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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팬지, 개미 그리고 사피엔스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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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은 침팬지보다 지능이 높고 도구제작 능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다. 수만 년 전 사피엔스는 포식동물을 피해 먹을 것을 찾아다니다가 운이 없으면 그들에게 잡혀서 한 끼 식사거리가 되는 존재였다. 개별적인 지능이나 도구제작 능력 면에서 사피엔스를 앞서는 종도 다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소통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사피엔스 개개인이 영리한 침팬지나 늑대와 싸워서 이길 수는 없지만, 수많은 사피엔스가 서로 소통하면서 유연하게 협력해 다른 동물 무리를 물리치고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피엔스의 대규모 협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쯤 동물원에서 침팬지 방문객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피엔스보다 더욱 일찍부터 조직적으로 협력을 해온 개미나 벌은 왜 인류를 지배하지 못했을까? 개미나 벌은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협력하지만 서로 소통하고 비판하면서 사회제도를 새롭게 고치지 못한다. 새로운 환경의 위협이나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여도 여왕벌을 단두대에서 처형하고 공화국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유발하라리, 호모데우스).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도록 만든 능력은 개인의 능력과 지능만도 아니고, 개미와 같은 정교한 조직력도 아니라 소통에 기반한 유연한 협력이다. 이는 인류와 동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역사 전반에서 인간집단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집단이 협력하지 못하면 아무리 다수라도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소수로 구성된 사회집단에게 패해 지배당한다. 한편 효율적으로 협력하더라도 상하 소통이 부족해 협력이 유연하지 않고 경직된 경우에는 변화를 수용하면서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도태되거나 극단화된 위험한 집단으로 변질된다. 우리는 역사에서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소수 조직에 멸망한 잉카제국이나, 반대로 나치즘, 군국주의 등과 같이 조직력은 개미처럼 정교하였으나, 경직되고 소통능력을 상실해 결국 유연한 협력을 이룬 사회집단에 패하고 만 사례를 다수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법조계가 개혁과 내부고발 등의 이슈로 시끄럽다. 이러한 상황은 변화를 필요로 하는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로 사회집단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위기로 인해 법조계가 몰락하지 않고 이를 기회삼아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려면 유연한 협력을 통해 생존하고 번영한 사피엔스의 수만 년에 걸친 존재 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침팬지처럼 개개인의 지능과 능력에만 의존하지 말고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되, 개미처럼 경직되어 변화하지 않는 협력이 아니라, 유연하고 시대에 맞게 변화해 나가는 협력을 해야 한다. 유연한 협력을 위해서는 주류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의견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고, 내부고발자를 따돌리지 않은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사피엔스가 낡은 협력방식을 새로운 협력방식으로 대체하도록 촉진해 집단의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반대자들이나 내부고발자들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인석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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