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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일본에서 느낀 일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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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에 일본의 도쿄대 법학부에서 두 강좌를 맡아 10월부터 강의를 하고 있다. 2002년에 반년 남짓 이 건물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거의 20년 후에 다시 같은 건물을 들락거린다. 그때는 어느 교수가 그의 연구실을 쓰도록 해 주었지만 이번에는 내 방이 생겼다.

     

    나는 대법원에서 일하는 동안 국내외에서 나온 연구 문헌 기타 자료를 거의 추적하지 못했다. 사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와서 도대체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억울한 사정을 때로는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호소하는 당사자들의 '비명'에 항상 밀려 있어서인지, 차분하게 학문적 이치를 설파하는 글은 마음에 잘 담겨지지가 않았다.

     
    벌써 7년이 지났지만 그때 대법원을 나와 대학으로 돌아오고서 맨 처음 한 일 중의 하나가, 도서관을 드나들고 인터넷을 뒤져서 그 사이에 나온 국내외의 연구 문헌와 입법 자료 등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서는, 이제 어느 정도 뒤쫓아갔으니 페이스를 늦추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여기 도쿄에 와서 보니 그게 스스로를 위안하느라고 섣불리 내린 결론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전에 어디엔가 쓴 일도 있지만, 도쿄대 법학부의 도서실은 세계 유수의 다른 대학들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점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이름난 대학의 도서관도 충실한 장서를 자랑한다. 자기 나라에 관한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것은, 물론 기본은 다들 챙기고 있지만, 참고가 될 만한 자료도 빠져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도쿄대는 세계의 중요한 나라들의 자료들을 광범위하게 모아 왔고 여전히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두드러진다고 할 만하다. 근대 일본의 일관된 국가적 전략이라는 걸 엿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다 뒤져 본 것은 아니지만 내 전공인 민법 분야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의 주요한 나라에서 그 사이에 산출된 연구성과들은 양이나 질에서 그야말로 놀랄 만하다. 유럽에서 큰 전쟁이 없는 것이 이미 75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래 평화가 지속된 것은 대학제도가 제대로 자리잡은 15세기 이래 거의 없지 않았던가? 물론 여기에는 유럽법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동인(動因)도 일조를 하였을 것이나, 학문은 역시 앞선 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루어지므로 성과가 성과를 물어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분은 유럽이나 일본에서 우수한 법학생이 이제 학문보다는 실무, 특히 변호사업무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눈부신 실제의 '업적' 또는 '결과'를 눈앞에 보고 또 손에 들고 있으면, 설사 그쪽에서 혹 그런 점이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처지에서는 부러울 뿐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나 법학에 뜻을 둔 젊은이가 줄을 잇고, 그가 또는 그녀가 열심히 연구해서 좋은 성과를 얻으면 괜찮은 대학에서 교수 자리로 불러준다. 말하자면 그들은 젊은 나이에 장래의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자신의 앞날에 대한 나름의 전망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이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아래서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키우고 어떠한 교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는가? 법학교수가 학문적 열정과 역량 외에 다른 자질을 아울러 갖추어져야 한다고 하더라도, 애초 학문에 뜻이 없는 또는 학문적 역량이 부족한 교수란 대체 무엇인가?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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