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디가드에서 여주인공은 ‘You shall die.’라고 적힌 협박성 쪽지를 받는다. 이 세 단어 속에 너를 죽이겠다는 메시지가 그 어떤 장문의 편지보다 강렬하게 담겨 있는 셈이다. 반대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으로 시작하는 햄릿의 독백이 곧바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국 답을 못 내리겠다’는 식으로 간결하게 마무리되고 말았다면, 지금껏 우리에게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변호사로서 준비서면 등을 작성할 때 ‘분량’과 ‘메시지 전달’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하게 된다. 실은 필자는 분량제한 관련 민사소송규칙 시행 전에도 30장에 이르는 준비서면을 쓰는 일이 드물었다. 그런데 때때로 사실관계 정리나 법리적인 주장 때문이 아니라, ‘의뢰인의 요구 충족’이라는 제3의 요소로 인해 부득이 장문의 서면을 쓰게 되기도 한다. 상대방이 긴 준비서면을 쓰면 이를 확인한 의뢰인은 비슷한 분량의 준비서면을 써주기를 요구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 서로 긴 준비서면으로 계속 공방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반대로 그 준비서면을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판부에 전달될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지나치게 긴 호흡의 준비서면은 메시지 전달 차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종종 30장에 육박하는 준비서면보다 한 두 장짜리 증거설명서가 더 효과적일 때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분량 제한과 관련하여 개정 민사소송규칙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어가다 보니 과연 그 실효성이 있는지가 논의될 수 있다. 사견으로는 이 규칙은 가이드라인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므로 무용하다 보기 어려우며, 그보다는 ‘서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얼마나 고스란히 효과적으로 재판부에 전달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게 바로 적정한 분량에 대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혜민 변호사 (광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