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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법조산책

    10. 동성결혼 합헌판결로 인한 미국사회의 변화

    박영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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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6월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수 없다는 랜드마크 판결을 내렸다. 즉,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은 합법이라는 것이다. 그 후 이 판결은 미국의 사회정책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더 이상 성별에 따라 He나 She가 아닌 'Ze' 혹은 'Xe'로 사람을 지칭하는 트렌드가 생겼다. 또, 캘리포니아에서는 성별에 따라 분리된 공공시설의 화장실이나 탈의실의 경우 자기가 선택한 성별에 해당되는 화장실 혹은 탈의실을 쓸 수 있는 법이 통과될 조짐이다.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꾼 트렌스젠더의 경우, 여자화장실 혹은 탈의실을 쓸 수 있게 하는 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성결혼의 합헌판결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동성배우자도 이성배우자와 똑같은 법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망배우자의 국민연금을 법적 배우자로서 수령할 수 있게 된 것, 회사에서 지급하는 건강보험 혜택의 범위에 동성배우자도 포함된 것, 동성배우자가 함께 아이를 입양할 수 있는 것 등이 변화의 좋은 예이다. 상속법으로 볼 때도, 동성결혼의 합헌 결정으로 인해 과거 사실혼만 가능했던 동성연애자가 이제는 정식으로 결혼신고를 하고 배우자로써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및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혼을 인정받지 못하면 오랜 기간 부부처럼 살았어도 법적배우자로서의 혜택이 없다. 예를 들면, 하루를 살았어도 법적배우자라면 배우자 사망 후 유산상속대행인으로서 일순위를 주장할 수 있고, 법적상속인으로써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사실혼의 경우, 유산상속대행인으로서 일할 수 없고 상속분을 받기 위해서도 배우자로서가 아니라 파트너십 원리를 바탕으로 사망배우자의 재산축적에 기여한 기여도를 가지고 재산을 쟁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결혼이 불가능하던 동성연애자들의 결합은 사실혼관계의 동거형태만이 가능했다.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는 주에서 동성커플은 유고시 재산분배를 위해 생전에 유언장을 만들어야만 상속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루이지애나주를 제외하고 유류분제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산상속계획만 잘 해놓으면 사망한 동성연애자의 가족들과 유류분 때문에 싸워야 하는 일은 없었다.

    동성연애자이며 유산상속을 전문으로 하는 필자의 지인변호사에 의하면, 동성연애자들의 다수가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인 경우가 많고 자녀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수입의 대부분을 자신을 위해 쓴다고 한다. 동성연애자들 중 동거를 하며 부동산을 사서 꾸미고 함께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동성파트너가 죽고 나면 부동산 등의 재산을 두고 죽은 파트너의 가족들과 분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이성끼리 사실혼관계로 살다가 사망하는 경우에는 설사 사실혼배우자가 재산을 받지 못해도 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법적상속인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법적분쟁을 피해갈수 있는 차선책이 있다고 한다. 유류분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혼의 경우 상속분쟁의 위험은 생전에 상속계획을 하면서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진보주의 성향이 강한 캘리포니아에서는 동성결혼이 합헌으로 판정되기 오래전인 1999년부터 '동거 파트너법(Domestic Partnership Law)'을 통해 결혼증명서를 받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해왔다. 예를 들면, 동성연애자는 결혼증명서를 받을 수 없으므로 대신 동거파트너로 등록을 하고 친족법 하에서 결혼 시 배우자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동성 결혼 합헌결정으로 인해 동성연애자들의 결혼이 자유로워졌고 굳이 동거 파트너법에 의존하지 않아도 정식으로 결혼증명서를 받은 많은 동성연애자들이 친족법 내에서의 배우자로 그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재산권 이외에도, 의료기록 및 의료시술의 동의권에 관한 이슈도 과거 동성연애자에게 중요한 분야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혼수상태에 빠져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경우, 사실혼 관계에 있던 동성파트너는 가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환자를 대신해 아무런 결정을 내릴 수 없다. 환자의 진료기록에 담긴 개인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사람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동성파트너와 환자의 친족들과 관계가 좋지 못하거나, 상속 후 재산분쟁이 생길 조짐이 있다면 동성파트너는 생명이 위독한 동성파트너의 의료시술의 결정에서 있어 배제될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위해 2000년 초반에 통과된 '건강보험에 대한 양도와 책임법(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ccountability Act)'은 비상시 의료결정 및 진료기록을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 누구인지를 환자로 하여금 미리 정하게 하는 법이다. 즉 위의 예에서 동성파트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비상시 혈족이 아닌 자신의 동성파트너가 의료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병원에 미리 통보하는 형태가 된다. 이 법의 통과이후 유산상속 시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에 대한 양도와 책임법에 의거한 서류를 만드는 것이 관례이다.

    이제 미국에서 동성연애자들은 여성이나 흑인처럼 법으로 차별할 수 없는 사회의 소수자로 완전히 자리매김을 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로 인해 혼돈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시간을 두고 사회정책의 장단점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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