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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의 건축 및 건설 산업 대금지급 보장법과 시사점

    김정택 변호사 (법무법인 양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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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에서 ‘건설’은 단순히 빌딩을 짓는 것을 넘어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국가로 발전하는 근간이 되었다. 싱가포르는 상징적인 가치의 건축물들로 수많은 관광객을 이끌고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발 정책으로 우수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현재도 세계적 수준의 스마트시티와 글로벌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다. 


    필자는 최근 싱가포르국립대학교에서 건설법(Construction Law) 과목을 수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 ‘건축 및 건설 산업 대금지급 보장법(Building and Construction Industry Security of Payment Act)’(이하 ‘SOP Act’)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워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2. SOP Act의 개요 및 주요 특징
    SOP Act는 2004년도에 제정되어 2005년 4월 1일부터 전면 시행되었다. 이 법은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주(New South Wales)의 ‘건축 및 건설 산업 대금지급 보장법(Building and Construction Industry Security of Payment Act 1999)’을 모델로 하고 있다. 수급인과 하수급인에 대한 대금지급 보장(security of payment) 제도는 영국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싱가포르를 비롯한 다수의 영연방국가에서 입법되었는데, 영국모델과 호주모델을 양대 축으로 하여 개별 국가 또는 주(州)의 상황에 맞춰 발전되어 오고 있다. SOP Act의 주된 목적은, 건설산업에서 기성금 지급을 촉진하고 나아가 수급인과 하수급인의 현금흐름(cash flow)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법은 대금지급 청구 및 지급에 관한 프레임과 신속하고 경제적인 분쟁해결을 위한 메커니즘을 정하고 있다.

    SOP Act는 싱가포르 내에서 행해지는 건설 프로젝트의 건설계약(construction contract)과 공급계약(supply contract)에서 해당 계약이 준거법을 싱가포르 법으로 정하고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강행적으로 적용되며, 계약에서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하거나 배제하는 조항은 무효로 된다. 따라서 이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계약의 자유는 상당 부분 제한될 수 있다.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사적 자치에 맡겨져 있는 부분이 영미법계 국가에서 실정법으로 권리의무와 절차가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측면이 있다.

    첫째, SOP Act의 특징은 대금지급 청구(payment claim)부터 재결(adjudication)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일정(timeline)이 상당히 타이트하고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며 엄격하게 집행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특히 건설계약에서 시공자의 기성금 청구(payment claim in respect of a progress payment)에 대해 발주자(이 법에서는 대금지급을 구하는 자와 그 상대방을 각각 ‘청구인’과 ‘피청구인’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편의상 각각 ‘발주자’와 ‘시공자’라고 칭하며, 이는 ‘수급인’과 ‘하수급인’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대금지급 답변(payment response)을 해야 하는데 그 시한은 (1)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가 있으면 그 날짜 또는 대금지급 청구서가 송달된 이후 21일이 되는 날 중 먼저 도래하는 날까지이고, (2)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가 없으면 대금지급 청구서가 송달된 이후 7일까지이다. 만일 상호 이견이 있을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7일간의 분쟁해결기간이 부여된다(다만 추가기간은 건설계약에만 적용되며 공급계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 기간 동안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시공자는 7일 이내에 발주자에게 재결신청을 하겠다는 서면 통지를 하고 재결신청서(adjudication application)를 공인된 수권기구인 싱가포르조정센터(Singapore Mediation Centre)에 제출해야 한다. 발주자는 재결신청서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재결 답변서(adjudication response)를 제출해야 한다.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실기하거나 각하되는 등 상당한 불이익을 입을 수 있으므로 기한을 준수하는 것이 매우 강조되고 있다.

