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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눈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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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들은 과거에 빛난 별들이다. 지구와 1광년 떨어진 별은 1년 전의 모습이다. 별빛이 발산하여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현재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과거다. 


    마찬가지로 재판정의 사건도 과거의 사건이 오늘의 재판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있다. 오늘의 재판정에서 재현되는 사건은 현재에서 과거로 소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거의 사실이 오늘의 사건으로 재현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재판의 현실은 후자의 입장에 더욱 기울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밤하늘의 별빛을 잘 보기 위해서는 땅이 어두울수록 더욱 좋다. 어두운 지면에서 밤하늘의 별이 더 잘 보인다. 그래서 가능하면 밤중 주변이 어두운 곳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좋다. 야경이 빛나는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낫고, 산속이 점점 깊어져 드물수록 별빛은 더욱 빛나게 된다.

    재판도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재판정에서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 직접 그 현장을 체험할 수 없다. 다만 오늘의 재판정에서는 과거의 진술, 과거를 담은 동영상이 재현될 뿐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진실에 가까운 것을 발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밤하늘의 별을 잘 보기 위해 어두운 곳에 가까이 가야하듯 가능하면 나의 눈을 어둡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고, 다만 양손에 저울과 칼이 들려져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은 정의를 심판하는데 독이 된다. 법의 역사를 연구한 미하엘 슈톨라이스는 ‘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눈’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추적했다(법의 눈, 미하엘 슈톨라이스). ‘법의 눈’이란 통치자 한 명에 의한 지배대신에 법에 의한 평등의 지배를 뜻한다.

    플라톤은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을 대조하여 전자가 모든 감각 중 가장 예민하지만 그것이 지혜를 통찰하는데 기여하지 못하지만, 후자는 영적이고 지적인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모든 진실은 마음의 눈을 통해서 유일하게 인식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상을 이은 그리스인 철학자들은 정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육체의 눈을 어둡게 하고 마음의 눈을 뜨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

    어느 대법관의 퇴임사가 ‘법의 눈’을 뜨게 하는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이해관계에 얽힌 주위로부터 초연하며 보편성을 띤 사색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고독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만, 법관은 그 고독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고독은 마치 어두움과 같아서, 화려한 조명에만 익숙해져 있던 사람은 어두움을 멀리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그 어두움 속에 들어가 거기에 익숙해지고 나면 마침내 어두움이라는 달갑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평소에는 미쳐 볼 수 없었던 은밀한 사물의 존재까지도 알아보는 능력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퇴임사는 비단 법관들에게만 향하는 조언이 아닌 법조인 모두에게 울려 퍼지는 참회를 부르는 종소리로 들린다. 퇴임사의 내용은 진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서 깊은 고독의 세계로 침전해 나갈 것을 조언하고 있다.

    각종 비리와 의혹들이 초래한 깊은 불신으로 법조계는 암흑기에 있다. 그래서인지 십수년 전 법원강당에서 청백리 조무제 전 대법관이 한 퇴임사가 오늘도 밤하늘의 별이 되어 변함없이 빛나고 있다. 그 별빛이 시력이 약해져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는 한국법조계의 ‘법의 눈’을 회복시켜줄 안약이 되어줄 듯하다.


    박상흠 변호사 (부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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