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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법조산책

    11. 미국변호사의 눈으로 본 유류분제도

    박영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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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속 유류분제도는 1977년 첩으로 부터 유산을 지키려는 본처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도와주다 생긴 법입니다." 지난 9월7일 서울 신정동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4층 강당에서 만난 원장 양정자박사의 설명이었다.

    이날 이곳에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의 창립 17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유류분제도의 개선 방향' 이란 주제로 김상용 중앙대 교수와 필자가 연사로, 경수근 변호사가 좌장으로, 언론과 대학 그리고 몇몇 비영리 단체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사회 인사들이 토론에 참가했다. 강당을 꽉 채운 연사 및 토론자, 그 외 50여명의 참가자들은 "가족관계의 서구화와 사회의 고령화 현상 등을 참작해볼 때 현행 유류분제도는 적합하지 않으며 변화 및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필자에게는 한국의 유류분제도와 미국 상속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미국변호사의 눈으로 본 한국의 유류분제도가 어떤지 적어본다.

    상속법과 관련, 영국의 관습법을 따르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에서는 배우자의 재산권은 인정하는 반면, 자녀의 유류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법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배우자란 피상속인과 함께 재산을 형성한 사람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보호받아야 하지만, 자녀는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꼭 유산을 남겨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 배우자의 재산권은 부부공동재산법 (Community Property)이나 선택적 공동법 (Elective Share) 아래 보호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배우자가 각각 자기이름의 은행통장이나 부동산을 가지고 있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결혼 후 함께 모은 재산은 부부의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한 배우자가 사망하면 자동적으로 생존배우자에게 상속된다. 이렇게 피상속인이 유언 없이 사망한다면 부부공동재산의 경우 자녀가 재산권을 주장할 여지가 없다. 결혼 전에 모은 재산이나 결혼 후라도 상속받은 재산은 개별 재산으로 간주되는데, 피상속인이 유언 없이 사망하면 개별재산은 한국과 비슷하게 생존배우자와 자녀가 법정지분으로 나누어 갖는다. 법적으로 피상속인이 유언에 의해 마음대로 상속할 수 있는 재산은 개별재산이나 부부공동재산 중 자신의 몫인 2분의 1까지이다. 즉, 적법하게 만들어진 유언이라면 자신의 몫에 대해서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남기지 않고 마음대로 상속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부부공동재산의 나머지 2분의 1은 생존배우자의 몫으로 간주되고 피상속자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미국식 유언의 자유가 좋긴 하지만 피상속인이 미성년자 자녀 혹은 장애자녀를 상속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유류분권을 인정하지 않고 피상속인의 유언의 자유를 굳건히 지켜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생존 배우자의 재산권을 인정하면, 미성년 자녀 혹은 장애자녀의 부양을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생존배우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부양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무로 본다면 대부분의 상속다툼이 재혼의 경우로 피상속인의 사망 후 생존배우자와 피가 섞이지 않은 피상속인의 자녀 사이의 법정다툼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피상속인의 자녀의 경우 유류분권이 없다는 가정아래 이혼 시 미성년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양육비지급을 책임지는 배우자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자녀가 성년이 되기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을 들도록 재산분할 청구 시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할 것 없이 자녀가 재산형성에 기여하는 것은 가축을 치고 농사를 짓던 농경사회에나 해당되었던 말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유명 사립 중·고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면 연간 4천만원 정도의 학비가 든다. 굳이 이런 극한 상황을 예로 들지 않아도 현대사회에서 자녀는 대차대조표상에서 자산이 아닌 부채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관계를 미국식 금융논리로만 볼 수 없고 심포지엄을 하는 내내 느낀 것은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정서로 볼 때 미국처럼 자녀를 위한 유류분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힘든 게 아닌가 한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자녀에게 유류분을 인정하는 이유로는 노후에 부모를 돌보는 것이나 사망 후 제사를 받드는 일을 자녀가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가성인데, 한국적 정서로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다. 부모와 자녀란 천륜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고,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풍토가 아직도 한국에는 고유하게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자녀 부양의 의무를 18세로 보고 그것이 끝나면 나이가 들어 자신의 몸을 건사하지 못할 때까지 독립적인 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은 양로병원에서 마치는 미국과는 다른 끈끈한 문화임에 틀림없다.


    비록 현행 유류분법을 다 없애지는 못해도, 부분적인 개선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자의에 의해 비영리단체를 통해 재산을 환원하는 경우를 인정하거나,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 비율을 조정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주식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자녀가 유산에 의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체재산에 비하면 아주 적은 금액의 재산만을 자녀에게 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피상속인이 자신의 손으로 번 돈을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사회에 남기려고 하는데 자녀가 유류분 제도를 이용해 이것을 막을 수 있다면 피상속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볼 수 있다. 또, 고령화시대에 피상속인의 사망 후 생존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경과될지 모르는데 당장 자녀와 재산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사실 미국식 유언의 자유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재산을 가진 실버세대를 노리는 신종사기가 극성이다. 자녀에 의존하기보다 노인 아파트나 그룹홈에 살기를 선호하는 시니어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고 집에 기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건강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몸이 아파서 장기간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가사 도우미가 필요하다. 이런 도우미중 몸이 불편한 시니어를 유도하여 자녀를 완전히 배제하는 상속을 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일명 간병인법(Caregiver Statutes)이라고 불리는 캘리포니아 상속법 21380-21392 조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약해진 시니어를 이용해 재산을 갈취하려는 사람들로 부터 시니어를 보호하는 법이다. 즉, 가족이 아닌 도우미에게 오천불 (약 오백만원)이상의 유산을 남기는 경우 유언서 자체를 무효화 시킬 수 있는 법이다. 이법 이외에 가족끼리라도 연로한 부모를 은행에 모시고 가서 돈을 빼내는 경우나 부모 대신 은행서류에 서명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캘리포니아 법상 은행이나 재정회사도 시니어가 가진 은행 구좌를 통해 수상하다고 판단되는 거래가 보이면 사법당국에 고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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