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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쓰레기 혹은 태풍 무엇이든 간에

    김혜민 변호사 (광주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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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민 변호사님인가요?”

    “네, 그런데요.”

    “변호사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이런 쓰레기 같은 소장을 써서 보내시나요? 제가 당신의 이 쓰레기 같은 소장을 받고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저는 제 의뢰인의 설명에 기초해서 소장을 작성했을 뿐입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그것만 아십시오. 변호사님의 소장으로 인해 한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다는 것을요. 저는 오늘 자살할 겁니다.”

    “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전화 마치겠습니다.”

    몇 주 전에 받은 전화다. 소송 상대방의 전화는 대체로 직원들이 전화연결을 하지 않고 마무리 짓지만, 이날은 한마디만 하겠다고 계속 요청하여 하는 수 없이 전화연결을 하였던 것이다. 1분가량 이어진 '쓰레기 같은 소장', '자살하겠다', '돈 벌려고 이런 소장을 쓰느냐'는 등의 말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다가 짧은 한숨과 함께 사라졌다.

    필자가 주로 재판을 다니는 광주가정법원은 작년 10월부터 ‘갈등저감형 양식’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말하는 ‘쓰레기 같은 소장’은 양식상으로도 쓰기가 힘들다. 이 사건 역시 갈등저감형 소장 양식에 따라 혼인파탄사유를 체크하는 선에서 작성되었고 부연설명이 다소 곁들여져 있을 뿐이었기에 억울한 감도 없지 않았다.

    다음날 의뢰인은 남편이 어제 오후부터 통화가 안 된다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필자의 감으로는 의뢰인이 우려하는 불길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첫째는 상대방이 폭발할 것 같은 그 순간에 필자에게 전화해서 퍼부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진짜 자살할 사람은 그리 행동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며칠 후 상대방은 의뢰인과 함께 필자의 사무실에 방문하여 합의각서를 작성하였고, 이 각서를 첨부한 답변서를 제출하여 화해권고결정을 받고 마무리하였다.

    늦은 휴가로 미국령에 와 있는 지금, 물품을 사러 가니 점원이 허리케인 피해 성원을 위해 잔금을 기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 순간 뜬금없지만 태풍 같은 변호사의 이런 삶이 그래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농축하여 마주하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때론 쓰레기로 불리거나 태풍과 같은 삶이라 해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서 잠시 이 생각이 스쳐지나간 후 활짝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오늘도 감사합니다!)

     

    김혜민 변호사 (광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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