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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양형이유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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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H.G.웰스). 가정이야말로 "찬밥처럼 방에 담긴 아이가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장에 나간 엄마를 걱정하며 애타게 기다리는 곳"(기형도 '엄마생각')이고, "십구문반(十九文半) 해진 신발을 신고 가족을 위해 온갖 험한 길을 마다않는 아버지가 사는 곳"(박목월 '가정')이다. 가난한 아버지는 마음대로 늙지도 못한다. 또 다시 십구문반 신을 신고 먼 길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늙지도 못하며 악착같이 지키려 한 것이 바로, 가정이다.

    해가 지면, 세상살이에 시달린 모든 이들은 절인 배춧잎처럼 녹초가 되어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가고, 그 곳에서 위로받고 잠이 든다. 실증적 연구결과를 동원하여 볼 필요도 없이, 가정 내 폭력은 가족 구성원들을 더 이상 의지할 곳 없는 극한의 상황으로 내몬다는 점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감히,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장구한 세월 겪어 왔을 고통의 무게를 전부 공감했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록에 비치는 고통의 한 자락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재판을 통하여 악몽의 편린만을 마주했을 뿐임에도 그 상흔에 놀랄 지경이라면, 도대체 그 고통의 심연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 않는다. 훈육의 목적에서, 혹은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술기운을 빌어 저지른 악행의 결과는 이토록 참혹하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불개입 풍조는 극복되어야 한다.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고통만 안겨 주고 있다면, 그 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2015년 9월 10일 선고한 사건의 양형이유 일부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글을 구상하다 덧붙일 말도 뺄 말도 없어 그대로 옮겼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의 양형이유는 언제나 비감(悲感)하다.

     

    박주영 부장판사 (대전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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