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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갈비를 뜯으면서도 싸우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된장찌개 하나에 화목한 인생이 있다. 5성급호텔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고시원 쪽방에서 단잠을 자는 인생이 있다. 누가 감히 타인의 행복의 크기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우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내 행복의 높낮이를 타인의 평가를 통해 저울질한다. 사법연수원에 근무하던 시절, 수료식 당일 아직 구직 중에 있는 제자들의 서글픈 마음이 전해졌다. 법조인의 생애가 시작되는 날, 무언가 다 끝나버린 느낌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우리가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자리하는지'를,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온 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희망하는 자리가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오래가는가. 임명장을 받은 날 누렸던 그 행복감이 어느새 돌아보면 온데간데없다. 법조인의 운명은 임명장 수여식이나 고액연봉을 수령하는 순간에 달려있지 않다. 오히려 일상에서 어떻게 보람을 찾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기록을 살피고 변론을 하거나 판결을 하는 그 하루하루가 쌓이고 쌓여 법조인의 삶을 이룬다. 그 과정 전체를 놓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선망하는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법조인들에게,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지금 그 자리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캡틴 아메리카가 타노스를 무찌르던 날 온 우주가 구원을 얻었다. 캡틴의 인생에서 그 날이 가장 찬란한 하루였을지 모르나, 캡틴의 인생을 그 하루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찬란한 업적을 올린 그날은 수많은 평범한 날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한 사람의 인생에 속하는 날이다. 우리는 한 인생을 사회적 위치나 성과물을 중심으로 평가하려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축제 같은 인생도 축제 끝난 뒷자리에 나뒹굴 쓰레기를 치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달콤한 장면과 쓰라린 장면이 어우러져 한 편의 작품을 이루듯, 우리네 인생도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도록 땀 흘리고 때로 눈물을 흘리며 애를 썼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게 아닌가. 곁에 있는 이들에게, 특히 법조청년들에게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지낸 당신은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자. 꼭 영웅적 성과를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최종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