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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백

    서동칠 부장판사 (창원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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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뇌물, 배임수재 등 형사 부패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부인(否認)하는 사건의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한 기일에 여러 명의 증인을 소환하여 늦게까지 신문을 진행하기 일쑤다. 구속기간의 제한 때문에 기일을 여유 있게 잡을 수도 없다. 얼마 전 사석에서 이러한 고충을 토로하였더니, 주위에 있던 법률가 몇 분이 "부인하는 사건은 개전의 정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극적으로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형사절차가 간명하고 신속하게 진행된다. 피해자는 법정에 출석해 피고인의 면전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합의나 피해변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고인의 자백에다가 보강증거까지 더해지면 사안의 진상이 명백히 가려지고, 실체적 진실 발견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 일찌감치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백을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다는 징표로 받아들이고, 좀 더 관대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게 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미국의 인권단체 이노센스 프로젝트의 보고에 따르면, 이 단체가 활동을 시작한 1992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시 검증한 결과 290명에 이르는 피고인들이 사실은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음이 뒤늦게 밝혀졌는데, 유죄판결에서는 주로 피고인들의 허위자백이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부인해봤자 자기의 변명을 믿어줄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재판에서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을 위험이 크다고 느끼는 순간, 교육수준이나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법관의 기대(?)를 고려하여 허위로 자백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진술분석기법이나 뇌 과학 등이 계속 발전하면 자백의 신빙성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오기 전까지는 어서 빨리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조바심을 조금 내려놓고, 재판의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 행여나 자백을 반기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허위자백에 의한 유죄판결은 당해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절차가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진실 발견에 이르는 길은 원래 더디고 번거롭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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