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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논단

    로마민소소송법산책① 소송은 중재인 판단의 집행을 확보하는 수단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법무법인 에이펙스 고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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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창간 71주년을 맞은 법률신문이 독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우리 민사소송법의 뿌리인 로마민사소송법을 알기 쉽게 해설한 강의를 연재합니다. 강사는 강현중(78·사시 6회) 전 사법정책연구원장입니다. 강 전 원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했습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광주지법·수원지법·서울지법북부지원·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냈습니다. 1991년 변호사로 개업해 서울지방변호사회 감사, 한국민사소송법학회장, 국민대 법대 학장 등을 역임한 민사소송법 분야 전문가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열독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172424.jpg1. 먼저
    소송이란 법관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공권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이해관계인을 당사자로 관여시켜 심판하는 공적 절차이다. 이에 대해서 중재란 사람들이 분쟁에 관하여 중재인이라고 하는 사인(私人)에게 해결을 맡기고 그 판정에 복종할 것을 약정하는 중재합의를 하면 중재인이 그 합의에 터 잡아 행하는 분쟁해결절차이다. 중재는 당사자 사이에서 중재합의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주적 분쟁해결 방식으로 민사소송과 구별된다. 소송과 중재는 이와 같이 성질을 달리하지만 모두 로마법에서 유래한다.

     

    2. 로마의 민사소송에서 소송과 중재
    (가)
    로마의 민사소송은 자력구제와 함께 검토하여야 이해하기 쉽다. 로마에서도 사적 생활의 권리자가 공권력을 통해서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자력으로 이를 방어하거나 구제받을 수 없다는 원칙은 오랜 시간을 걸쳐 형성되었다. 물론 로마인도 초창기에는 다른 여러 민족과 마찬가지로 사적생활에서 그가 갖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믿는 권리를 스스로 방어해야 했고, 또 침해되었거나 침해당하였다고 믿는 권리를 스스로 구제하여야 하는 자력구제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곧 그 갖는 권리에 관하여 당사자가 폭력에 호소하여 상대와 다투는 대신에 사회관습에 정통한 원로나 종교가와 같은 제3자의 중재에 의하여 해결을 구하는 시대를 거쳤다. 제3자의 중재에 의한 쟁송 해결을 당사자 양쪽이 원하고, 사회의 중심세력이 자력에 의한 쟁송해결을 제한하여 제3자의 중재에 의한 분쟁 해결을 당사자에게 강제하면서 중재인 판단의 집행을 확보하는 수단을 강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로마에서는 건국 후 잠깐 사이에, 당사자는 특정한 의식적(儀式的)절차를 이행하여 중재인에 해당하는 심판인(iudex)을 선정하고, 이 심판인의 심판절차(iudicium)에 의하여 사실을 심리하여 어느 당사자의 주장이 정당한가에 관하여 내린 판단(sentencia)에 따라 쟁송을 해결하였고, 국가는 관할 정무관, 즉 집정관이나 법무관이 심판인을 선정하는 절차를 감독하기 시작하면서 그로부터 민사소송제도가 출발한 것이다. 그 후 민사소송제도가 점차 발달하면서 자력구제의 방법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이 변천은 몇 세기에 걸쳐 행하여졌으며, 기원전 2·3세기에 와서는 자력구제가 원칙적으로 배척되는 상태가 되었다. 이 변천의 시대에 행하여진 로마의 민사소송은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로 규제된 중재절차제도로서, 근본적으로 자력과 공권력의 연합에 의한 권리구제 제도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정무관이 국가의 이름으로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위하여 당사자가 임의로 쟁송해결을 시도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재에 복종할 것을 강제하고 감독한다. 물론 정무관 자신은 중재인이 아니라 당사자가 중재절차를 구성하여 그 사이의 쟁송을 해결하는 것을 감독하는 입장에 있으며, 당사자는 심판인을 선택하고, 당사자에 의해서 선택된 심판인은 정무관과 독립하여 사건에 관하여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자력구제의 여지가 완전히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이 민사소송절차는, 중재절차를 구성하기 위하여 정무관의 면전에서 행하여지는 법정의(in iure)절차와, 심판인의 면전에서의(apud iudicem)절차로 2분되었다. 이 법정절차의 구성에 관해서도 정무관은 당사자의 출석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한쪽이 상대방과 동반하여 정무관의 면전에 출석하는 절차를 이행하여야 하고, 또 당사자 양쪽의 출석이 없으면 소송절차를 구성할 수 없었다. 또 심판인이 사실을 심리하여 판단을 하더라도, 정무관은 당사자 한 쪽이 위의 판단에 의하여 상대방에게 강제력을 가하는 것을 원조하거나, 또는 판단을 집행하기 위하여 강제력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절차제도를 지배하는 공권력과 자력의 관계는 시대와 함께 변화하여 공권력의 적용 범위가 점차 증대하였고, 절차도 조직적으로 되어서, 로마 고대 및 공화정 전기의, 당사자가 법이 규정하는 특정 언어와 동작으로 주장을 함으로써 심판인의 면전에서 절차를 구성하는 법률소송(legis actio)의 절차는, 공화정 후기 및 제정(帝政)초기 시대에 이르러 당사자가 방식서(formula)를 사용하는 절차로 행하여졌다. 하지만 양 자 모두 공권력과 자력의 연합에 의한 권리구제의 절차라고 하는 특징, 따라서 절차가 2분화 한다는 특징을 공통으로 한다. 이러한 특징을 구비하는 절차를 통상 절차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제정(帝政)이 확립되면서 황제 또는 그 대리인인 관리가 재판관이 되어 통치자의 입장에서 피치자인 당사자 사이의 쟁송을 재판하는 새로운 절차가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이 절차에서는, 재판관이 쟁송 해결자의 지위에 있었다. 여기서는 법정절차와 심판인 면전 절차의 2분별은 없어지고, 재판관이 당사자의 출석을 강제하고, 사실을 심리하며, 판결을 내리고, 그 판결의 집행을 위한 강제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 절차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통상절차는 완전히 폐지되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마치 로마가 그 제정(帝政)의 수립에도 불구하고공화정의 통치조직, 즉 집정관이나 법무관등 정무관이나 원로원 및 민회가 존속하였던 것과 같았다. 새로운 절차는, 통상 절차 옆에서 특별심리절차로 존재하였는데 최초에는 특수한 경우에서만, 일종의 행정처분과 같은 의미로서, 황제 또는 그 관리가 통치의 필요 또는 편의에 따라 행하였다. 하지만 이 새로운 절차는 통상 절차보다도 간편하게 분쟁 해결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실제로도 편리하여 차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황제의 통치가 공화정의 통치 구조를 압도하면서 권력이 절대화되는 전주정(專主政)시대에 이르러서는 이 절차만으로 민사소송이 이루어졌다. 이 절차는 권리의 자력에 의한 구제를 배척하고, 근대 소송제도와 마찬가지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써, 그 일반화에 의하여, 소송제도는 그 진화의 최후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통상 절차의 오랜 전통과 그 이론의 영향은 유스티니아누스황제 법의 제정에까지 미쳤다.

