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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라 청변

    악인(惡人)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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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운 감독의 2010년작 '악마를 보았다'는 정확히 불교 영화입니다. 석가는 불법을 전하겠다는 제자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너의 말을 듣지 않고, 모욕하고, 죽이려 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제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더라도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곧 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석가는 제자의 청을 허락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약혼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살인범보다 더 잔혹한 악마가 되어갑니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도 복수를 멈추지 못한 주인공은 끝내 오열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자와 주인공 모두 내 마음도 언제든지 악(惡)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악(惡)이 어딘가에 고정된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천성이 있어서 악한 성격도, 나쁜 마음도 다 타고 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담을 치고, 경계를 나누고 나서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있는 자신의 모습에 안심합니다. 이쪽에 있는 나는 저쪽에 있는 악한 그 무엇에게는 아무리 잔혹해져도 여전히 선(善)이라는 확신으로 나의 잔혹함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악(惡)은 '선(善)의 부재(不在)'라고 배웠습니다. 악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함이 사라지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약한 마음이 악이 됩니다. 그러니 함부로 남을 미워하지 말며, 혹여 내가 잘못을 하였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고 늘 자애(自愛)하라는 것이 어머니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머릿속에는 수시로 나쁜 생각들이 들고 납니다. 차마 말로 다 옮길 수 없습니다. 머릿속만 보면 교도소에 있는 흉악범과 다를 바가 전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키워주신 어머니가 있었고, 별 어려움 없이 대학도 갔고 가족과 직업도 있습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얼마나 유혹에 시달렸을지 가늠하지 못합니다.

     

    판사로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재판하고자 합니다. 법대에 앉아 있는 마음도 피고인석에 있는 마음도 같을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악(惡)한 것이 아니라 약(弱)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김태균 판사 (수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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