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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녀딸의 재판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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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에게 나는 첫 손주였다. 첫 손주가 판사가 되었다고 하니 할머니는 그 재판이 무척 보고 싶으셨다. 대구에서 지내시던 할머니는 서울 이모댁에 오시기만 하면 내 재판을 보러 오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매번 나는 "할머니 지금 말고 나중에, 내가 재판 더 잘하게 되면 그 때 오세요"라며 못 오시게 했다. 결국 우리 할머니는 내 재판을 보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어머니가 가장 속상해 하시는 일이다. 나도 그렇다. 뭐가 그렇게 준비가 안 됐기에 보여드릴 수 없었을까?

     

    선고할 판결문은 다 썼고, 진행할 사건 기록은 미리 검토했고, 제출된 서면과 증거는 놓치지 않고 메모에 빼곡히 기재해 두었다. 재판 전날에는 약속 없이 조용히 보냈고 재판 날에는 더 일찍 출근해 혹시나 놓친 것이 없는지 재확인도 거쳤다. 기일표에 적힌 순서대로 사건번호와 당사자를 불러 지금까지 나온 주장서면과 증거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더 주장하거나 제출할 증거가 있는지 물어보고 필요한 법리와 판례도 공부했다. 그런데 왜?


    여든이 넘으셨던 할머니가 손녀딸이 이런 준비를 다 했는지를 보고 싶어 하신 것은 아니다. 사실 판사들이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에는 후회가 꾹꾹 밟힌다. ‘기록 좀 더 볼걸, 그 판례 읽어보고 들어올걸’ 하는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는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으니 지금부터 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오늘 놓친 마음은 다음에 다시 잡기 어렵고, 오늘 외면한 간절함은 다시는 나를 향할 것 같지 않기에 퇴근길 어깨가 무겁다. 당사자가 준비서면에 적은 것은 글자이지만 실제로 담은 것은 마음이고, 법정에서 판사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은 사실과 법률 주장보다는 그 속에 배어 있는 간절함일지도 모른다. 효율적인 재판 진행과 간결하고 논리 정연한 판결을 생각하느라 놓쳐버린 간절함이 있었을까봐 두렵다. 아직 다스리지 못한 내 마음이 불쑥 표정이나 말로 튀어 나와 다치게 한 다른 마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또 두렵다. 돌아보고 돌아보지만 아직 부족하다. 할머니가 지금 내 옆에 계셔서 재판을 보고 싶다 하시면 나는 언제쯤 오시라고 할 수 있을까?

     

    김미경 부장판사 (부산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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