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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늦가을의 회상

    김홍엽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법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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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가을의 끝자락인가, 절기상으론 입동(立冬)에 들어섰다. 거의 떨구고 몇 되지 않은 빛바랜 잎을 달고 있는 앙상한 나무들을 보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신문을 펼치다 마주친 변정수 전 헌법재판관님의 부음을 접하고 서둘러 나선 길에서 본 떠나는 가을의 모습은 쌀쌀해진 날씨까지 더해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국에서 장기연수를 마치고 헌법재판소에 파견되어 미국 판례를 뒤지고, 논문을 찾아가며 헌법 공부에 흠뻑 빠져 있었던 때가 불현듯 가슴에 요동친다. 짧은 기간이지만 헌법적 지평(地平)을 어렴풋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큰 틀에서 법을 바라보고, 법이 지향하여야 할 궁극(窮極)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이 단지 분쟁해결의 도구이고, 법을 다루는 사람이 법기술자로 전락한 현실에서 법이 국민의 염원(念願)을 실현하는 매개임을 깨닫게 하는 인연은 너무나 다행스런 선연(善緣)이다. 소수가 발을 붙이기에 너무나 척박한 시대에 소수적 시각으로 정의의 끈을 놓치지 않으시려고 애쓰신 재판관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평소 들리셨다는 성당을 찾아나서는 길에서 느끼는 법조인의 사명감이 무겁게, 그리고 경건하게 다가온다.

    마음 되잡고 일을 하다가 서가에 꽂힌 꽤 오래된 책에 눈이 가서 펼쳐보았다. 책갈피에 끼워 둔 고 김홍규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아 그 자리에 얼어붙듯 서 있었다. 1990년대 오랜 기간 선생님께서 위원장으로 계셨던 법무부 위원회에서 집단소송법 제정을 위한 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 ‘집단소송법시안’이 나왔다. 독일과 일본에 유학하셔서 독일 민사소송법과 일본 민사소송법에 정통하신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법시안을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에서 1998년 이맘때쯤 보내신 편지였다. “회의 때마다 일본 측의 시안을 충분히 검토하여 그 장점을 살리고 또 우리 나름대로 일본안과 다른 구체적 내용을 담으려고 하였으나, 언제나 어깨가 좁은 느낌을 씻을 수 없었는데 이번 집단소송법안에 대해서는 일본인 학자나 실무가도 한국의 집단소송법안의 새로운 면에 주목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참으로 다행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언제 북한산 쪽으로 등산오실 기회가 있으시면 하산 길에 김 판사님과 담소할 수 있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법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법대 시절 선생님께서 1975년에 저술하신 민사소송법 책을 읽고 감격하였던 그런 까마득한 후배이자 후학에게 이런 편지를 주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법조인과 학자 어느 하나 반듯하게 하지 못한 것 같아 늘 부끄럽다. 차마 놓치고 싶지 않은 11월 어느 늦가을 법조인과 학자로서의 삶에 오래도록 긴 여운의 감동을 주신 두 분을 회상하면서 가르쳐주시고, 일깨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또 추모한다.

     

    김홍엽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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