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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요.”

    이충윤 변호사 (법무법인 주원·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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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요. 옳지 않잖아요."

    10년 전 이맘 때,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었다. 강의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셔틀 정류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구비구비 길게 줄을 서 있었고, 일부 학생들은 셔틀 줄의 중간에 눈치를 봐서 끼어드는 경우도 잦았다. 소위 말하는 "새치기"였다.


    당시 물리학과 4학년이었던 필자도 전공 시험에 늦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필자는 때마침 셔틀 줄에서 가까운 과 후배를 발견했고, 반갑게 웃으며 거의 반사적으로 끼어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더라도 누구든 충분히 끼어들 만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필자에게 말했다.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요. 옳지 않잖아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수학과 물리학을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배로서 후배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주며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에 후배들을 만만하게 여기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과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 기본적인 옳고 그름조차 판단하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에 관대하였고, 별 것 아니라고 합리화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있었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후배를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었던 필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하고 뒤로 가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fiat justitia, et pereat mundus).”

    작금의 사법농단 의혹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다양한 단체에서 시국선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법조계 내부에서도 이미 지난 6월 무려 2015명의 전국 변호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규탄하는 취지의 시국선언을 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법원은 박병대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는데, 이는 법원이 자체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것으로 평가되는 동시에 많은 국민에게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천명한다. 이는 사법권 독립의 헌법상 근거로, 헌법 제27조 제1항에서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정의롭게 구현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법권의 독립이란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법권을 입법권과 행정권으로부터 분리·독립시키고, 법관이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를 받음 없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시 ① 법원의 자율을 위한 ‘법원의 독립’과 ② 재판의 독립을 위한 ‘법관의 독립’으로 나뉘며, 그에 따라 법원과 법관은 이러한 사법권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수호할 헌법적 책무를 부담한다. 그러니 금번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국민의 실망에는 충분한 근거가 존재하는 셈이다.


    필자는 원래 선배님들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성격이다. 선배님들이 저술한 서적을 탐독하고, 이뤄낸 판례를 숙독하며, 걸어온 업적을 반추한다. 탁월한 선배님들의 발자취는 필자에게 큰 귀감이 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젊은 법조인으로서 법조 선배님들을 진심으로 동경한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보다, 영화에서 풍자되는 것보다 훨씬 더 품격있고 정의로운 법조 선배님들을 필자는 정말로 많이 만나왔고, 실제로도 대다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밤, 지금도 어딘가 허름한 노포에서 법조 선배님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 나누고 계시지 않을까? 청운(靑雲)의 꿈과 패기를 가지고 법조계에 입문했던 과거를 회고하며,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fiat justitia, et pereat mundus).”라는 말을 곱씹으며 깊은 밤을 지새우고 계시지는 않을까?


    "선배님, 이건 아니잖아요. 옳지 않잖아요."



    이충윤 변호사 (법무법인 주원·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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