    둘째, 발주자가 대금지급 답변서의 제출 기한(이견 발생 시 주어지는 7일간의 추가적인 분쟁해결기간 포함)까지 그 답변서에 포함시키지 않은 항변 등 사유는 향후 재결 절차와 그 불복 절차에서 새롭게 주장하는 것이 제한되어 매우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재결인(adjudicator)은 발주자가 당초 대금지급 답변서에서 주장하지 않았던 교차청구(cross-claim), 반대청구(counterclaim), 상계(set-off) 등의 사유를 재결 답변서에 새로이 추가하였더라도 이를 재결에서 고려하는 것이 금지된다. 발주자의 상계 항변이 해당 기성금 청구의 기초가 된 계약이 아닌 다른 계약에 근거한 경우 재결인은 그 항변을 고려할 수 없다는 법원 판례도 있다. 따라서 발주자가 기성금 지급을 유보하거나 시공자의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면 관련 이슈에 관해서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입장을 취하여야 한다.

    셋째, SOP Act는 분쟁해결방법으로 ‘재결(Adjudication)’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는 대금지급에 관한 분쟁을 저비용으로 신속하게 해결하여 건설산업에서 현금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제도이다.
    싱가포르조정센터는 재결신청서를 접수 받은 후 7일 이내에 건설분야 전문가인 재결인을 지정하고, 재결 답변서가 제출된 이후 7일 이내에 즉시 재결절차를 개시하며, 쌍방의 동의 하에 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한 그로부터 14일 이내에 재결을 내린다. 재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집행될 수 있고, (1) 재결에 대한 집행허가가 거부되거나 (2) 분쟁이 최종적으로 법원이나 중재판정부에서 결정되거나 (3)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기 이전까지 구속력이 있다(임시적 확정력, temporary finality). 실제로 사례들을 살펴보면 재결은 대체적으로 시공자에 대한 대금지급에 우호적인 경향을 보인다. 또한 재결의 패소 당사자는 법원에 재결의 취소를 구할 수 있지만, 법원은 SOP Act의 취지가 신속한 대금지급과 분쟁해결을 통해 건설업체의 현금흐름을 용이하게 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대하고 명백한 위법 사유가 없는 한 재결의 취소를 허용하지 않는 추세이다.

    넷째, SOP Act는 ‘pay when paid’ 조항이 효력이 없음을 명시하였다. 일반적으로는 ‘pay if paid’ 조항과 ‘pay when paid’ 조항을 구별하여 전자는 조건부 지급조항(수급인이 발주자로부터 대금을 지급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수급인에게 대금지급의무가 있는 것), 후자를 지급기한 조항(수급인이 발주자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데 필요한 합리적인 시간 동안 수급인의 하수급인에 대한 대금지급의무를 유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SOP Act에서 ‘pay when paid’ 조항은 위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의 자유 영역에 있는 것으로서 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의 효력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전제에서 당자사간의 의도를 해석하여 해당 조항의 정확한 의미를 판단하고 있는데, SOP Act는 이러한 조항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하수급업체의 대금 회수가 원활히 되도록 하고 있다.

    3. 결론 및 시사점
    이와 같이 SOP Act는 건설분야에서 현금흐름 강화와 신속한 분쟁해결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규율을 하는 입법례이다. 물론 건설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보다 복잡다기한 문제들까지 이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법의 취지나 지향점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쟁이 발생하면 중재 등 다른 분쟁해결기관보다 법원을 통한 소송에 의하고 있고, 높은 상소율과 맞물려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는 수년이 걸리는 것이 비일비재하며, 그로 인해 건설업체는 오랜 기간 공사대금이 회수되지 않아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소제기를 결정하기까지 이미 많은 시간이 경과하기도 하는데, 미해결상태가 장기간 지속될수록 다른 문제들이 결합되어 분쟁이 더욱 복잡해지거나 확대되고 입증의 어려움도 커진다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건설사건의 소송절차 국면에서는 조기에 쟁점을 정리하고 집중심리제를 적용할 필요가 크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위에서 소개한 SOP Act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의 입법례들을 참고하여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법규정과 매뉴얼을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김정택 변호사 (법무법인 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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