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기일, 항소이유서 제출 마감일, 판결 선고기일, 칼럼 원고 마감일 등의 공통점이 있다. 날짜가 특정되어 있고, 멀게 느껴졌던 날짜가 어느새 코앞에 다가온다는 점이다. 2주에 한 번씩 칼럼을 기고한다면, 한 달에 두 번만 작성하면 되니 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실상은 조금 달랐다. 주제를 선정하는 일 자체부터 어려웠다. 거의 매일 준비서면을 쓰고, 다양한 법률서면을 작성해 왔지만, 직접 주제를 정하여 글쓰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전에 SBS TV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한 어느 작가가 글을 창작하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누워서 생각해보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고민하던 장면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된다.
글은 기록되어 오래도록 남는다. 고위공직 후보자는 오래 전 작성한 글 때문에 낙마하기도 한다. 일반인들도 자신이 예전에 인터넷 상에서 무심코 작성한 글이 공론화되어 직장에서 고초를 겪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받게 될 불이익이 두려워 표현에 제약을 받거나, 정당하게 작성한 글로 인하여 신분상 부당한 조치를 받아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하고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아직도 관련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심지어 사법부에 법관들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물론 이 사건들의 사실관계가 어떠한지,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글로 표현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데 실질적 불이익이 가해지고 그 불이익이 위법하다면, 이는 부당하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칼럼을 기고하면서, 혹시 이런 글도 괜찮을까 우려하며 주제를 바꾼 적도 있었다. 또 몇 년이 지나면 그동안 작성했던 글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강호석 변호사 (법무법인 정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