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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불완전성

    임형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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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같이 일하는 선배 변호사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에 재미있는 실험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요지는 이렇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공중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의 인지 심리 과학자 울릭 나이서 교수는 다음 날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고 사고 당일 누구와 어디에서 폭발 소식을 들었는지를 적게 했다. 그리고 이를 보관해 두었다가 2년 반 후 학생들을 다시 불러서 챌린저호 사고 당일 누구와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 보았다. 그 결과 학생들의 25%가 자신이 작성했던 설문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였고 나머지 상당수도 세세한 부분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설문지에 친구와 술집에 있었다고 썼는데 2년 반 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라디오로 소식을 들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 책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 책 때문에 기억이 난다”와 같이

    근거를 제시하며 잘못된 기억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인간의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중립적 사실을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게 진술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필자는 최근 전자증거 분석업무를 진행하면서 이러한 기억의 조작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가 신빙성 있게 설명했던 사실관계가 그 사람이 사용하던 전자기기를 포렌식한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변호사의 덕목’으로 투지, 순발력, 균형감각, 두꺼운 얼굴(!) 등이 거론되는데 필자는 여기에 두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먼저 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여야 하는 법조인들은 언제나 ‘기억의 불완전성’에 유의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러한 의심이 의뢰인에 대한 개인적인 불신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기억의 불완전성 때문에 의뢰인이 입게 될 피해를 막기 위한 것임을 의뢰인이 느끼게 해 주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이다.


    인간의 기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된 요즘,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검증하는 노력뿐 아니라 이러한 검증이 결국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의뢰인이 느낄 수 있도록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임형주 변호사 (법무법인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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