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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상법학의 태두(泰斗) 서돈각 박사

    김용섭 교수(전북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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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에
    서돈각 박사(이하 ‘서 박사’라 함)는 1920년 11월 3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 박사는 1949년부터 1972년까지 약 24년간 서울대 법대교수로 활동하였다. 서 박사는 평소 법학은 하나의 학문으로 고립하여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그 주변 과학인 인문 사회과학과 제휴하여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서 박사는 법률가가 되려면 법학만의 교육보다 인성이 중요하므로 교양과정의 필요성과 법학에 앞서 철학적 기초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서 박사는 미국 법학을 적극 수용하였고 종합법학과 예방법학 성격의 경영법무론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서 박사는 제자들에게 학자에게 있어서 책이 무기이고 자산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고, 자신도 서재에 불교 서적을 비롯한 방대한 양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2. 한국상사법학의 체계 수립과 학문발전에 기여
    서 박사의 전공분야는 상법학으로, 1955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 다음해에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법학석사(LLM) 학위를 받았고, 상법의 제정과정에 미국 회사법의 흐름을 반영하는데 기여하였다. 서 박사는 1965년 경희대에서 ”신주식회사법의 기본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 박사는 한국 상법의 이론체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황무지와 마찬가지인 시기에 상법의 제정과 개정 등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1953년 대한민국 최초로 상법학 교과서를 출간하는 등 한국상법학의 기초 형성과 체계 수립에 기여하였다. 서 박사는 학문적 소통의 플랫폼인 학회를 다수 결성하고, 한국보험학회 회장,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해사법학회 회장 및 한국중재학회 회장을 맡아 학술대회의 개최와 연구지 발간 등 학술활동의 진작에 진력하였다.


    3. 동국대와 경북대의 총장을 역임한 미완(未完)의 교육행정가
    서 박사는 서울법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던 1972년에 동국대 제7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동국대에서 2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동국대 법대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서 박사는 종단 내부의 갈등으로 2년 만에 동국대 총장의 자리에서 중도 하차한 후 국민대 법대의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대에서 6년 정도 근무하다가 1979년 고향인 대구에 있는 경북대의 제8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대학의 총장은 교수, 학생, 직원을 잘 조율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자리이다.

    경북대 총장의 재임 기간은 1979년 2월 21일부터 1981년 3월 6일까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였고 갑자기 사임하였는데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산이 크면 계곡이 깊듯이, 누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4. 마치며
    서 박사는 1949년 12월에 전임강사 발령을 받아 30세 이전부터 평생을 교수로 활동하면서도 정치권 등 외부세계에 발을 담그거나 기웃거리지 않았다. 그는 학자적 본분을 지키며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 그리고 사회봉사에 매진하며 정년과 정년 이후까지 대학교수와 명예교수로 봉직하였다. 서 박사가 자신의 법호처럼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중심축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상법학자로서 대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겸손하였다. 서 박사는 제자들에게 지식보다는 덕(德)을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거액의 사재를 출연하여 무애문화재단을 만들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 인덕을 많이 베풀었다. 서 박사는 84세의 일기로 경희의료원에서 2004년 8월 24일 타계하였다. 서 박사의 사후에 지인과 제자들이 “무애 서돈각 박사 추모문집 ≪부처님과 함께≫”를 2006년 법문사에서 발간하여 그의 아름다운 삶의 흔적과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대구 출신임에도 자신의 고향에 묻히지 않고 무애(無碍)라는 법호를 준 내소사 해안 스님의 혼이 깃들어 있는 전북 변산의 유택에 잠들어 있다. 서 박사는 만나는 사람을 격의 없이 훈풍으로 대한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호인형 학자였다. 서 박사는 해방 후 학문적 태동기에 상사법의 학문적 토대를 구축하고 상법의 제정과 개정작업에 크게 기여한 한국 상법학의 태두(泰斗)라고 할 수 있다.


    김용섭 교수(전북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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