것 같지만, 컴퓨터의 능력을 나타내는 데는 한참 못 미친다. 1991년경 일본의 물리학자 요네자와 후미코는 다치바나 다카시와 대담하면서 ‘출장판매원 문제’를 끄집어냈다. 외판원이 25개 집을 방문하는데, 어떤 순서로 다니면 동선이 가장 짧은가라는 질문이었다. 계산은 간단하다. 25개 집을 차례로 방문하는 경우의 수에 따라 덧셈만 하면 된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는 이미 측정되어 있는 상태를 전제로, 1초에 100만 회의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를 사용했을 때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쯤 될까?요네자와가 알려준 정답은 약 98억 년이었다. 대담집을 읽다가 놀라기는커녕 인쇄가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비유의 세계

    비유의 세계

      아라비아의 노인이 세 아들에게 유언했다. 장남에게 재산의 2분의 1을, 차남에게 4분의 1을, 삼남에게 6분의 1을 나누어 주겠노라는 내용이었다. 노인이 죽고 나자 낙타 열한 마리가 남았다.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두고 몇 날 며칠을 싸웠는데, 그 꼴을 보던 옆집 사람이 자기 낙타 한 마리를 빌려주었다. 첫째가 여섯 마리, 둘째가 세 마리, 셋째가 두 마리를 가지고 나니 한 마리가 남았다. 남은 한 마리를 옆집에 갚으니 모든 계산이 깔끔하게 끝났다.이야기를 어딘가에 인용하면서, 옆집 아저씨가 빌려준 지혜의 한 마리를 허수에 비유한 적이 있다.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져버리는 점에서, 빌린 낙타 한 마리는 허수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것은 실제 허수가 아니다. 그 비유는 허용되는가?자연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무기질의 사실들

    무기질의 사실들

        대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삼나무가 섞인 숲의 덤불 속에서 한 사내가 죽었다. 일하러 가던 나무꾼이 시신을 발견했다. 승려는 말을 탄 남녀 한 쌍을 목격했는데, 사건 발생 직전의 장면이었다.살해된 자는 가나자와 다케히로라는 사람이었고, 말을 타고 함께 갔던 마사고는 그의 아내였다. 마사고 어머니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포졸은 살인 용의자로 강도 전과의 다조마루를 체포했다.다조마루가 자백을 했다. “내가 죽인 것은 사실이나, 여자는 해치지 않았다. 격투 끝에 사내를 해치우고 보니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사고가 나타났다. “범인은 바로 저예요.” 다조마루가 남편을 속여 묶어 놓고 그 앞에서 자기를 겁탈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마사고는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남편의 가슴에 칼을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설날 앞에서

    설날 앞에서

      불안이 사라지면 힘이 생긴다. 그 자리에 희망이 대신 들어서는 느낌이 든다. 무언가 예측이 가능할 때 안정이 찾아온다. 어둠 속에서는 두렵지만, 보이면 힘이 난다. 미래의 청사진이 던져 주는 심리적 시각 효과의 힘으로 저마다 아침에 일어난다. 따져보면 한낱 기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삶의 동력이 되는 셈인데, 희망의 알을 품은 꿈의 새처럼 인간은 허망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다. 그래도 그 꿈을 어느 정도나마 현실로 부화하는 능력을 자신의 실질의 일부로 자부한다.신년 벽두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대부분 힘을 얻는다. 그러나 두어 주 보내면서 계획이 어긋나다 보면 금세 맥이 빠지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설날은 반갑기 그지없다. 신정에 이어 구정이라는 옛 이름으로 한 해의 출발 기회를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검증의 마당

    검증의 마당

      법적 판단과 결론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사실을 확정한 다음, 거기에 필요한 법을 가져다 적용하면 된다. 무척 단순해 보인다. 이런 간결한 과정을 거친 판결이라는 결론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법이 규정해 놓았기 때문인가, 법원의 권위 때문인가? 재판의 결과가 정당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논증이다. 재판은 논증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결론이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논리적 증명의 결과라는 것이다.논증주의가 아닌 것으로 들 수 있는 대표적 방식은 결정주의와 결단주의다. 법적 결정주의는 입법 단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내용과 의미는 법 문언에 결정되어 있으므로, 법관은 그 내용을 정확하게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미래의 기억

