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서초포럼

    법비(法匪)에게 넘겨버린 법치(法治)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43912.jpg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 박근혜는 1심 재판에서 법정출석을 거부하고 선고공판도 불출석했다. 일반 피고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배짱이다. 전직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사법부 무시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자신이 임명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서 사법부를 우습게 본 것이다. 그런데 그럴만한 이유가 숨어 있었다.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고개를 숙였으니 그 휘하의 판사는 눈에 뵈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사법부 길들이기와 무시하기인데 알아서 기고 있으니 만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권력으로 굴복시켰는데, 압력을 가하지 않아도 자해행위를 스스로 하고 있으니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거부해도 되는 재판으로 보였던 것이다. 신구 법비(法匪)가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에 잘 보이려 눈치보는 그들이 자기들과 한 패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꾸며지고 있었다. 국정운영에 협조하여 원하는 상고법원 설치를 얻어내려는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이고 자존심이고 다 내팽개치고 어떻게든 청와대와 교감하려 했으니 권력의 대등한 한 축인 사법부(司法府)가 아니라 행정부 수반의 휘하에 있는 일개 사법부처(司法部處)였던 것이다. 실제 재판거래가 성사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로, 재판거래 의혹에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의뢰에 부정적인 내부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법부의 핵심이 판결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니 충격적인 일이다. 정보기관이 했음직한 판사 뒷조사도 했다. 사법부를 장악해 보려는 청와대와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청법유착(靑法癒着), 사법부가 청와대와 유착해서 원하는 바를 얻으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은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법농단이자 민주주의 유린 불법 행위임에 틀림없다.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라는 민주법치국가의 핵심가치는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재판거래’,‘사법농단’을 바라보는 판사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비교적 젊은 소장 판사들은 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혀 훼손된 사법부의 독립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고위직에 오른 판사들은 재판거래는 없었으니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엘리트의식과 보신주의에 젖은 고위층 법관과 외부적인 충격을 가해서라도 바로잡을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소장 판사들의 대립이다. 가뜩이나 보수적인 사법부의 판사들이 나이가 들고 연차가 높으면 높을수록 보수화, 정확히는 보신과 조직 지키기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흠은 보이지도 않고 또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 법원에게 자정을 기대할 수도 없고 셀프개혁을 맡길 수도 없다. 국민은 혹시나 하면서 세 번이나 기다렸지만 자체 조사는 한계만 드러내고 말았다. 국민이 원하는 사태 해결은 법원 내부가 아니라 국정조사든, 이미 고발된 사건의 검찰수사든, 특검수사든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이어야 한다. 수사와 재판에 성역은 없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나 법정에 세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