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제추행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는데, 검사가 증거기록 중 CCTV 영상 CD에 대한 복사를 불허하였다. 검사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불허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추행 사건에서 핵심 증거라면서 제출한 CCTV 영상을 정작 변호인으로 하여금 확인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헌법 및 형사소송법 체계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중대한 의문이 들었다.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의 지위에 대하여 대법원은 “그 조력을 받을 권리가 직접 헌법에 규정될 정도로 변호인은 형사절차에서 중요한 공익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과 각종 절차적 권리를 실질적·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해 주는 법적 장치가 바로 변호사제도이다. 따라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이나 수사와 공소제기 및 유지를 담당하는 검사와 마찬가지로 변호사도 형사절차를 통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중요한 공적 이익을 위하여 협력하고 노력할 의무를 부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는 개인적 이익이나 영리를 추구하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 실현의 한 축으로서 정의와 인권을 수호하여야 하는 공적인 지위에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5다200111 전원합의체 판결). 즉, 형사재판에서 변호사의 공적인 지위에 비추어 볼 때, 검사의 위와 같은 거부처분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로 볼 소지도 있는 것이다. 설사,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높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영상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무관한 부분에 대하여만 복사를 불허하는 등 충분히 피해자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영상 전체에 대한 등사를 거부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도 위반될 가능성이 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과 피해자의 권리보호가 어느 정도 상충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하나의 가치에 중점을 두어 다른 가치가 훼손되거나 헌법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도록 합리적인 방향으로 탄력적인 제도 운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