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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법조계가 선사할 주빌리(Jubilee)

    윤배경 변호사 (법무법인 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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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기 1300년 2월 22일 교황 보니파시오 8세(Bonifacio VIII)는 신도들에게 대사면을 내리는 교서를 발표했다. 주빌리(Jubilee), 즉 희년(禧年)의 시작이었다. 주빌리는 50년이 되는 해에 죄를 사하고, 노예를 해방하며 빚을 탕감하는 유대교의 전통이었다. 카톨릭은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을 대희년(Great Jubilee)으로 선포했다. 근로자의 날, 이민자의 날, 예술가의 날, 세계 젊은이의 날 등의 행사를 가졌다. 최근 프란치스코(Francis) 교황은 오는 12월 8일 시작되는 자비의 희년(Jubilee of Mercy) 기간에 한해 낙태한 여성의 죄를 사하겠다는 교서를 발표했다. 유서 깊은 종교적 행사인 주빌리가 세속에도 파고 들었다. 왕의 재위를 기념하는 주빌리가 그것이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Queen Elizabeth II)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였다. 행사는 2012년 2월 시작되어 그녀가 대관식을 가진 6월 2일을 기점으로 한 주말에 절정을 이루었다. 6월 4일 저녁 통가(Tonga)의 한 대학교에서 걸스카우트들이 코코넛 나무로 만든 거대한 모닥불을 지폈다. 이를 시작으로 영국 본토를 비롯한 전 세계 영연방에서 총 4500여 개의 모닥불이 밝혀졌다. 마지막 날 여왕이 가족들과 함께 버킹검궁전 발코니에 나와 축하하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뒤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지속되어 2012년 한해 내내 영국과 영연방은 축제 분위기였다. 반면 다른 세계의 다른 한곳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폭발했다. 2012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운동이 벌어졌다. 월가의 1% 금융자본이 세계의 부를 독식하는 현실에 "우리가 99%다" 라는 목소리가 뉴욕 중심부에 울려 퍼졌다. 단순히 항의성 데모로 그칠 것 같던 운동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었다.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였다. 금융권의 부실채권을 사들여서 빚에 시달리는 채무자를 구제하는 사업이었다.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주빌리은행(Jubilee Bank)이 문을 열었다. 부실채권을 원금의 3~5%에 구입하여 연체자가 7%만 지급하면 채무를 면제하여 주고, 그마저도 지급하기가 어려우면 채무를 탕감해준다고 한다. 한 일간신문은 주빌리은행을 소개하면서 "주저 하지 마세요. 빌린 돈 탕감해 드릴게요. 리스크는 우리가 안을게요"라고 썼다. 주빌리의 한국판 버전인 셈이다. 빚 때문에 가정이 해체되고 빚쟁이 등쌀에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과연 법조계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 적이 있었던가 반성하게 된다. 오히려 채권자 편에 서서 그들을 상대로 채무명의를 받아 주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지는 않는가. 개인회생절차나 파산절차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다. 막상 신청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없는 살림에 쪽박마저 깨는 심정이 들지 않을지. 용기를 내어 사법부에 손을 내밀어도 어려움은 끝나지 않는다. 가장 힘든 일은 언제 법원 결정이 날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복잡한 절차, 혹독한(?) 재산조사가 그를 기다리고 절차는 지연된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부 악성 채무자를 가려내는 사이 하루빨리 구제되어야 할 대부분의 영세한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다. 법조계의 주빌리 버전은 아무래도 '신속'일듯 싶다.
    마세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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