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수년이 되다보니, 서로에 대하여 어느 부분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한다. 또한 육탄전과 막장을 방불케 하는 이혼사건을 처리하다보면, 필자의 부부생활 중 오해와 부딪침은 귀여운 애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 사이에 일종의 마지노선처럼 허용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그게 어떤 형태를 띠든, 때론 오해라 하더라도 갈등의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쟁송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결과에 있어 예측가능성이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부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도 그 중 하나다. 한 의뢰인은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로 인하여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 의뢰인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지점은 배우자의 성행위, 혹은 파국에 치달은 결과물이 아니라 배우자의 수년간의 정신적 외도였다. 그 경우 최근의 성행위에만 주목한다면 당사자의 정신적 고통이 진정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지 못하게 된다. 법리적으로 사건 자체는 쉬울지 모르나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어느 위자료 판결에서는 배우자 있는 남녀가 만남을 가졌으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본질적인 침해가 없기 때문에 부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시도 보았다. 어떤 위자료 판결은 혼인기간 중 일방이 다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하고 혼인파탄 후 출산하였으나 그 인정되는 위자료가 실상 변호사선임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들여다보면 제각각 이유는 있지만, 이런 현상을 접할 때마다 부정행위에 대한 일종의 감수성 내지는 바로미터만큼 폭이 넓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스킨십이나 성행위는 없어도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던 것이 무안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혼인파탄을 전제로 하여 보통 인정되는 위자료는 1000만~3000만원 사이가 가장 많더라는 통계적 설명이 무색할 때도 있다. 30년 전의 1000만원과 지금의 1000만원이 다름에도 주어지는 결과는 30년 전의 그것만 못하여 피고로서는 다행이고 원고로서는 허탈한 경우도 있다. 이제 위자료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공감대에 따른 기준이 법조인들 간에, 법조인과 일반인 간에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혜민 변호사 (광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