    (나)
    로마의 소송제도가 이와 같이 발달하였다고 하여 국민 상호간에 일체의 쟁송해결을 소송이라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쟁송이 있는 당사자가 국가권력의 개입을 구하지 않고, 그 사이의 쟁송해결을 구하는 경우는 언제나 존재하였다. 특히, 전주정의 확립과 함께 국가에 의한 재판제도가 일반화되고 확립됨에 이른 시대에도, 실제로는 국가 권력은 야만족의 침입 등에 의해서 점차 쇠퇴하고 국민생활을 완전하게 보호할 수 없게 되는 사태에 이르자, 국민이 국가이외 힘의 개입에 의해서 쟁송의 해결을 구하는 경우가 증가하였고, 국가도 또한 이러한 방법의 존재를 어느 정도 용인함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전주정의 확립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절대성·통일성의 발달이 근대에 이르지 않은 로마 제국에서는 이와 같은 국가권력에 의하지 않은 분쟁해결제도의 중요성은 잃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송제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선정한 중재인이 중재에 의하여 쟁송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송의 곁에서 항상 존속하였다. 사적 중재절차의 장점은, 국가의 개입을 받지 않고서도 완전하게 자유로, 따라서 간단하게, 어떤 방식도 필요 없이, 어떤 확립된 규칙에 의하지 않고서도 행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쟁송 당사자가 그 방법으로 해결을 구한다는 합의를 하고, 중재인이 그 의사에 따라서 중재를 하여야 가능하고, 이 절차에 의하여 쟁송을 해결하는 것은, 당사자가 중재인의 판단을 존중하여 이에 복종할 때에 한정된다는 결점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소송제도는 이와 같은 사적중재의 절차가 매우 불확실한 것이라는 결점을 제거하기 위하여 발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발달에도 불구하고, 중재절차는 그 장점 때문에 항상 존속하였으며, 국가도 그 존재를 인정함에 그치지 않고, 그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규제를 가함에 이른 것이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법전은 이와 같은 중재절차에 관하여 여러 종류의 규정을 채용하였다.


    3. 결론

    로마법에서, 중재인의 중재가 있어도, 당사자가 이에 복종하지 않는 경우의 취급을 결론으로 가름한다. 로마에서는 당사자가 중재절차를 구성할 때에는, 서로, 상대방이 중재판단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에 벌금을 청구하는 약정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하여 황제는 이러한 약정을 문답계약의 방법으로 체결하게 하고, 또한, 당사자가 서로 비밀리에 중재절차의 구성을 행할 수 없다는 선서를 하게 하였다. 제3자인 중재인의 중재판단은 심판인이나 재판관의 판결과 같이 기판력을 갖는 것이 아니지만, 특정한 경우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하는 중재판단을 얻은 당사자는, 상대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송을 제기할 때에는 항변으로 대항할 수 있었다. 또,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얻은 당사자는 이를 이행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판결채무이행청구 소송과 유사한 절차를 실행할 수 있었다.


    강현중 변호사 (前 사법정책연구원장·법무법인 에이펙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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