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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진심

    권양희 부장판사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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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니까요! 상담도, 교육도 필요 없어요.”
    텅 빈 동공의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남편은, 살다보면 뺨 한 대 때릴 수도 있지, 이제 다 잊고 잘 살고 있는데, 국가가 집안 문제에 개입해서 이혼시키려고 하느냐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요즘은 너무 잘해준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남편을 법정 밖으로 내보내고,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이크까지 꺼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같은 대답을 했다.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녀의 남편은 가정폭력으로 법정에 섰고, 상담위탁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몇 개월 후, 그는 다시 그녀의 목을 조르고 뺨을 때렸다. 

    그에게 또다시 상담을 명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설사 상담을 받지 않더라도 그저 과태료를 내는 것이 그에 대한 불이익의 전부다. 과태료는 그녀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아이들의 몇 달치 생활비가 될 테니.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폭행 사건인지라, 형사재판을 받으라며 검찰로 보낼 수도 없다. 혹 그렇지 않다 해도, 벌금이 예상된다면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 역시 그녀와 아이들의 몇 달치 생활비가 될 테니.

    접근금지는 어떨까. 접근금지처분을 받고 집을 나온 많은 남편들은 그 날로 아내의 생활비 카드를 정지시키고, 급여 계좌를 바꾼다. 결국 그녀의 남편은 접근금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묵인 아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에겐 경제적 폭력으로부터 그녀와 아이들을 지켜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임시조치로 남편을 한 달 동안 구치소에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그녀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유치 기간 동안 직장을 잃고 내내 그녀만을 탓하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그녀를 힘들게 하더라도, 역시 우리에겐 그녀를 지켜줄 마땅한 방법이 없다. 


    남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던 그녀의 진심은,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 그저 불완전한 사법제도에 대한 원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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