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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버린 어깨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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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부터 좌우 어깨가 돌아가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병원마다 진단이 제각각이다.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그냥 내버려두었다. 당시 한 병원의 진단서에 ‘Frozen Shoulder(오십견)'라고 적혀 있었다. 오십은 어깨도 얼어 굳을 나이이다. 넉넉한 뱃살과 어깨 탓이겠지만, 해가 갈수록 일상이 점점 더 아크로바틱해진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거나 등을 긁거나, 발톱을 깎는 일 따위가 이젠 곡예에 가깝다. 모험은커녕 일상마저 버겁다. 나이를 먹어간다.

    숱한 가치와 입장들이 첨예하게 부딪치며 강렬한 파열음을 내는 현장에 있은 지도 제법 되었다. 나름대로 혜안이 생길 법도 하지만 아직도 ‘나’라는 ‘노(爐)’는 이를 녹여내기 역부족이다. 녹지 않은 쇳조각들이 사정없이 찔러댄다. 나이가 들수록 생의 시원으로부터 멀어져간다는 근원적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상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선택조차 부담스러워진다. 마흔을 즈음하여 좌고우면할 일들이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고,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마흔이라는 말씀에 의문이 들었다. 그 무렵 나는 차라리 불혹은 마흔 쯤 되었으니 더는 흔들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 후로도 한참을 쉼 없는 흔들림에 대하여 고민하였으나, 어깨가 얼 무렵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흔들리며 피었듯이, 흔들리며 꽃은 지고, 법관은 법 앞에 선 시골 사람의 출입을 막고 선 요지부동의 문지기가 아니라, 뾰족한 바늘 위에 엎드려 정의라는 자북을 가리키는 지남철이어야 한다고. 지남철인 법관은 법 앞에서 길을 묻는 사람들 앞에 누워 파르르 떨어야 한다고.
    이해와 공감, 떨림과 감응은 동어반복이다. 이해나 공감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면, 떨림과 감응은 정성에 달린 문제이다. 이해하고 공감하되 불 좋은 연탄마냥 뜨겁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쇳조각은 고사하고 달고나 한 국자 녹여낼 수 없다.

    특별한 치료 없이 오십견은 좋아졌지만, 무심코 처리해 온 사건들마저 갈수록 어깨를 짓눌러 온다. 매주,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어깨처럼 감각도 얼어버려 떨림마저 사라질까봐, 그래서 결국에는 용도를 다한 지남철이 될까봐, 나는 매일 두렵다.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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