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서초포럼

    Up Close and Personal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43380.jpg

    소규모 유엔 재판소에서 재판관으로 근무하면서 당초 예상했던 재판 업무 못지 않게 유엔 내의 부서 관리자로서 담당해야 할 업무 또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국적과 성장배경을 지닌 직원들과 근무하며 겪은 에피소드 두 가지를 소개한다.

    #1. 인턴은 유엔 재판소에서 일하기 위한 첫걸음이어서, 무보수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그동안 지원자가 거의 없었던 국가에서 인턴을 뽑는 것이 유엔이 지향하는 가치에 더 부합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기준에 맞추어 선발한 남성 인턴은 정말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한편 그 전부터 근무하던 다른 여성 인턴은 자신의 파트너가 재판소를 방문하였다며 소개하고 싶다고 하였다. 인사를 나누고 보니 그 파트너는 성별을 쉽게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 후 동성애가 불법인 나라에서 자란 남성 인턴이 성정체성에 대한 ‘학문적’ 토론을 여성 인턴이 ‘원하지 않음에도’ 지속적으로 제의하였고, 여성 인턴은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았다. 신고를 접하고선 당황하였지만, 유엔 내 성희롱 등 대응에 관한 명확한 지침이 있었고 재판소와 유엔 지역사무소 담당자들로부터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의 의사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직접 사과, 교육 이수 및 경고 등을 통하여 비교적 신속하고 원만하게 처리함으로써 두 인턴은 무사히 근무를 마칠 수 있었다.

    #2. 오래된 사건 기록을 살피다 보니 태국과의 국경지대 부근에 있는 사건 현장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검증조서는 거의 10년 전에 작성된 것이었는데다가 기록만으로는 범죄의 규모 등이 쉽게 짐작되지 않았고, 다시 증거조사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재판부 전체가 주말을 이용하여 2박3일 동안 함께 바람도 쐴 겸 현장을 비공식적으로 방문해 보기로 뜻을 모았다. 정한 날짜가 다 되어 가는데 아무도 준비상황에 대한 보고를 안 하길래 물어보니, 이미 다른 직원들은 모두 인근 도시까지의 항공편과 숙소를 각자 따로 예약한 상태였다. 여행의 목적이 재판부의 '단합 행사(team building activity)'임에도 교통편과 숙박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전제였다. 결국 모두가 다른 곳에서 숙박과 식사를 하게 되었고 현지에서 구한 차량이 각각의 숙소를 돌면서 픽업한 후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고 복귀하였다. 이로 인해 초래된 엄청난 ‘비효율’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이후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업무와 사생활(privacy)은 양립불가능한(trade-off)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의도와 의미가 분명한 내용의 대화가 주로 이루어지는 '저맥락문화(low context culture)'인데다가 각자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 없이도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가능한 환경이다. 최근 유엔 역시 잇따른 성추문 등 각종 조직 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므로, 위와 같은 개인적 경험은 제한적이거나 특수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본인이 먼저 드러내길 원하지 않는 한 성별, 나이, 외모를 비롯한 개인적인 측면을 전혀 관심의 대상으로 삼지 않더라도 화기애애하고 ‘가족 같은’ 직장 문화를 만드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업무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도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