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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중의 사고는 인생의 에피소드

    전희정 변호사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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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해프닝, 인생은 에피소드


    유난히 나에게는 여행 중 사건사고 또는 해프닝이 끊이질 않는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에피소드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주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여행을 꿈꾸는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동계 법정 휴정기를 이용하여 여행을 떠났다.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 파리를 거쳐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방콕에 가기 전, 프랑크푸르트에 들러 공항철도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휴가기간은 짧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 시간은 긴, 특이한 여행일정이었다. 5일의 여행을 떠났지만 땅에 있는 시간은 꽉 채워 3일. 약 25시간을 하늘 위에서 보내게 되는 상황이었다.

    독일 공항에 내려서 다음날 파리 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니 파리에 가서 하루 자고 아침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유럽에서 10시간 체류하고 방콕으로 떠나는 일정.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철도의 편리함에 감탄하면서, 독일소시지와 맥주를 한 입 먹고 파리로 향했다. 독일 국경에서 프랑스국철로 갈아타면서 기차가 연착되어 예상시간보다 늦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기로 소문난 독일열차도 지연이라는 게 되는구나 하면서 파리북역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

    1월의 유럽은 5시만 되어도 밤하늘에 별이 보인다. 거리는 참으로 어둡고 바람은 차가웠다.

    파리 북역, 그리고 동역의 소매치기와 치안에 관한 악명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역 근처에서 헤메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공유차량인 우버 택시를 불렀다.

    분명 프랑스 우버 차량을 불렀지만, 역 근처에서 차량이 빙빙 돌면서 룩셈부르크 발신번호로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아보지만 우버 차량기사는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난감한 상태. 휴대폰 화면에 뜬 차량 기사의 위치를 찾아 역 주차장을 지나 문 밖으로 나가 길가에 섰다.

    여행자로 보여서일까 현지인차림으로 신경썼지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던 걸까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횡단보도앞에 서있던 내 뒤에서 누군가가 액체를 뿌렸다.

    처음에는 코트를 입고 있어서 종아리에만 느낌이 있었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맥도날드 종이컵과 테이크아웃 커피잔들을 보고, 누군가 다 먹고 버린 음료 컵을 잘못 버려서 커피나 음료가 뭍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아리에 뭍은 하얀 액체를 보고, 만져서 냄새를 확인하자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3배 사과식초쯤 되는 강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눈을 찌푸리게 될 정도였다. 만져진 질감으로 미루어보아 묽은 샐러드소스 정도의 점성이었으므로 이건 사람이 마시려고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수라면 당연히 들렸을 미안하다는 말소리, 괜찮냐는 우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내 주위를 지나던 수많은 외국인들이 누구하나 다가오지 않았으나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만이 느껴졌다. 그 슬럼가 같던 거리의 느낌, 어두운 길가의 조명들, 지나가는 차량의 운전자들.. 지금도 그 때의 기분이 종종 생각난다.

    순간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인종혐오 범죄? 아니면 당황하게 해서 짐을 가져가려는 소매치기 수법?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범죄의 타겟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생존본능이 가장 먼저 몸을 움직였다.

    짐을 쥔 손을 더 꽉 움켜잡고 표정의 변화 없이 몸을 돌려 역으로 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서 역 광장을 지나 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에 들어서서 제복을 입은 역무원을 보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조심조심 역사 내에 있는 택시 승강장에 가서 줄을 서고 택시를 타려는데, 택시기사가 타려는 것을 제지하고 휴지 한 상자를 건네며 닦으라고 하기에 옷을 벗어 살펴보니.. 검은 코트 뒷면 한가득 흰 얼룩이 가득하고, 냄새가 코를 찌른다.

    휴지로 대충 닦아 시트에 묻어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을 확인하고 택시에 타서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고 방 키를 받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왔다. 심지어 파리한복판인데 엄청나게 저렴해서 예약한 숙소는 화장실도 없는 열악한 방. 어렵사리 씻고 누웠더니 따듯한 집 놔두고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회의가 밀려왔다. 다음날 아침, 파리를 떠나면서도 서늘한 겨울 아침의 공기가 무척 추웠고 다시 파리에 올일은 없을 것이라고 되뇌였다.

    그렇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친한 지인들에게 사건을 이야기하며 유럽에서 고전적인 날치기 수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 때의 충격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여기나 거기나 다 사람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그 때의 충격을 여행 중 에피소드처럼 생각하고 말하게 되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란다.

    그 때 내가 그냥 놀래서 짐에서 손을 풀고 주머니에서 닦을 것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거나, 짐을 뒤적거리면서 주의를 흐트렸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밤거리에서 곤경에 처한 낮선 이방인을 쳐다보던 수많은 시선들. 그 시선들.

    이 경험을 토대로 그 이후의 여행에서부터는 이동 후 도착시간은 해가 떠 있는 시간대일 것, 낮선 도시에서 첫 운송수단은 우버를 믿지 말고 정상택시를 탈 것, 숙소는 시내 중심가 번화가 안에 있을 것을 정하게 되었다.

    내게 일어난 여행지에서의 사건·사고는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비어있는 호텔 방 안으로 누군가가 침입하여 여권과 지갑 일체가 없어지는 도난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을 마주칠 때마다 소위 멘탈붕괴라는 상황까지 겪으면서도 계속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와 법정과 의뢰인과 상담인들을 만나고 서면과의 씨름을 하는 동안, 어느새 그 때 느꼈던 다이나믹한 -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 감정들을 다시금 일상에서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무실에서 서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의뢰인의 사건과 법정 그리고 사무실을 오가는 생활에서 문득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여행 중 사건 그리고 사고들은 앞으로도 언제나 발생할 수 있지만 이제 웬만한 사건들은 ‘그럴수도 있지’‘이정도는 예상범위 안이군’ 이라며 스스로 다독이기까지 한다. 심지어는 종종 술자리의 즐거운 안주로 꺼내어져 지인들과 나누어 먹기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요즘에는 심지어 해프닝 없이 잘 마무리 된 여행은 돌아오는 길에 왠지 아쉽기까지 하다.

    극적인 일 하나가 있는 여행이 더 잘 기억나고, 나중에도 추억을 꺼내들게 되는 것을 보면, 여행길에서 겪은 해프닝은 결국 인생의 에피소드 한조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전희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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