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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안중근 의사 글씨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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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겨울 K옥션 메이저 경매에 나오는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세심대(洗心臺)’ 세 글자를 보면서 얼마 전 평소에 존경하던 김석주(金錫胄)선생의 부탁으로 그 분의 중·고등학교 은사이신 길영희(吉瑛羲: 1900~1984)선생 유작전시 팸플릿에 쓴 글이 생각났다. 그 글을 선생님이 어찌나 칭찬을 하시던지 몸 둘 바를 모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글씨는 ‘좋은 글씨’와 ‘잘 쓴 글씨’가 있을 뿐인데 길 선생님의 글씨는 ‘좋은 글씨’라는 내용 때문일 것이다. 요즘 와서 자꾸 이 두 가지 글씨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세상에 잘 쓴 글씨는 많다. 그러나 좋은 글씨는 얼마나 될까? 그러면 잘 쓴 글씨와 좋은 글씨를 다 갖춘 글씨는 어떤 글씨일까? 하고 스스로 자문해 본다. 이 때 뇌리에 선명히 떠오르는 글씨가 바로 안중근 의사의 글씨다.

    이 ‘세심대’ 세 글자도 붓이 아닌 칼로 내리 그은 것 같은 전형적인 구양순 풍의 안 의사 글씨로 비단에 쓴 것이라 손바닥 인장도 손금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들어나서 글씨의 품격을 더욱 빛낸다. 보는 순간 그 서늘한 기운에 압도되면서도 그 이름이 보통의 산중턱이나 어느 마을어귀에 있을 법한 내용이라 마음이 쓸쓸하였다. 이 작품은 일본과 사업을 하는 분이 사업으로 만난 일본인에게서 가지고 온 것이다. 한데 그 가져오신 분이 하는 말씀 ‘일본에서 처음 가지고 계셨던 분이 중국에서 관리로 있다가 온 분인데 그 분 말이 이 글씨내용이 ‘여순(旅順)감옥’이란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안 의사께서 왜 이 글을 쓰셨는지 금방 이해할 것 같았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哈爾賓)에서 한국침략의 원흉인 이가(伊哥: 이토 히로부미를 안 의사는 이렇게 불렀다)를 처단한 후인 1910년 2월 7일 제1회 공판을 시작으로 14일 6회 공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다. 하여 안 의사의 글씨는 거의 2월 보름 이후부터 3월까지 쓴 것이 남아있다. 한데 지금까지 발견된 글씨는 3월에 쓴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안 의사가 사형선고 뒤 항소를 포기하고 도를 닫는 마음으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안 의사는 한편으로 동양 3국은 침략이 아닌 서로 화합해 나가면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 나아가자는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형판결을 내린 법원과 감옥 등 관련 사람들이 너도 나도 기념으로 삼고자 안 의사에게 글씨를 부탁하면서 쓴 것이 오늘날 전해오는 안 의사의 필적이다.

    “…그래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 때 법원과 감옥의 일반 관리들이 내 손으로 쓴 글로써 필적을 기념하고자 비단과 종이 수 백 장을 사 넣으며 청구하였다. 나는 부득이 자신의 필법이 능하지도 못하고, 또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서 매일 몇 시간씩 글씨를 썼다.”… (안응칠 역사)

    그렇다면 사형선고를 받은 2월 14일부터 돌아가실 때까지는 이 여순 감옥이 안 의사에 있어서는 바로 ‘마음을 씻는 곳(洗心臺)’인 것이요. 이 마음은 바로 동양 3국이 서로 침략할 것이 아니고 앞으로 동양의 평화를 위해선 이런 일본인까지도 동화시켜 용서하자. 이런 마음으로 이 글씨를 썼다면 필자만의 우문우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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