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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동상연의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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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연의(東廂演義)란 1책 짜리 선장본(線裝本)이 필자의 서가에 곱게 모셔져 있다. 서지적 사항은 이렇다. 겉표지는 ‘동산연의’라 되어있고 책 표지를 넘기면 ‘동산기인(東床記引)’이 1장 있고, 다음 장에 ‘전(傳), 아정 이덕무무관 저(雅亭李德懋懋官 著),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이란 제하에 6장에 걸쳐 전의 내용이 있고, 그 다음에는 ‘동상기(東床記), 완산 이각 저(完山 李珏 著)’란 제하에 서상기식 연극체제의 한문 글이 또 19장에 걸쳐 쓰여 있다. 글씨도 개성 있고 내용도 재미있어 틈틈이 꺼내 보며 저자는 누구이며 누구의 글씨일까 항상 궁금하였는데 아직도 그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 여러 사전을 참고하면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1791(정조15)년 2월 정조 임금은 서울 도성안의 사서(士庶) 중에 적령기에 있는 자녀들이 가난하여 결혼시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엾게 여겨 왕명으로 혼수비용을 보조하여 금 500냥, 포 2단(段)씩을 하사하여 백성에게 혼인토록 권장하여 150인을 결혼시켰다. 한데 그 중 21살인 신덕빈(申德彬)의 딸과 .28살 먹은 김사중(金思重)의 아들 김희집(金禧集)이 혼기를 놓치게 되었다. 이 일을 맡은 한성부와 예조의 담당부서로서는 이미 왕명대로 시행했음을 국왕에게 보고를 마친 때였으므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보고를 받은 정조는 두 사람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특별히 은전을 베풀어 백년해로 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 즉 정조15(1791)년 6월 초여름, 이런 기이한 이야기(奇事佳傳)를 기록하라는 왕명을 받아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을 지었는데, 이를 이옥(李鈺: 1760-1815)이 듣고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 동상기(東廂記)이다. 그러나 공연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시에 식자층에서 많이 익혀졌던 장군서(張君瑞)와 최앵앵(崔鶯鶯)의 사랑이야기인 서상기(西廂記) 형식을 모방한 일종의 유희문자로, 읽는 연극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은 네 개의 절(折)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절은 김희집이 등장하여 사설(辭說)과 창(唱)으로 쇠망한 집안 형편과 30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 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때 임장(任掌)이 등장하여 한성부와 관가에서 늙은 총각을 조사하여 혼인하도록 한다는 말을 전한다. 김희집은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며 기대에 부푼다. 제2절은 관리가 등장하여 사설과 창으로 그 동안 조정의 지시에 따라 행한 일을 말하고 임금님의 덕을 찬양한다. 그 다음 동네 사람들이 등장하여 광주 양반에게 혼처를 정했던 김희집이 파혼당하고, 신덕빈의 딸도 아직 혼인을 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제3절에서는 호조 서리와 선혜청 서리가 등장하여 김희집과 신씨 처녀가 연분이 있으니 관가에서 혼인을 주선하게 되었음을 사설로 말한다. 그 다음 창으로 혼인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제4절은 세 명의 총각이 등장하여 새신랑인 김희집을 다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근래에 들어 전문가들이 동상기가 이옥(李鈺)의 작품이라고 주장을 많이 하나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의 작품이냐도 중요하지만, 동상기로 전하는 여러 이본 중에 필자의 것이 가장 선본이라 여겨지고 글씨도 가장 좋아 이를 볼 때마다 소장자로써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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