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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옥동서첩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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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동 이서(玉洞 李溆: 1662-1723)는 조선 후기 우리 글씨가 한번 변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분이다. 중국이론에 맞서 주역(周易)의 음양원리를 중심으로 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신, 즉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미적으로 들어난 형태가 바로 글씨라는 독창적인 서예이론인 『필결(筆訣)』을 저술한 걸출한 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옥동은 당신의 이론에 맞게 글씨를 썼지만 어려서는 가정에서 아버지인 매산 이하진(梅山 李夏鎭: 1628-1682)에게서 기본적인 학문과 글씨를 익혔다. 이 여주 이씨(驪州 李氏) 옥동가의 글씨는 고산 황기로(孤山 黃耆老: 1512-1575)의 영향을 받은 청선 이지정(聽蟬 李志定: 1588-?)으로 전해지는 글씨의 명가이고 청선의 조카가 바로 매산이다. 특히 고산의 초서는 사위인 옥산 이우(玉山 李瑀: 1542-1609)에게 전해 졌지만 당대에 그 맥이 끊어지고 다시 청선, 매산, 옥동으로 전해져 우리 초서의 맥이 살아남았다.

    옥동 집안의 글씨는 특히 초서에 뛰어나 백하 윤순(白下 尹淳: 1680-1741)과 그의 제자인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 또 그의 제자 송하 조윤형(松下 曹允亨: 1725-1799)으로 이어지는 원교파의 초서와 쌍벽을 이루면서 조선 후기에 글씨의 품격을 한 층 높였다.

    옥동파와 원교파의 초서는 확연히 다르지만 해서는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는 옥동의 가장 친한 친구인 공재 윤두서(恭齋 尹斗緖: 1668-1715)가 옥동의 글씨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또 공재의 이종 조카가 바로 백하이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글씨인 해서는 양파가 비슷한 지도 모른다.

    이 서첩은 1713년에 쓴 글씨로 그의 해서·행서·초서 작품이 크고 작게 골고루 섞여 있어 그의 글씨가 어떠한 가를 이 한 첩으로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다. 그의 행초 글씨의 특징인 굵고 가는 획이 끊어질 듯 이어지며 거둬들이는 수필(收筆)이 모가 나지 않으며 삐뚤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적당히 어울러 지는 한마디로 불안정한 듯 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가 돋보이는 그의 장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내용은 성리학의 골자인 ‘구방심재명(求放心齋銘), 정자사잠(程子四箴; 視箴, 聽箴, 言箴, 動箴), 주자사서주석(朱子四書註釋)의 일부, 끝에는 동생인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이 1733년에 쓴 발문(跋文)이 있다. 옥동의 관지(款識)가 있는 작품은 매우 귀한데 이 첩에는 각 체를 쓸 때마다 뒤에 관지를 썼으며 동생이면서도 제자나 진배없는 성호 이익의 발문은 형님의 글씨에 대한 진정한 논평(書評)이라 이 서첩을 한층 더 빛낸다.

    “… 옥동선생의 글씨는 특이하다. 교룡(蛟龍)이 바다를 희롱하는 듯 한 기세가 있으나 글씨가 십분 조밀하질 않아 당시에는 얻기가 쉬웠다. 그러므로 그 아름다운 점은 가볍게 여기고 그 단점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부각시켰다. 지금 선생이 떠나신 뒤에는 희귀한 물건이 되자 그 단점은 가볍게, 그 아름다운 점은 더욱 부각시켜 조금씩 흠은 덮어 두고 아름다움은 부각시켜 단점이 변하여 장점이 되어, 서예가들의 보물이 되었다…”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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