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해외법조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의견 충돌에 관한 최신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김정균 해외통신원 (미국 버지니아, DC, 뉴욕 주 변호사)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43918.jpg

    형사 사건은 흔히 피고인과 검사 사이의 대립 관계로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무 현장에서는 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대립 관계가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피고인은 헌법상에 명시된 형사적 기본권의 행사 여부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소송절차 내의 전략적 판단에 관해서는 변호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종 기본권 행사와 전략적 판단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최근 2018년 5월 14일에 발표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이와 관련된 지침을 제시해 준다. (McCoy v. Louisiana, 584 U.S. ___ (2018))

    피고인 로버트 매코이 (Robert McCoy, 이하 ‘매코이’)는 별거 중인 아내의 부모 및 자녀 등 3명을 총으로 살해하여 1급 살인(First Degree Murder)으로 구속·기소되었다. 매코이가 기소된 루이지애나 주는 여전히 사형제도가 존속했고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검사 측의 증거가 명백해 배심원의 유죄 평결이 확실시된다고 판단한 매코이의 변호인은 배심원 앞에서 무죄를 주장하기보다는 살해 사실을 인정하고 심신 미약을 근거로 무기 징역을 받는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매코이는 이에 반대하며, 자신의 알리바이(Alibi, 현장부재 증명)를 근거로 변호인에게 무죄를 주장하도록 강요했다. 매코이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변호인은 이를 무시하고 재판 과정에서 매코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범죄 행위(actus reus)를 인정하는 한편, 심신 미약을 근거로 살해 의도(mens rea)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 끝에 배심원은 1급 살인혐의 3건 모두에 대한 유죄 평결을 내렸고 매코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항소와 상고 및 재항고를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연방 대법원은 이에 대해 6대 3으로 매코이의 손을 들어줬다. 다수의견 판결문 작성을 담당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Ruth Bader Ginsburg, 이하 ‘긴즈버그’)은 판결문에서,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은 변호의 목적(the objective of his defense)을 선택할 권리와 동시에, (비록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 사형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변호인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에게 피고인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도록 강요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라고 밝혔다. 


    143918.jpg
    매코이(왼쪽)와 변호인(오른쪽). 美 NBC news 화면 캡쳐

     

     

    얼핏 보면 어떻게 이런 사안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당연하고 명백한 사안 같지만 반대의견에 드러난 사실관계와 논리 전개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이 문제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의견을 작성한 사무엘 A. 알리토(Samuel A. Alito, 이하 ‘알리토’) 대법관은 변호인이 범죄구성요건(사실관계)을 인정하는 것과 혐의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다수의 의견은 이를 혼동하여 헌법상의 권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알리토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예시를 제공했다.

    (변론 1) “변호인: 1급 살인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고 또한 그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두 가지의 구성요건의 충족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여러분(배심원)들에게 두 가지 구성요건 중 하나인 살해 의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변론 2) “변호인: 1급 살인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고 또한 그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두 가지의 구성요건의 충족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배심원)에게 제 의뢰인이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만, 두 가지 구성요건 중 하나인 살해 의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알리토 대법관의 주장은 “다수 의견(긴즈버그 대법관)의 논지에 따르면 첫 번째 변론은 헌법상 일치하고, 두 번째(매코이 사건의 변호인이 주장한 내용) 변론은 헌법상 위반이라는 것인데, 이 두 변론 내용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배심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1급 살인죄의 구성 요건이 두 가지라는 것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변호인이 살해 행위를 다투지 않고 (혹은 언급하지 않고) 범죄 의도만을 다투는 것은 살해 행위라는 구성요건은 이미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알리토 대법관은 이미 판례법상 변호인은 의뢰인의 동의 없이도 소송의 전략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형사 사건에서 기본적인 방어 전략, 압수·수색을 통해 획득한 증거 배제 요청(motion to suppress), 모두진술(opening statement) 여부와 그 내용, 법원의 증거 채택에 대한 이의제기(objection to the admission of evidence), 증인의 반대신문(cross-examination), 증거 제시와 증인 선택 등은 모두 변호인이 의뢰인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들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소수의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다수의견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살해 사건에서 살인 행위를 시인하는 것은 (살해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사실상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법 논리를 떠나서 윤리규정상으로도 변호인과 피고인이 이런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면 변호인은 이를 수임 초기에 이를 파악하고 자진 사임을 해야 했다. 매코이 사건의 경우 변호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의뢰인과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 하루 전이 되어서야 사임 신청을 했고, 판사는 재판 일정이 지나치게 늦어질 것을 염려해 변호인의 사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재판이 그대로 진행된 것이다.

    사실 매코이 판결은 실무 현장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수정헌법 5조와 6조에 명시된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권리는 예전부터 확고하게 지켜져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사건이 변호인 들에게 각종 전략적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의뢰인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김정균 해외통신원 (미국 버지니아, DC, 뉴욕 주 변호사)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