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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만만한 판사

    최기상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최기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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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용정보원이 3월에 발표한 ‘2016년도 직업만족도(사회적 평판, 급여만족도, 직무만족도, 직업지속성 등) 조사에서 판사가 1위였다’는 보도는 법관의 퇴임사에서 ‘대과 없이 마쳤다’는 말을 들은 때처럼 민망하였다. 당사자의 판사만족도나 재판만족도라면 모를까. 시민들의 문제와 고통에 주의를 기울여 정성껏 재판하라는 취지인 공동체의 통큰 존중과 뒷바라지가 판사의 만족이나 행복과 결부될 수도 있다는 게 아쉬워서다. 어느 판사의 고백처럼, 법관은 매우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직업이면서 동시에 엄중한 직분임에 틀림없으나, 그 법관의 직을 수행하는 ‘나’는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인간이다. 재판에서 누군가는 패소하고 유죄를 선고받으며 심지어 오판에 억울해 한다. 그럼에도 그 재판을 기꺼이 떠맡아 책무를 다하려는 판사에게 ‘하고자 하는 일이 잘돼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맥빠진다. “행복하게 지낼 양이면 쪼다로 살면 된다”는 슬라보예 지젝도 있는데 말이다.

    행복한 판사가 아니라면, 좋은 판사는 어떨까. 좋은 재판을 하는 그 순간 잠시 ‘좋은 재판을 하는 판사’가 있을 뿐 ‘좋은 판사’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판사의 정체성은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사건들로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변하니까. 더욱이 좋은 재판인지 아닌지는 당사자가 판단한다. 그러니 ‘나는 좋은 판사이고 내 재판은 신뢰받는다’는 환상은 판사의 직분을 견뎌내야 할 정도만 봐줄 수 있고, 지금 이 사건을 재판하는 데는 별 소용이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기 안위에만 마음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가 되자”고 역설한다. 장자는 ‘모욕을 당해도 치욕으로 여기지 않고 백성들의 다툼을 말린다’(見侮不辱 救民之鬪)고 했다. 법정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깨끗한 창문’ 같은 것이 아니라, 지나다닌 발자국들로 더러워지고 안과 밖이 드나들며 만나 ‘섞이는 통로’ 같을 때 활발하다. 그 법정의 판사는 ‘당신의 일이 바로 내 일이고, 모든 것이 우리 일’이라는 듯 환대하면서도 어떤 말도 기탄없이 섞을 수 있게끔 조금 만만해 보여도 괜찮겠다. 누구든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은근히 무리한 요구에도 응해주고 심증 교류에서 빈틈도 보이는. 세상의 여러 다른 일처럼, “법관의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법관의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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