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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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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캄보디아에서 일하기로 결정되었을 무렵, 조지 오웰이 20대 초반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근무한 경험에 대하여 쓴 에세이들을 떠 올렸다. '교수형'에서 오웰은 사형집행을 참관하면서 40야드 앞에 있는 교수대로 향하던 현지인 죄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옆으로 비켜 걷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멀쩡한 생명의 숨줄을 끊어 버리는 일이 말할 수 없이 부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한편 '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코끼리가 시장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신고를 받고서 호신 목적으로 사냥용 소총을 들고 나섰는데 수많은 현지인 군중이 기대감을 갖고 뒤따르자 위엄을 보이기 위해 이미 얌전한 상태로 돌아 온 코끼리를 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그는 현지의 백인 지배자들 역시 부조리한 식민 체제 아래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꼭두각시일 뿐임을 깨닫는다.

     

    보스니아 내전 중 8천여명의 무슬림이 희생된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국제형사재판을 통해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으나, 크메르 루즈에 의해 벌어진 무슬림 등 수십만명의 학살에 대해서는 ECCC 내에서도 책임자 처벌 여부에 대한 견해가 갈렸다. 또한 뿌리 깊은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속박되어 있으며 이를 떨쳐내고 보편적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일임을 특히 아시아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역 인권조약, 감독기구, 인권재판소가 존재하지 않는 대륙으로서 국제인권규범의 수용과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와 같이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 보장하는 공동체 정신과 경제적 번영에 중점을 두어 아시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아시아의 인권 후진성은 최근 미얀마 사태로 인하여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국민을 거리낌 없이 학살하는 정부군의 행태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으나, 구속력 있는 지역인권보장체제가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응수단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군부에 저항하는 미얀마 사람들은 한국을 언급하면서 미얀마는 남한이 되느냐 북한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한다.

     

    지역인권보장체제의 설립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일본, 인도와 같은 아시아의 대국들은 모범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을 동시에 이루어낸 매우 드문 사례로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따르고 싶은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아시아의 인권 논의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계 미국 배우인 산드라 오는 작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 평생 차별받지 않은 한국인의 모습을 처음 보고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은 과거 케이팝 아이돌의 전형적 모습에서 벗어나 종교, 인종, 성적 정체성에 관계없이 누구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는 메시지를 통하여 전 세계의 거대한 팬덤을 얻게 되었다. 아시아인이라는 소수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편적 메시지를 담아 낸 것이다(홍석경, BTS 길 위에서).

     

    일방적 한류의 프레임을 넘어,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이루어낸 역사를 바탕으로 보편적 인권을 위한 더 큰 목소리를 냄으로써 전 세계에 전파하는 '선한 영향력'이 바로 진정한 소프트 파워라고 할 수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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