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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조프리즘

    저울의 기울기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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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임지는 훈훈했다. 선배 법조인들의 방은 나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처음 법정에 가니, 상대방 대리인은 “왼쪽에 앉으세요. 원고가 왼쪽, 피고가 오른쪽예요”라고 알려줬다. 원고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요구하는 사람. 주로 가난한 개인이고 사업자라도 영세하다. 피고는 요구를 받는 사람. 부자나 기업이 많다. 내 지정석은 왼쪽이다. 나날이 배움이 커지고,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피고는 훌륭한 선배변호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원고는 어쩌다가 상대방 대리인의 지도를 받는 초짜에게 인생을 의지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배우니 시간은 흘러갔다.


    법정경험이 3년을 지나고 자신감이 붙을 무렵, 나는 한국 법조의 심장부인 서초동 법원을 주로 출입하게 되었다. 이 곳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내 자리는 여전히 왼쪽이다. 하지만 오른편에 앉은 사람은 따뜻한 동네선배가 아니다. 피고대리인은 그 자체로 강대한 기업이었고, 법정에는 실력이 뛰어나고 세련된 변호사 여러 명이 함께 나왔다. 1:多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여전히 부족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잔뜩 청구해놓고서 입증하지 못해 심하게 깨졌던 그 날, 사무실에 돌아오니 우울했다. 진실은 실체로서 존재했기에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바 단지 판사님만 모르실 뿐이고 더구나 잘못한 건 피고인데 왜 입증은 원고의 책임이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싶어 거울을 보는데 왼쪽 가슴의 변호사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울이 양쪽으로 똑같이 균형을 잡고 있는 안정된 모양이다. 우스워서 눈물이 났다. 내 비록 오늘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모습으로 왼편에 앉았지만, 언젠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오른편이 번쩍 들리게 하리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면서 고객층에도 변화가 생겼다. 목공이었던 고객은 건설업체를 차렸고, 아파트형공장을 갖고 있는 사장님이 찾아왔다. 어느 날 법정에서 슬그머니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긴 나를 발견했다. 맨날 운전석에서 야단맞다가, 조수석에 앉아 잔소리하는 기분이랄까. 피고석에 앉아 한참 후배로 보이는 원고대리인을 시원하게 누르고 돌아와서 거울을 보는데 배지가 거슬린다. 변호사배지에 왜 칼이 아닌 저울이 있는지 의문이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배지 디자인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슬쩍 건의해봐야겠다.


    박종명 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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