    미래의 기억

      “이 세상의 사회가 붕괴하고 있다. 출생률이 떨어지고, 농촌 인구는 줄고, 군대 기강은 엉망이며, 자살이 점점 늘어나는 데다, 광기와 정신박약 그리고 폐 질환이 자꾸 증가하고, 신경쇠약과 활력 감소의 징후가 농후하고, 음주벽과 약물 남용이 곳곳에 만연해 있으며, 아이들의 시력은 갈수록 약해진다.”이것은 루돌프 아른하임이 1979년 쾰른에서 펴낸 《엔트로피와 예술》에 들어 있는 구절인데,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1949년에 나온 핸리 애덤스의 《민주주의 교리의 쇠퇴》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애덤스 역시 창작자는 아니었는데, 실은 1910년경 독일과 프랑스의 신문에서 거의 매일 떠들어 대던 말을 옮긴 것이었다.113년 전 유럽에서 유행하던 주장이 39년 뒤에 미국의 책에 등장하고, 30년이 더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법이 개인의 초상에 미치는 영향

    법이 개인의 초상에 미치는 영향

      막 발간된 책 한 권이 눈에 띈다. 정수일 회고록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이다. 누구나 자기가 속한 시대를 살기 마련인데 굳이 ‘시대인’이라 표현한 것은 남북 분단의 시대에 그 경계를 넘기 위하여 무수한 국가를 거쳐야 했던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투영한 결과로 짐작한다. 그의 출생지는 옌볜의 쯔신, 중국 영토이나 태어난 해가 1934년이었으니 형식상으로는 만주국이었다. 할아버지가 함경북도 명천에서 이주한 화전민이었기에 집에서는 조선어를, 바깥에서는 중국어를,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환경이었다. 종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에 이어, 1952년 새 시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중국 젊은이들도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첫해 옌볜 전역에서 단 두 명이 베이징대학에 합격했는데, 그중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최소의 요구, 최대의 기대

    최소의 요구, 최대의 기대

      몇 년 전의 일이다. 신입 변호사들이 점심 식사를 하면서 일제히 받은 이메일 내용을 화제 삼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연구 목적으로 돌린 설문조사 형식의 메일이었는데, “판사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제시된 항목은 열 개 남짓으로 꽤 많았다. 법률 지식은 기본이었다. 그것도 정확하고 풍부할 것을 요구했다. 정의감이나 강직성이 뒤따랐다. 청렴성도 빼놓을 수 없었을 터이다. 법률 이외의 지식과 폭넓은 세계관도 적혀 있었다.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좋은 판결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역사관에다 국가관도 포함되었는데, 가끔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재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성실성도 당연해 보였던 것은 재판을 마냥 미루어 당

    차병직 변호사(법무법인 한결·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진실과 거짓, 옮음과 그름

    진실과 거짓, 옮음과 그름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해럴드 핀터는 1958년 자신의 노트에 쓴 한 구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재와 실재하지 않는 것, 진실과 거짓은 명확한 구분이 없다. 어떤 사물이 반드시 진실이거나 거짓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진실인 동시에 거짓일 수도 있다.”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내포된 심오한 진리를 말하는 듯하다. 고양된 높이의 정신 수준에 있는 현자가 지혜의 금언을 던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기실은 특별한 전문적 공부나 훈련을 거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도 삶의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현상이다.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보면 수긍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일 터이다.순간 당혹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세상 모든 일에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없다는 말인가? 옳고 그름이 없다면 도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반대의 방식

    반대의 방식

      물체의 고유한 속성으로 운동 상태의 변화에 저항하는 관성의 크기를 정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질량이다. 장소나 상태에 따라 변하지 않는 무게 같은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질량과 에너지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예측을 제시했다.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현실화하는 출발점이었다. 원자력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원자가 쪼개질수록 거기서 비롯하는 에너지의 힘과 양은 엄청났다. 막대한 에너지가 인류를 가난과 궁핍으로부터 해방시킬 전망이 펼쳐졌다. 영향력이 클수록 반대 또한 심한 법이어서, 무기로 사용될 때의 파괴력보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과 핵폐기물 처리의 어려움이 본질의 결함으로 제기되었다.원자력 찬반 논쟁의 뜨거움은 사형제 존폐론 이상이지만, 의외로 해답은 간명하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차병직 편집인 칼럼] 사실과 사건

    사실과 사건

      지난주 발표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세 사람의 공적은 양자 얽힘 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했다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은 원자보다 작은 미립자의 세계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직감과 어긋나는 일이 일어난다. 법률가의 눈에는 비논리적인 현상이 일반화한 듯한 혼란의 현장이다.양자는 극소의 물리량으로, 에너지 단위이자 패턴이다. 양자 얽힘이란 한 쌍의 양자에서 한쪽의 상태가 결정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른 쪽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를 말한다. 양자 얽힘은 양자 중첩이 전제되는데, 양자에 양립이 불가능한 두 개 이상의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일컫는다. 디지털 체계에서 하나의 값은 0 아니면 1이다. 반면 양자는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중첩 상태로 있다. 관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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