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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한 사실을 알려 훼손되는 명예

    이인석 고법판사 (대전고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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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얻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방송을 보고 국민들이 저를 보호해 주기를 바래요. 저를 보호해주면 다른 피해자도 용기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거예요.” 왜 그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려 도움 받지 못하고 방송에 출연해 국민이 보호해 주기를 원했을까?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법이 진실한 사실을 알려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이다. 현행 형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사실을 공공연히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성폭행 피해자가 자신이 가해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면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범죄사실로 처벌받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 내용이 진실이어도 그렇다. 이때 처벌을 면하려면 피해자가 알린 사실이 진실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에 더하여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성폭행 사실을 주위에 알려 보호받으려 해도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일단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게 되며, 오로지 공익에 관한 때에만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피해 사실을 언론에 나와 알리지 않으면 공익에 관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해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려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이 보호하려는 것은 어떤 명예일까? 성폭행 가해자가 자신의 성폭행 사실을 감추어 부정적인 평가를 면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평판과 존경심 등 명예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명예를 보호해 가해자가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고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피해자가 진실을 말하면 처벌받을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법의 정신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듯싶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진실을 알리는 것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그 내용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에 사생활 침해를 문제 삼는 법 형식을 택하고 있다. 진실을 알렸는데도 오로지 공익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받는다면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만들어진다. 아울러 진실하지 않은 사실에 기초한 잘못된 명예를 법이 보호해 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미 유엔 자유권규약 위원회(UN Human Rights Committee)는 2015년 11월 대한민국 정부에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등 권고를 담은 최종 권고문을 발표했다. 진실한 사실을 알려 침해되는 사생활이 걱정된다면 그것은 대다수의 선진국과 같이 사생활 침해 문제로 다루면 될 일이다. 피해자들이 진실을 밝히고도 두려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인석 고법판사 (대전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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